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2.14 15:59
수정 : 2019.02.15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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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환자 간 ‘원격의료’ 허용은 ‘의료영리화’로 가는 징검다리가 될 것이라고 보건의료단체들은 우려한다. 지난 2014년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의료민영화·영리화 저지와 의료공공성 강화를 위한 범국민운동본부 출범 기자회견’.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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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정보통신부, 웨어러블 심전도측정기 실증특례 허용
환자-의사 대면 진료만 허용한 의료법 규제 넘는 ‘원격의료’ 논란
보건의료단체들 “국민 건강 위협하는 재앙의 판도라 상자 열렸다”
“애플워치4는 정상인에게만 허용...심전도 측정기 안전성 입증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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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환자 간 ‘원격의료’ 허용은 ‘의료영리화’로 가는 징검다리가 될 것이라고 보건의료단체들은 우려한다. 지난 2014년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의료민영화·영리화 저지와 의료공공성 강화를 위한 범국민운동본부 출범 기자회견’.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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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규제 샌드박스’라는 명분으로 국민 생명과 직결되는 의료 관련 ‘안전핀’을 하나둘 차례로 뽑아주고 있다. 보건의료단체들은 “국민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재앙의 판도라 상자가 열렸다”, “문재인 정부가 박근혜 정부도 하지 못한 의료민영화의 길을 여는 것이냐”며 보건복지부 장관 퇴진을 요구하는 등 강하게 반발하는 분위기다.
14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신기술 서비스 심의위원회를 열어 ‘손목시계형 심전도 장치를 활용한 심장 관리서비스’에 대해 실증특례를 허용해줬다. 웨어러블 기기업체인 휴이노와 고려대학교 안암병원은 심전도 장치를 통해 얻은 데이터를 심장질환자가 의사에게 실시간으로 보내면 ‘병원에 내원하거나 다른 의료기관을 방문하라’고 안내할 수 있도록 하는 서비스를 허용해달라고 실증특례를 신청했다. 현행 의료법상 의사가 환자와 대면 진료하지 않고 ‘원격진료’하는 것은 불법이다. 하지만 이날 정부는 “이번 실증특례에는 의사의 진단이나 처방이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에 원격진료를 본격화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오는 3월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심전도 장치에 대해 의료기기 허가를 내준 뒤에 시작하라는 조건으로 사업을 허용해줬다. 고대안암병원은 심혈관계 질환자 2천명을 대상으로 2년간 심장 관리서비스 사업을 벌일 계획이다.
정부는 “심전도 측정이 상시로 가능해지고 병원에 가지 않고도 이상 징후가 발생하면 내원 안내를 받거나, 증상이 나아지면 1·2차 의료기관으로 전원하도록 안내받을 수 있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심전도 장치 개발업체인 휴이노가 애플워치4보다 앞서 관련 기술을 개발해놓고도 의료법의 규제에 막혀 기기 시장 출시가 늦어졌다고도 지적했다.
이번 실증특례는 의료 관련 두 번째 ‘규제 샌드박스’다. 지난 11일에는 산업통상자원부가 생명윤리법에서 규제하고 있는 DTC(소비자가 직접 비의료기관에 의뢰하는) 유전자 검사 항목을 ‘질병’까지 확대해주는 실증특례를 허용한 바 있다. 현재 DTC 유전자 검사는 탈모·피부 등 12개 항목에 한해서만 가능하다. 유전자 검사 항목 확대는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에서도 검사 오·남용 우려로 인해 심의가 유보됐던 사안이지만, ‘규제 샌드박스’라는 우회로를 통해 유전자 검사 전면 확대의 길이 열린 것이다.
보건의료단체연합과 ‘건강과대안’ 등 보건의료단체들은 이날 성명을 내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은 ‘혁신의 실험장’이 될 수 없다”며 정부가 연일 ‘규제 샌드박스’라는 재앙을 이어가는 것을 우려했다. “환자 치료보다 돈벌이에 특화된 규제 특례조치들이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위협하는 ‘판도라 상자’가 될 것”이라고도 경고했다.
이날 정부가 심전도 측정기기를 통한 내원·전원 안내가 의료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여러차례 강조했지만, 보건의료단체들은 “진단·처방 뿐만 아니라 질병 예방·치료와 관련한 의료인들의 행위는 의료법에서 정한 의료행위에 해당한다”며 “원격 모니터링은 ‘원격의료’의 변형으로서 현행 의료법 위반”이라고 비판했다. 지난해 정부는 섬과 군 부대 등에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 도입방안을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의료 사각지대 해소가 아닌 일반환자를 대상으로 한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는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밝힌 바 있다. 심전도 데이터를 원격 모니터링하는 행위가 의료행위에 해당하는지에 대해서 정부와 보건의료단체들 간에 의견이 엇갈리고 있는 까닭에, 이번 실증특례 허용은 ‘원격의료’ 논란으로까지 확산될 전망이다. 의료계와 보건의료단체들은 의사가 환자를 대면 진료하지 않으면 오진할 우려가 크고, 환자들의 대형병원 쏠림 현상이 더 심해져 공공의료 축소와 의료민영화 확대로 이어질 것이라는 이유로 원격의료에 반대하고 있다.
손목시계형 심전도 장치에 대한 효과성과 안전성에 대해서도 보건의료단체들은 의문을 제기했다. 손목시계형 심박계도 가슴 장착형 심박계보다 정확도가 떨어져 유용성을 의심받는 상황에서, 하물며 심박계가 아닌 심전도 측정기기를 손목형으로 허가하려면 더욱 엄격한 평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부가 휴이노와 견줘 예로 든 ‘애플워치4’에 대해서도 보건의료단체들은 “근거가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애플워치4는 심장질환자가 아닌 정상인에 한해서만 모니터링 기능으로 허용됐다는 것이다. 더구나 올 1월부터 허용된 애플워치4의 심전도 측정은 “질병이 없는 사람을 질병이 있다고 진단해 불필요한 심장 검사 등으로 오히려 건강에 피해를 주거나 불필요한 의료비 지출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는 상황”이라고 보건의료단체들은 꼬집었다.
변혜진 ‘건강과대안’ 상임연구위원은 “이러한 실증특례 조치들이 국민 건강과 생명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 지에 대해서 대단히 신중하고 과학적인 재검토가 있어야할 것”이라며 “환자 치료보다 돈벌이에 특화된 ‘규제 샌드박스’가 의료영리화로 이어질 시작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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