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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3.29 05:00 수정 : 2019.03.29 07:34

한겨레21, 노동부 연구보고서 입수
가임여성 최소 10만6천여명이 노동현장 생식독성물질 취급
질환아 출산 1천명당 13.9명 비취급군은 10.4명꼴 큰 차이
사업장 유해물질 관리 부실로 매년 적어도 태아 42명 피해
“선천성 질환아 산재 포함” 권고

2013년 6월24일 제주시 아라동 제주의료원 앞에서 병원사업장 여성노동자 건강권 쟁취를 위한 제주지역 공동대책위원회가 제주의료원 여성노동자들의 집단유산과 선천성 장애아 출산에 대한 역학조사를 철저히 할 것 등을 촉구하는 내용의 기자회견문을 읽고 있다. 연합뉴스

국내 노동현장에서 생식독성물질에 노출된 가임기 여성이 최소 10만6669명에 이르고, 이들의 선천성 질환아 출산율이 다른 가임기 여성노동자보다 33% 높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사업장 유해물질이 관리되지 않은 탓에 매년 최소 42명의 태아가 피해를 입지만 산업재해보상보험 혜택은 받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고용노동부가 우송대 산학협력단에 연구용역을 맡겨 지난해 12월10일 받은 ‘자녀 건강손상에 대한 산재보상 방안’ 보고서(이하 용역보고서)를 <한겨레21>이 28일 단독 입수했다. 생식독성 유해물질을 다루는 여성노동자 및 이들이 출산하는 선천성 질환아 규모를 국내 최초로 추산하고 산재보상 방안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큰 연구다.

용역보고서는 국내 16살 이상 40살 이하 가임기 여성노동자 354만575명 중 3%인 10만6669명이 생식독성 유해물질을 다루는 것으로 추정했다(이하 ‘생식독성 취급군’).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의 작업환경 실태조사에서 확인한 사업장별·물질별 취급자 분포 자료와 건강보험공단의 자료를 종합한 결과다. 연구진은 이들과 나머지 97%인 ‘생식독성 비취급군’을 비교했다.

생식독성 취급군은 비취급군보다 선천성 질환아를 낳을 확률이 33% 더 높았다. 생식독성 취급군에서 매년 1만2239명이 태어났는데 이 중 선천성 질환아는 170명(1천명당 13.9명꼴)이었다. 비취급군에서 매해 39만4004명이 태어났는데 이 중 선천성 질환아는 4104명(1천명당 10.4명꼴)이었다. 자연적인(비취급군) 선천성 질환아 출산율을 고려하면, 매년 생식독성 취급군에서 태어나는 170명의 선천성 질환아 가운데 42명은 사업장 유해물질 탓으로 추산할 수 있다.

이 피해 규모는 최소 예측치다. 연구책임자인 이현주 우송대 간호학과 교수는 “연구 한계상 위험군의 규모가 과소추정됐다”고 했다. 2세 질환을 일으키는 위험요인 가운데 물리적 인자(방사선 등), 생물학적 인자(바이러스 등), 사회심리적 인자(교대근무 등) 등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이번 연구에서는 화학적 인자 중에서도 정부에서 공인한 일부 생식독성 유해물질만 다뤘다.

용역보고서는 선천성 질환아를 산재보험법 보상 대상에 포함하는 방안을 고용노동부에 권고했다. 산재 적용 대상을 기존 ‘근로자’에서 ‘일하는 사람과 일체를 이루었던 자녀’까지 확대하는 산재보험법 전부개정안이나 별도의 특별법 제정이 검토 대상에 올랐다.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 권고안을 바탕으로 28일 산재보험법 일부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개정안은 임신한 노동자의 자녀가 업무상 재해로 △신생아(출생 후 28일 이내) 상태에서 숨진 경우 △미숙아로 태어난 경우 △선천성 이상아로 태어난 경우 자녀에게 요양급여, 장해급여, 간병급여, 직업재활급여 등을 지급하고 그 부모에게 휴업급여를 지급하도록 했다. 이용득 의원은 “산업안전 분야에서 모성에 대한 특별한 보호조처를 마련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실제 가임기 여성의 경제활동이 늘면서 선천성 질환아 출산 및 유산, 불임이 빠르게 늘고 있다. 신생아 1만명당 선천성 기형아 출산율의 경우 2008년 336.4명에서 2014년 563.6명으로 늘었다. 2세 질환이 산재로 인정되면 여성노동자들의 작업환경이 바뀔 가능성이 크다. 사용자는 산재 발생을 막기 위해 생식독성물질을 바꾸려고 노력하거나 가임기 여성이 직접 다루지 않게 해야 한다.

이번 연구는 2009~2010년 제주의료원 간호사들이 유산, 선천성 심장질환아 출산 등 집단피해를 입은 사건을 계기로 시작됐다. 피해자들은 근로복지공단의 산재 불승인에 반발해 행정소송을 벌였고 대법원에 3년째 계류돼 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는 새달 1일 대법원에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을 할 예정이다.

변지민 <한겨레21> 기자 d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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