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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1.11 16:29 수정 : 2005.01.11 16:29

92살 할머니가 이미 사망한 채로 응급실로 실려 왔다. 유족들에게 물어보니 여섯달 전부터 누워만 있다가 일주일 전부터 아무 것도 먹지 못했다고 했다. 신체검진을 한 결과 팔다리와 얼굴이 심하게 부어 있었다. 영양실조 때문에 부은 것으로 판단됐다. 가족의 설명이나 신체검진 결과를 종합해 보면, 영양실조가 직접 사망 원인으로 보였다. 굶어서 사망한 것이다. 이 할머니는 치료를 받았다면 최소 몇 달은 더 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사망 결과만 보면 노인 학대에 해당될 수 있다.

법적으로 사망은 자연사와 변사로 나뉜다. 외부적인 원인 때문에 사망한 것을 가리키는 변사는 경찰에 반드시 신고하도록 돼 있다. 엄격하게 말하면 이 할머니는 자연사가 아니고 변사이므로 경찰에 신고해야 했다. 이런 상황이면 미국이나 유럽이라면 당연히 노인학대로 분류했겠지만 우리나라는 어찌 될지 알 수 없다. 문화의 차이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노인 학대의 정의에 대한 설문 결과를 보면 아시아나 아프리카의 노인들은 유럽이나 미국의 노인들과 는 달리 ‘노인에 대한 존경심의 부족’을 주로 꼽았다. 이는 젊음을 찬양하고 노인에 대한 공경심이 상대적으로 약한 유럽이나 미국과 달리, 노인들의 지혜가 중요했던 아시아, 아프리카의 나라들이 산업화가 되면서 나타난 노인들의 상실감이나 소외감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

또 죽음에 대한 느낌이 다른 것도 중요한 이유다. 기독교 문화권에서는 죽음으로 영원히 삶과 분리되고, 남은 가족과의 이별을 뜻하기에 삶에 대한 애착이 동양권보다 강하다. 나아가 성경에서 말하듯이 죽음은 악이다. 또 자살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다는 의미이다. 반면 동양에서는 죽음에 대한 애착이 서양보다 상대적으로 약하다. 죽은 조상도 후손과 함께 있다는 종교관이나 세계관의 반영이며, 가족 공동체 의식을 잘 보여 준다고도 할 수 있다. 자살도 자기의 결백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런 문화의 차이는 자살을 택한 노인뿐만 아니라 가족들의 태도에서도 잘 나타난다. 위 할머니의 경우 유족들에게 사망 원인의 설명을 한 뒤 변사로 봐야 하므로 사체검안서가 나가야 한다고 하자, 유족들은 매우 당황했다. 솔직히 의사로서 고민이 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자연사가 아닌 변사, 더구나 노인 학대로 사망했다면 경찰 등의 수사를 비롯한 복잡한 문제들이 뒤따르고, 남은 가족들에 대한 사회의 비난도 뒤따를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나라의 문화를 고려하면 가족들이 이 할머니를 굶겨 사망하게 한 것은 고의가 아니었다. 가족들은 할머니가 편히 돌아가시게 하고 싶었을 따름이다.

의사의 입장에서 보면 병원에 와서 치료를 받으면 며칠, 몇달은 더 살 수 있는 노인 환자들이 이와 비슷하게 사망하는 경우를 꽤 볼 수 있다. 문제는 어느 선까지가 노인 학대인가 하는 것이다. 노인 학대의 정의에 대해 사회적 공감대가 빨리 만들어져야 가족과 의사의 갈등과 법적 문제를 둘러싼 혼란이 없어질 것이다.

김승열 안동성소병원 응급의학과 과장 notwho@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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