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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11.26 09:40 수정 : 2017.11.26 21:48

[토요판] 르포
휠체어 장애인의 특별한 제주 여행

▶ 일상을 떠나 낯선 세계와 조우하는 여행은 누구에게나 삶의 활력소가 됩니다. 특히 몸이 불편한 장애인에게는 단순한 즐거움이 아니라 세상에 참여하는 일생일대의 기회이기도 합니다. 집 아닌 곳에도 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음으로써 좀 더 능동적인 삶이 가능해집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중증 장애인은 집 주변을 맴도는 게 우리의 현실입니다. 집에서 웅크리고 있을 많은 몸 불편한 이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는 휠체어 장애인들의 제주도 여행을 따라가 봤습니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멀리 여행하는 일은 쉽지 않다. 하지만 한번 여행을 경험한 장애인의 사회 참여율은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현철 전남 장흥군 척수장애인협회 지회장이 지난 20일 제주도 금릉석물원의 키스하는 조각상 앞에서 부인 김효순씨와 함께 조각상과 같은 포즈를 취하고 있다.
“꼭 20년 만입니다. 사고 나기 전에는 제주도에 열번 정도 왔었는데 그동안은 올 엄두를 못 냈죠. 오랜만의 여행이어서인지 정말 기분이 좋습니다.”

사흘간의 일정으로 지난 20일 제주도에 도착한 이현철(39)씨의 입가에는 빙그레 미소가 감돌았다. 이씨는 휠체어가 없으면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는 중증 장애인이다. 1998년 교통사고로 경추를 다쳤다. 오랜 재활치료를 통해 양팔만 움직일 수 있다. 손가락은 사용하지 못하며, 양팔도 위쪽만 감각이 있을 뿐 아래쪽 절반은 별 느낌이 없다.

이씨와 동행한 부인 김효순(46)씨의 표정에도 설렘이 가득했다. 김씨 역시 30여년 전 고교 수학여행 이후로 제주도는 이번이 처음이다. “제주에 아주 오랜만에 온 것도 기쁘지만, 솔직히 비행기를 처음 타 봤어요. 이륙 때 붕 뜨는 순간이 좋았고, 구름 위를 날 때는 마치 시동 건 채 멈춰 있는 자동차를 타고 있는 것 같더군요. 기분이야 말할 수 없이 좋죠.”

유망한 축구선수였던 이현철씨
대학 때 교통사고로 척수 장애
98년 사고 이후 첫 제주여행
아내와 함께 유명 관광지 순례

퇴원 전에 운전면허증 획득
동료 장애인 돕는 삶 살고파
“한번도 좌절하거나 절망 안해
몸 불편할 뿐 일반인과 똑같아”

이동국·이정수와 축구 라이벌

이씨 부부가 제주를 찾은 것은 전남 척수장애인협회(회장 신석호)가 2박3일 일정으로 마련한 ‘리마인드(remind) 허니문 2017’ 덕분이다. 전남 척수장애인협회는 도의 예산 지원으로 매년 한 차례씩 회원들을 대상으로 단체 여행을 추진한다. 올해에는 국내 관광지 중에서 선호도 1위인 제주도로 여행지를 정한 뒤 시·군 지회별로 회원들을 모집했다. 결혼한 뒤 신혼여행을 가지 못했거나 여행한 지 오래된 사람, 기초생활 수급 대상자로 생활에 어려움이 있는 회원을 우선적으로 뽑았다. 이렇게 해서 9명의 회원과 배우자 등 모두 17명이 선정됐다.

전남 장흥에 살고 있는 이씨는 행사 알림을 접하고는 바로 참가 신청을 했다. “함께 산 이후에 여행 가자고 하면 장흥의 논두렁 밭두렁으로 끌고 다녔어요. 이 논은 누구네 것이고, 이 밭은 원래 우리 거였는데 누구한테 팔았다는 등의 얘기를 들러주면서 말이죠.” “시골에서는 논두렁 빼고는 갈 데도 별로 없어요.” 두 사람은 함박웃음을 지었다.

일행이 첫날 찾은 곳은 제주시 한림읍에 있는 ‘더마파크’와 월령리 바닷가였다. 더마파크는 몽골에서 온 공연단이 말을 타고 벌이는 각종 기예로 유명하며, 월령리는 낙조로 소문난 곳이다. 이날 오후 공연 때도 더마파크에는 300~400명의 관광객이 찾았다. 이씨 부부 일행도 휠체어 관람석에서 맘껏 손뼉 치면서 환호했다. 월령리 바닷길도 약간의 오르내림은 있었지만, 나무 데크로 만든 무장애 산책길이어서 부부 단위의 이들 특별한 여행객들도 별 어려움 없이 남들처럼 바닷바람과 석양의 햇살을 즐겼다. “제주도 바람이 맛있네요. 시원하고 깨끗한 것이 꼭 생수 같아요.” 김효순씨는 가슴 깊이 바닷바람을 들이켜면서 남편의 휠체어를 밀었다.

이씨는 사고를 당하기 전에는 주니어 국가대표로 뽑혔을 정도로 잘나가던 축구선수였다. ‘전북 현대’에서 선수로 뛰고 있는 이동국 선수나 올해 현역(수원 삼성)에서 은퇴한 뒤 지도자 길을 걷고 있는 이정수 선수 등이 축구선수 시절 경쟁자이면서 친구들이었다.

그의 인생이 바뀐 건 조선대학교 1학년 때인 1998년 9월의 어느 토요일이었다. 이씨는 친구들을 만나러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가 순천 시내에서 불법유턴하던 승용차에 부딪쳤다. 수술 후 4일 만에 병원에서 눈을 떴을 때 자신의 손도 발도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축구를 시작한 이후 장래를 촉망받던 아들이 하루아침에 장애인이 되자, 낙담한 아버지는 매일 소주병을 비웠다.

하지만 이씨는 달랐다. “3개월 동안 꼼짝 못하고 누워 있었는데 어느 날 팔에 감각이 느껴졌어요. 또 한달쯤 지나니 가슴 쪽에 느낌이 왔어요. 혼자 맘속으로 생각했죠. 이렇게 석달 지나면 손가락, 또 석달 지나면 다리까지 살아나겠구나 하고요.”

전남 척수장애인협회가 마련한 제주도 여행에 참석한 이현철씨가 부인 김효순씨의 도움을 받아 지난 20일 장애인용 리프트가 설치된 특수 관광차량에서 내리고 있다.

장흥군 척수장애인 지회 만들어

초기에 재활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한 탓에 그런 기적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이씨는 한번도 절망하거나 좌절하지 않았다. 그는 2000년에 운전면허를 땄다. 그가 인천의 한 재활병원에 있을 때 면허를 따러 간다고 하자, 동료 환자들이 ‘설령 면허를 따더라도 그런 몸으로 운전을 어떻게 하겠느냐’고 모두 비웃었다. 고향 집에 돌아와 1년여 동안 집안에만 틀어박혀 있는 아들을 본 어머니가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중고차 한대를 사줬다.

“그때부터 내 세상이었어요. 차를 몰고 전국을 다 돌아다녔죠. 면허증 딴다고 흉봤던 사람들이 그런 저를 보고는 다 면허증을 따더라고요.” 장애에 주눅 들지 않고 전국을 쏘다니던 이씨는 지인의 소개로 2002년쯤 김씨를 만났다. 김씨가 7살 연상이어서 첫 2~3년은 누나 동생 관계로 지내다가 그다음 4년은 본격적인 연애를 했다. “첫인상은 별로였는데 만날수록 거짓과 꾸밈이 없는 모습이 마음에 들었어요. 가족들이 반대했지만 이 사람과의 결혼을 밀어붙였죠.”

2008년 결혼한 두 사람에게 생긴 예쁜 딸이 첫돌을 맞았을 때 이번에는 김씨에게 시련이 닥쳤다. 어느 날 갑자기 “오른쪽 다리와 팔의 연골이 뒤로 꺾이는 등 맘대로 움직이는” 증상이 나타났다. 남편 차로 곧바로 병원에 가서야 뇌경색이 왔음을 알았다. 이씨는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했지만, 아내 앞에만 가면 저절로 눈물이 쏟아졌다. 그런 남편을 보는 아내의 눈에도 물이 고이고, 결국 둘은 서로 붙잡은 채 한참을 울곤 했다. 오른팔과 다리의 마비증상이 심했던 김씨는 초기부터 재활운동을 열심히 해서 지금은 거의 다 나았다.

이런 일을 겪은 두 사람은 본격적으로 자신들처럼 몸이 불편한 사람들을 돕는 삶을 살기로 하고, 그 길을 모색했다. 둘은 나주에 있는 고구려대(옛 나주대)에 입학해서 2013년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땄다. 언젠가는 장애인을 위한 복지시설을 세워 운영할 계획이다. 우선은 군 단위에서는 최초로 척수장애인협회 장흥군지회를 얼마 전 만들었다. 그동안에는 지체장애인협회에 함께 소속돼 있었지만, 다른 장애인보다 보살핌이 더 필요한 척수장애인의 권익 보호가 시급하다는 생각에서다. 지회는 아직 군의 지원단체로 인정받지 못해 사무실 운영비가 모두 이씨 부부의 얇은 주머니에서 나온다.

“무슨 욕심을 갖고 하면 이 일을 못 합니다. 집에만 있는 척수장애인들을 집 밖으로 끌어내기 위해 지회를 만들었어요. 당분간 경제적 부담 등으로 인해 힘들겠지만 계속 가던 길을 가려 합니다.” 이씨의 다짐에 부인 김씨도 말을 보탰다. “저이가 어떤 이득을 취하려고 일을 시작했다면 저부터 말렸을 겁니다. 항상 긍정적이고, 다른 사람을 도우려는 마음이 강한 점은 자랑할 만합니다.”

‘리마인드 허니문 2017’ 행사로 제주도 여행을 온 전남 척수장애인협회 회원들이 지난 21일 오전 절물자연휴양림의 산책길을 보호자들과 함께 둘러보고 있다.

삐뚤삐뚤 아내에게 쓴 손편지

전남 척수장애인협회는 이번 제주도 여행 참가자들에게 숙제를 하나씩 내줬다. 서로에게 하지 못했던 마음을 편지로 전달하는 것이었다. 부인 김씨는 여행 출발하는 날 새벽에 짐을 꾸린 뒤에 책상에 앉아 남편에게 썼다. “요즘 바삐 움직이는 자기를 보면 참 감사해. 자기 몸도 힘들고 불편할 텐데 보람된 일을 하고 싶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모습에 열정이 가득차 보여. (…) 지금의 나를 돌아보면 자기로 인해서 배려하는 마음도 배우고, 자기와 살면서 이해하는 마음도 배우게 된 것 같아. 아직도 부족한 것투성이지만 나를 변할 수 있게 해줘서 감사해.” 남편 이씨도 아내에게 미리 써온 편지를 건넸다. “당신을 만나 너무 많은 변화가 생겼고, 당신을 만나 행복이란 걸 알았어. (…) 너무 고마운 당신, 그 어떤 말로 당신에게 고마움을 전할 수 있을는지 모르겠어. 항상 고맙고 사랑해.” 펜을 제대로 쥘 수 없어 삐뚤삐뚤한 글씨 속에 사랑이 가득 찬 편지였다.

여행 둘째 날에는 오전에 절물자연휴양림과 선녀와 나무꾼 테마공원, 오후에 섭지코지와 성을 주제로 한 박물관 한 곳을 찾았다. 절물자연휴양림과 섭지코지는 오르막 내리막이 있긴 했지만, 일행은 서로 이동을 도와주면서 제주의 아름다운 자연을 즐겼다. 여수에서 부인과 함께 온 전권수(58)씨는 “3년 전에 교통사고 뒤 첫 장거리 여행인데 기분이 상쾌하죠. 장애인들도 여행을 많이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남편 이재술(64)씨를 따라온 오순복(60)씨는 “호텔 욕실 등이 좁아서 다소 불편하긴 해도 이런 여행 기회가 생겨 너무 좋아요”라면서 가는 곳마다 만세를 불렀다.

“장애는 내 몸이 조금 불편할 뿐이지 누구에게 부끄러워하거나 눈치를 봐야 할 일이 아니죠. 장애자라고 내가 움츠린다고 누가 봐주는 것 아닙니다. 그러면 나만 초라해지죠. 저는 항상 저의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고 자랑합니다. 장애를 가진 다른 분들도 이렇게 여행도 다니면서 일반인들과 똑같이 생각하고 행동하면 좋겠어요.” 이현철씨의 말을 들으면서 숟가락을 겨우 손에 끼워서 밥을 먹을 정도로 몸이 자유롭지 못한 그가 왜 전남도의 장애인 럭비 주전선수인지를 알 것 같았다.

제주/글·사진 김종철 선임기자 phill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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