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6.04 14:32
수정 : 2019.06.04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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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에스케이(SK)가 주최한 ‘소셜 밸류 커넥트(Social Value Connect) 2019’ 행사에서 기조연설 중인 김정호 베어베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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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소셜 밸류 커넥트 2019’ 현장 중계
장애인 중 30세 미만 발달장애인 비중 64%
일선 현장에선 고용 꺼리는 분위기 여전
발달장애인 230명 고용 ‘베어베터’ 사례 눈길
“체계적인 고용 제도와 훈련 제공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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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에스케이(SK)가 주최한 ‘소셜 밸류 커넥트(Social Value Connect) 2019’ 행사에서 기조연설 중인 김정호 베어베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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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원이 다리는?” ”백만불짜리 다리!”
2005년 개봉한 영화 <말아톤>에서 얼룩말과 초코파이를 좋아하는 초원이는 자폐증 진단을 받는다. 5살 지능을 가진 20살 청년의 가능성을 발견한 코치 덕분에 초원이는 마라톤 대회에서 ‘서브쓰리’(3시간 이내 완주)를 기록한다.
현행법(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상 발달장애인은 ‘지적장애' 또는 ‘자폐성 장애'를 지닌 사람으로 정의된다. 2018년 장애인 현황 통계에서 전체 등록장애인 258만 5876명 중 지적장애, 자폐성 장애를 가진 발달장애인은 약 9%(23만3620명)를 차지한다. 30세 미만의 경우, 장애인 인구 18만 4864명 중 발달장애인(11만 7668명)은 약 64%다. 취업이 활발한 시기인데다 기업도 장애인 의무고용을 위해 적극적 노력을 펼쳐야 하기에, 30세 미만 발달장애인 고용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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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통계포털의 ‘장애인현황: 시도별, 장애유형별, 장애등급별, 성별 등록장애인수’ 자료에 따르면 연령별 전체 장애인 인구 중 발달장애인 인구 비율은 10대, 20대 순으로 높다. 일반적으로 취업이 활발한 시기인데다 기업도 장애인 의무고용을 위한 적극적 노력이 필요한 대상이기에 30세 미만 발달장애인 고용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서혜빈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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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현실에서도 초원이는 좋은 코치를 만나 훈련받을 수 있을까? 대답은 아직 ‘글쎄'다. 정부는 장애인 맞춤형 취업 지원 확대 정책으로 중증 및 발달 장애인 등 특히 취약한 장애인을 대상으로 취업 지원을 확대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으나, 현실은 아직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무엇보다 일선 기업 현장에서 발달장애인 고용을 꺼리는 분위기가 남아있어서다. 실제 발달장애인에게 부여할 수 있는 직무가 거의 없고, 다른 사원들과의 의사소통 부족 등으로 생산성이 낮아질 것을 우려하는 기업들이 많다. 발달 장애인을 고용한다고 해도 조직 내에서 외톨이가 되어 상처를 받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지난달 29일 에스케이(SK)가 주최한 ‘소셜 밸류 커넥트(Social Value Connect) 2019' 행사에서 김정호·이진희 ‘베어베터’ 공동대표는 각각 장애인 고용 확대와 체계적인 훈련 제공을 강조했다. 김정호 대표는 “장애인 고용 활성화를 위해 이 자리에 참석했다”며 “장애인 3.1% 의무고용이 예전에는 압박으로 여겨졌지만 지금은 사회적 가치 창출로 인식된다”고 말했다. 장애인에게 최고의 복지는 스스로 사회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만드는 취업이라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발달장애인 고용을 기피하는 현실에서 베어베터는 8년째 이들을 적극적으로 고용하는 기업이다. 현재 인쇄, 커피, 제과, 화훼 등의 분야 사업을 벌이는 베어베터에는 발달장애 직원 230여 명, 비장애인 직원 70여 명이 일한다.
이날 행사에서 이진희 대표는 ‘장애인 고용과 CSV’ 세션에서 “FIT TO PEOPLE”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했다. 이진희 대표는 “같은 발달장애인이라도 개인별로 다양한 차이를 가지고 있어 한 가지 방법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며 “장애인 고용 확대라는 양적 성장뿐만 아니라 이들을 위한 체계적인 고용제도와 훈련 제공이라는 질적 성장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발달장애인을 위한 ‘쉬운 직무 만들기' 프로그램을 끊임없이 개발 중인 이 대표는 “많은 발달장애인이 지하철 마니아”라며 “지하철을 좋아하고 노선을 잘 외우는 이들을 위해 지하철을 통해 배달하는 일을 맡겼더니 아주 잘해냈다”는 말로 그간의 경험을 소개했다.
처음부터 이런 아이디어를 생각해낸 것은 아니다. 이 대표는 “20년 전 신문에서 ‘일본이화학공업'에 대한 기사를 읽으며 아이디어가 번뜩였다”라고 말했다. 분필 제조회사인 일본이화학공업의 오야마 야스히로 대표는 세계 최초의 지적장애인 고용 모델이 될 수 있는 회사를 만들기 위해 지적장애인의 눈높이에 맞는 설비를 개발했다. 신호등의 원리를 이해하는 모습을 보고 색을 구분해 재료를 계량하는 방법을 고안했고, 숫자에 서투른 이들을 위해 시계 대신 모래시계를 뒀다. 일반인과 똑같이 일을 주기보다 이들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바꿔 알려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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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고용과 CSV’ 세션에서 이진희 대표는 ‘FIT TO PEOPLE’이라는 주제로 발표했다. 사진 오른쪽에서 두번째가 이진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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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베어베터에선 발달장애 직원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비장애인 직원을 대상으로 발달장애 이해 교육을 제공한다. 이 대표는 “우리의 고정관념을 깨면 발달장애인의 시각으로 일하는 방법을 알 수 있다”며 “우리의 매뉴얼과 가이드북을 다른 기업과도 공유하고 싶다”고 앞으로의 포부를 밝혔다.
“저도 사람인지라, 일하면서 돈 벌고 싶어요”, “일이란 나의 자신감, 내가 살아갈 수 있는 이유”, “제가 만든 커피를 마시는 손님을 보면 뿌듯하고 행복해요”…. 일하는 발달장애인의 기분좋은 외침이 앞으로 더 커지길 소망한다.
글·사진 서혜빈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원 hyeb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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