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11.11 10:46
수정 : 2017.11.11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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궐련형 전자담배 아이코스를 피우고 있는 한 남성의 뒷모습. 이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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궐련형 전자담배 ‘간접흡연’ 경험 들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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궐련형 전자담배 아이코스를 피우고 있는 한 남성의 뒷모습. 이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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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가장 먼저 국내에 출시된 궐련형 전자담배 ‘아이코스’(한국필립모리스)로 갈아탔다. 냄새가 결정적인 원인이었다. 흡연 연차가 올라가면서 몸에서 나는 담배 냄새가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옷, 머리, 손에서 나는 냄새가 괴로웠다.
담뱃잎을 태우지 않고 300℃로 쪄낸다는 궐련형 담배는 신세계였다. 처음 피울 때는 “빵을 굽는 듯한” 냄새가 신경 쓰였지만, 몸이나 옷에는 배지 않는 것 같았다. 집에 들어와도 옷에서 냄새가 나지 않았다. 적어도 흡연 20년 차의 후각으로는 느낄 수 없었다. 900℃ 이상의 직화에 잎을 태우는 것과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는 그 차이를 조금 과장해
“삼겹살을 불판에 구워가며 먹을 때와 수육으로 조리해 먹을 때 옷에 배는 냄새의 차이를 생각해보라”고 얘기했다. 정말 그럴까? 궐련형 전자담배 사용자들과 비흡연자들의 얘기는 전혀 달랐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이코스 부심’이 사용자들의 코를 속이고 있었다.
아이코스나 이후 출시된 BAT코리아의 궐련형 전자담배 ‘글로’로 갈아탄 많은 흡연자는 ‘냄새로부터의 자유’를 만끽했다. 회사원 ㄱ(37)씨는 “몰래 방에서 피워도 아내가 눈치를 채지 못한다”며 좋아했다. 또 다른 회사원 ㄴ(35)씨는 “아파트 화장실에서 피워도 윗집에서 눈치를 채지 못한다”고 말했다. 전자담배 하나로 층간 흡연의 골 깊은 갈등이 해결됐다. 심지어 이들은 라이터를 사용해 불을 붙이는 보통의 흡연자들을 애처로운 눈빛으로 바라보기도 했다. “이제 일반 담배는 냄새 때문에 못 피우겠다”라며. 이에 사람들 사이에는 ‘아이코스 부심’이라는 말이 생겼다.
궐련형 전자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은 점점 과감해지기 시작했다. 친구 ㄷ은 얼마 전 20여명이 일하는 사무실에서 혼자 야근을 하던 중 아이코스를 입에 물었다. 두 대를 피웠지만, 다음날 출근한 사람들은 전혀 알아채지 못한 눈치였다. 기자인 ㄹ(34)씨는 여자 친구가 흡연을 금지한 차에서 글로를 입에 물었다. 창문을 살짝 열어두기만 해도 냄새는 사라졌다.
글로로 갈아탄 지 2개월 된 ㄹ씨는 “공항 흡연실에 갔는데 담배 냄새가 너무 심하더라”라고 말하기도 했다. 트위터(@theXXXX)에선 “아이코스 피우는데 흡연실 들어가야 하는 거 나는 너무 억울하다”는 농담조의 말도 나왔다. 궐련형 전자담배는 일반 담배와 ‘다르다’는 일종의 ‘선민의식’ 때문에 일부러 길거리에서 피우는 사람들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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궐련형 전자담배 아이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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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흡연자들 “궐련형 전자담배도 다양한 냄새가 난다”
하지만 비흡연자들의 생각은 전혀 다르다. 누리집 게시판에는 “아이코스 피우면서 금연인 줄 안다”, “궐련형 전자담배 피운답시고 길거리나 사람들 옆에서 피우는 것 좀 그만했으면 좋겠다”는 등의 글이 떠돌았다. 한 30대 여성은 “남자 친구가 아이코스로 바꾸고 마치 금연이라도 한 것처럼 군다”며 “일반 담배처럼 확연하게 알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아이코스를 피우고 가까이 다가오면 알아챌 정도의 냄새가 난다”고 밝혔다.
궐련형 전자담배의 사용 비율이 높아지면서 비흡연자들이 그 냄새를 인지하기 시작하기도 했다. 한 사진 스튜디오의 포토그래퍼인 ㅁ씨(38)는 “가끔 촬영하러 온 사람들이 궐련형 전자담배를 피우는데 꽁치 김치찌개 냄새가 난다. 비릿한 냄새에 민감해서 차라리 담배 냄새가 낫다고 생각한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아이코스와 글로 사용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주변에서 궐련형 전자담배의 냄새에 대해 ‘
식혜를 발효하는 냄새’, ‘
밥 지을 때의 증기 냄새’, ‘
찜질방 가마에 들어갔을 때의 냄새’, ‘
빵 굽는 냄새’, ‘
산타마리아 노벨라의 타바코 향수의 잔향’ 등으로 냄새를 묘사하는 말들을 들었다고 밝혔다. 게다가 벌써 궐련형 전자담배 냄새에 익숙해진 비흡연자들은 거리를 걷다가 혹은 실내에 들어갈 때 ‘빵 굽는 냄새’나 ‘밥 짓는 냄새’가 나면 민감해진다. “아무리 아이코스의 유해성이 적다고 하더라도 엄연한 간접흡연”이라는 게 비흡연자들의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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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마포구의 한 편의점에 궐련형 전자담배 아이코스와 전용 연초가 진열되어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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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궐련형 전자담배 판매사 “냄새 안 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
글로의 판매사인 BAT코리아 쪽은 “궐련형 전자담배도 똑같이 담뱃잎으로 만든 엄연한 담배”라며 “담배를 피우는데 냄새가 안 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밝혔다. BAT코리아 쪽은 또 “회사의 연구소에서 자사의 일반 담배인 ‘럭키 스트라이크’와 옷에 배는 냄새, 머리카락에 배는 냄새, 손에 배는 냄새를 측정하는 실험을 진행했는데 각각 일반 담배의 17.1%, 14.9%, 21.4% 수준으로 나타났다”며 “냄새가 적게 나기는 하지만 안 난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아이코스의 판매사인 한국필립모리스 역시 “궐련형 전자담배 역시 담배”라며 “불로 태우는 일반 담배와는 달리 주변의 공기를 오염시키는 정도가 일반 담배의 90% 수준(자체연구)으로 매우 적지만, 금연구역에서 사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한편, 한국필립모리스는 지난 7일 아이코스가 지금까지 5000만갑 이상이 풀렸으며, 올 3분기 서울시장 점유율은 5%, 전체 시장 점유율은 2%로 추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2015년에 출시되어 지난 7월 초 12.7%를 기록한 일본 시장의 성장 속도보다 빠르다. 글로를 8월에 출시한 브리티시아메리카는 “아직 시장 점유율 데이터가 나오지 않았다”고 밝혔다.
박세회 기자
sehoi.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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