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9.29 14:57
수정 : 2019.09.29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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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디블록이 즐비하게 깔린 서울 동작구 보라매공원에서 뇌병변 장애인 이득영씨가 전동휠체어를 타고 이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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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공원 주차장 26곳 가운데 잔디블럭 설치 10곳
장애인들, ‘휠체어 바퀴 블록 틈에 빠진다’ 불편 호소
공원관리자 “배수에 도움돼…개선책 만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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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디블록이 즐비하게 깔린 서울 동작구 보라매공원에서 뇌병변 장애인 이득영씨가 전동휠체어를 타고 이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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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못 다녀요. 보세요, 금방 넘어질 것처럼 덜컹덜컹하잖아요.”
이득영(69)씨는 전동휠체어를 작동하며 힘겹게 말했다. 중증 뇌병변 장애를 가진 이씨는 운동 삼아 매일 서울 동작구 보라매공원을 찾는다. 하지만 주차장 쪽은 피해 다닌다. 울퉁불퉁한 잔디블록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장애인 주차장’도 마찬가지다. 전동휠체어로 잔디블록 위를 지나가자, 이씨의 온몸이 튕겨나갈듯 흔들렸다. 이씨는 “나같은 사람들은 어떻게 하라고 이렇게 만들었는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보라매공원 근처 서울공업고등학교에 다닌다는 최의현(18)군은 “비장애인도 이 정도로 울퉁불퉁한 길에서는 넘어지기 쉽다”며 “여기서 아이들이 발이 걸려 넘어지는 장면도 자주 봤다”고 말했다.
매주 토요일 서울 광진구 뚝섬한강공원에서 휠체어 축구를 하는 서울전동휠체어축구협회 회원들도 마찬가지다. 중증 뇌병변 장애인인 모경훈(43) 서울전동휠체어축구협회장은 지난해 2월 뚝섬한강공원 장애인 화장실에 들어가다 휠체어 바퀴가 잔디블록에 끼어 넘어지는 사고를 당했다. 모 회장은 “협회가 서울시에 장애인 화장실 문제를 제기한 뒤로 장애인 화장실은 새로 단장됐지만, 장애인주차구역에 깔린 잔디블록은 그대로다”고 말했다. 김은미(51) 서울전동휠체어축구협회 청소년팀 단장도 “휠체어 바퀴가 잘 굴러가지 않고 툭툭 빠지기 때문에 잔디블록은 휠체어에 쥐약”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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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촌한강공원 장애인주차구역 테두리에 잔디블록이 깔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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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가 잘되고 자연 친화적이라는 이유로 서울시 등이 공원 주차장 바닥재로 설치하고 있는 잔디블록이 장애인들의 이동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잔디블록은 아스팔트 콘크리트(아스콘) 블록 사이에 흙을 채우고 잔디를 심은 바닥재다. 휠체어 바퀴가 흙과 잔디로 된 틈에 자주 빠지는 데다, 모양이 균일하지 않은 블록을 사용하는 곳도 있어 이동에 어려움을 겪는 장애인들이 울상짓고 있다.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시에서 관리하는 공원 33곳 가운데 주차장이 있는 공원은 26곳인데 이 가운데 잔디블록이 설치된 공원은 10곳이었다. 10곳 중 9곳에는 장애인주차구역에도 잔디블록이 깔렸다. 마포구 난지한강공원이나 뚝섬한강공원 일부는 장애인주차구역을 포함해 주차 공간 전체를 잔디블록으로 깔았고, 용산구 이촌한강공원이나 서초구 반포한강공원 등은 장애인주차구역 가장자리만 잔디블록을 설치했다.
장애인자립생활센터 친목 모임에서 1년에 3~4번 난지한강공원 캠핑장에 간다는 중증 뇌병변 장애인 황인현(48)씨는 “주차장 바닥이 잔디블록이어서 차에서 타고 내릴 때마다 걱정”이라며 “마찰이 심해 허리가 아프고 온몸이 울릴 정도”라고 불편함을 토로했다. 장애인 활동지원사 정민호(28)씨는 “전동휠체어 타시는 분들은 휠체어 운전을 잘하시기 때문에 평지에 다닐 때는 별로 신경쓰지 않는데 잔디블록 위에서는 매우 불안하다”며 “잔디블록이 설치된 빌라 주차장에서 나는 휠체어 마찰음이 건물 3층에 있는 사람들한테까지 들릴 정도로 심하게 덜컹거린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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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포한강공원 장애인주차구역 테두리에 잔디블록이 깔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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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정이 이런데도 공원 쪽 관계자들은 별 문제가 없다고 답했다. 서울동부공원녹지사업소 관계자는 “배수에 도움이 되고 미관상으로 좋아 잔디블록을 사용한다”며 “아스콘을 사용하면 바닥이 뜨거운데 잔디블록은 바닥 온도가 내려가는 효과도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시 한강사업본부 공원시설과 담당자는 “통로는 대부분 아스팔트여서 휠체어 이동에 대한 민원이 많이 들어오지는 않는다”며 “다만 뚝섬2주차장은 356면 중 60면 정도가 잔디블록인데, 장애인주차구역이 잔디블록 부분에 있다. 개선책을 마련해보겠다”고 말했다.
조현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정책실장은 “비장애인의 관점에서 미학적이고 편리하도록 환경이 구성돼 있어 장애인을 포함한 교통 약자들이 고통받고 있다”며 “접근권은 우리 사회 구성원이라면 마땅히 누려야 할 기본 권리”라고 말했다. 여주민 장애와 인권 발바닥 행동 활동가는 “노동권이나 교육권도 일단 해당 장소까지 갈 수 있어야 누릴 수 있는 만큼 접근권은 모든 권리의 기본”이라며 “친구와 공원에서 쉴 수 있는 소소하지만 당연한 권리인 문화향유권은 접근권이 보장돼야 누릴 수 있다”고 말했다.
글·사진 김윤주 기자
ky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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