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9.04.21 19:45 수정 : 2019.04.21 19:52

[짬] 재독 청각장애인 활동가 조혜미씨

재독 한인단체 코리아협의회의 조혜미(왼쪽)씨와 투게더-함흥의 대표 로버트 그룬트(오른쪽)가 동영상에서 남북한의 차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남북 손말수어’ 유튜브 갈무리
“한반도가 통일됐을 때 남과 북의 청각장애인들이 어색함 없이 대화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독일 베를린에서 남북의 수어가 어떻게 다른지 비교해 보여주는 특별한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1990년대 초부터 독일에서 한반도 문제에 관심을 갖고 지속적인 활동을 벌여 온 ‘코리아협의회’와 북한 청각장애인을 돕는 독일 청각장애인 단체인 ‘투게더-함흥’이 함께 진행하는 ‘손말수어’ 프로젝트다. 남한에선 청각장애인들이 의사소통을 위해 사용하는 손동작을 ‘수어’(수화언어), 북에선 ‘손말’이라 부른다.

선천성 청각장애인인 조혜미는 “이 프로젝트가 처음 기획된 것은 2018년 6월”이라고 말했다. “투게더-함흥의 대표이자 그 자신 청각장애인인 로버트 그룬트가 2013년부터 2016년까지 4년간 세계농인연맹을 대표해 북한에 거주했어요. 거기서 청각장애인센터, 유치원, 청각장애인 목공소 설립을 도왔지요. 그때 조선 손말을 배웠어요.”

‘남북한 수어 비교 프로젝트’ 진행
‘코리아협의회-투게더 함흥’ 함께
2월부터 동영상 4개 제작 유튜브에
남 수어 ‘깨끗하다’-북 손말 ‘새롭다’

국제수화 배우려 3년전 덴마크 유학
“수화 통역없이 남북장애인 소통하길”

‘남북 손말수어’ 유튜브 갈무리
조씨는 그룬트에게 조선 손말을 배워 남한의 수어와 비교하는 영상 제작과 자막 편집 작업을 하고 있다. 그말고도 코리아협의회와 투게더 함흥의 회원 여럿이 이 프로젝트에 참여 중이다. 사업 진행을 위해 독일의 공익기관 재정 후원 단체인 배터플레이스 등의 재정 지원을 받고 있다. 이들은 2월 말부터 지난 10일까지 남북의 수어를 비교해 보여주는 4개의 동영상을 만들어 유튜브(www.youtube.com/watch?v=7qMZEAiGBCA)를 통해 공개하고 있다. <조선-한국 작은손말수어사전>도 기획하고 있다.

“저는 그림을 좋아하는 평범한 직장인이었어요. 한국에서 농인독립영상제작단 데프미디어를 통해 청각장애인 감독이 만든 영화를 보고 국제수화를 처음 알게 됐어요. 큰 충격이었고, 신선했어요. 견문을 넓히기 위해 국제수화를 배웠어요. 그때가 26살이었는데 청각장애인으로 제 정체성을 발견한 것이죠.”

그는 이후 관련 세미나와 강연을 찾아다니다 덴마크에 국제농청년리더십양성기관인 ‘프론트러너즈’(Frontrunners)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2017년 과감하게 유학을 떠났다. 덴마크에 도착한 조씨는 독일에 북한을 돕는 청각장애인 단체가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한국 사람이 쉽게 접할 수 없는 북한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었던 조씨는 ‘투게더-함흥’에 메시지를 보냈다. 이를 통해 단체를 이끄는 그룬트 형제를 알게 됐다. 그들은 조씨에게 ‘손말수어’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해보자고 제안했다. 흔쾌히 응한 조씨는 2018년 5월 프론트러너즈 과정을 마친 뒤 독일로 왔다.

이미 많이 달라진 남북한 언어처럼 수어와 손말도 서로 다르다. 수어는 같지만 의미가 다른 사례도 있고, 의미는 같지만 수어가 다른 사례도 있다. 가령 한국 수어로 ‘깨끗하다’란 동작이 북한에선 ‘새롭다’가 된다. 한국 수어는 ‘감사합니다’인데, 북한 손말로 ‘김치’란 뜻이 되기도 한다.

‘남북 손말수어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하고 있는 코리아협의회와 투게더 함흥 회원들이 베를린에서 한반도기를 들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맨왼쪽이 로버트 그룬트, 맨가운데 조혜미씨.
이 프로젝트를 이끄는 그룬트 투게더-함흥 대표는 “남북 통틀어 한반도에 거의 50만명의 청각장애인이 살고 있지만 그동안 남북한 언어 차이에 대한 관심이 음성이나 문자 언어에만 국한되어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 청각장애인 국제행사에 참석했을 때 남북 장애인들이 직접 의사소통을 못하고 통역에 의지하는 것을 봤다”며 “‘손말수어’ 프로젝트는 남북 청각장애인들이 직접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돕는 장기 프로젝트가 될 것” 이라고 말했다.

조씨는 요즘 독일 수어도 열심히 배우고 있다. 회의를 할 때면 문자 통역이나 독일어 수어 통역을 거쳐야 해서 의사소통에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이미 2016년 8월 ‘한국수화언어법' 개정을 통해 ‘남북한 한국수어의 교류 및 연구에 관한 사항'을 기본계획으로 수립하기로 했어요. 하지만 지금껏 아무런 진행이 되고 있지 않아요. 제가 제3국인 독일에서 이런 활동을 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죠.”

그는 현재 코리아협의회 웹디자이너로 일하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일본의 조선학교 문제, 한국내 여러 사회적 이슈를 소셜미디어서비스(SNS)를 통해 국제 수화와 한국 수어로 전하는 활동을 펼치고 있다.

베를린/한주연 통신원 juyeon@gmx.de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