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시 남구 감만동 신선대 부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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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항운노조 ‘채용·승진 비리’ 이근택(58) 부산항운노조 전 상임부위원장 등 부산항운노조 관계자 5명의 양심선언을 계기로 그동안 소문만 무성하던 부산항운노조 금품수수 의혹의 실체가 드러날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조직비 명목 상납액 연 100억 추산
“반장 승진 3천만원 소장은 6천만원”
노조 ‘독점권’신항개장 앞두고 논란 ◇ ‘조직비 상납’ 증언=이씨는 2002년 4월 조합원 87명을 인사이동하는 과정에서 5명에 대한 추천권을 노조위원장으로부터 넘겨받아, 이들을 근무환경이 좋은 부두로 옮겨주는 대가로 2400만원을 받아 400만원을 자신이 챙기고, 나머지 2천만원을 노조위원장에게 상납했다고 9일 기자회견에서 주장했다. 함께 기자회견을 한 설만태(47) 부산항운노조 전 적기연락소장은 1985년 노조에 가입하면서 100만원을 상납했고, 엄창용(42) 적기연락소 조합원은 2001년 가입하면서 500만원을 상납했다고 밝혔다. 부산항운노조 비리를 수사하고 있는 부산지검과 이씨 등에 따르면, 부산항운노조에 가입하거나 조합원이 승진하기 위해서는 ‘조직비’를 노조간부에게 내야 한다는 것이다. “노조에 가입할 때는 일반적으로 상용제 조합원은 1인당 2천만원, 도급제 조합원은 1500만~2천만원의 조직비를 내야 한다. 하지만 도급제 조합원은 일감의 분량에 따라 200만~3천만원까지 큰 차이를 나타낸다”는 것이 노조 관계자들의 증언이다. 또 조합원이 승진할 때 반장은 3천만원, 소장은 5천만원 안팎의 조직비를 낸다는 것이다. 해마다 800여명이 노조에 새로 가입하고, 평균 50여명의 반장과 5명의 소장이 교체되기 때문에 이런 증언이 사실이라면, 조직비의 규모는 연간 100억원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 오래된 비리?=이런 부산항운노조의 금품수수 의혹이 거론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1984년 노동부와 부산시는 부산항운노조를 합동감사해 △조합원 신규가입시 다액의 금품수수가 관례화되어 있고 △임금이 상대적으로 높은 곳으로 옮겨가거나 승진을 하기 위해 14만~50만원씩의 금품이 오가고 있으며 △각종 권한이 노조 집행부에 집중돼 집행부의 독선과 비리가 발생하고 있다는 결과를 내놨다. 이에 따라 노동부와 부산시는 인력관리위원회를 설치하고, 조합원의 순환근무제를 도입하며, 회사가 직접 채용하도록 조직을 개편하라고 개선방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89년 노동부의 특별업무조사 결과 개선된 것은 아무것도 없이 동원연락부라는 불필요한 조직을 새로 만드는 등 오히려 문제가 심각해진 것으로 드러났다. 노무현 대통령은 13대 국회의원 시절 부산항운노조 조합원 350명을 설문조사해 전체의 92%가 돈을 상납하고 노조에 가입했다는 결과를 공개하기도 했다. ◇ 일제 이래의 클로즈드숍 전통=부산항운노조 문제가 고질화된 것은 부산항 부두노무자들의 채용권과 인사권을 노조가 쥐고 있는데다, 노조에 가입해야만 부두노무자로 일할 수 있도록 제한하는 클로즈드숍 형태로 운영되는 구조에서 찾을 수 있다.
클로즈드숍과 항무공급권 등은 1500년대 이후 유럽 각국이 식민지에 부두를 건설하며 현지인들의 반발을 무마하고 협조를 구하기 위해 부두노무자들에게 부여한 혜택으로 20세기 중반까지 전세계의 공통된 현상이었다. 하지만 20세기 후반부터 기계식 부두가 들어서면서 클로즈드숍이 오픈숍으로 전환되는 등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으나 우리나라는 일제시대 때 도입된 형태가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 막강한 위원장 권한=게다가 노조위원장은 권한 강화를 위해 자신의 친인척들을 노조 간부로 배치하고 있다. 박아무개(61) 현 부산항운노조 위원장은 아들과 친인척 등 10여명을 부위원장 등 노조 핵심간부로 두고 있다. 그는 해마다 5월에 열리는 관행을 깨고 지난 1월14일 정기대의원대회를 열어 노조위원장 연임(임기 3년)에 성공했다. 이에 대해 양심선언자들은 노조위원장 출마 자격이 60살 이하로 돼 있어 5월에 정기대의원대회를 열 경우 박 위원장의 출마자격이 상실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편법을 쓴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 논란과 대책=부산항운노조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갈수록 일감이 줄고 있는 재래식 부두의 조합원들을 구조조정해 도급제 부두노무자들의 생활을 안정시키고 노조 신규 가입을 원활히 할 필요가 있다는 제안이 나오고 있다. 이를 위해 자성대부두, 신선대부두, 우암부두 등 기계식 부두의 운영사들은 기계식 부두 개장 때문에 일감이 줄어들게 된 재래식 부두 조합원들의 퇴직금 등을 지원할 목적으로 78년부터 2002년까지 6차례에 걸쳐 257억원의 노임손실보상금을 부산항운노조에 줬다. 하지만 부산항운노조는 220여억원을 노조사무실이 입주해 있는 복지회관과 연락소 건립 등에 사용했을 뿐 일감 감소로 어려움을 겪는 조합원들에게 직접 도움이 되는 용도로는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구조조정 역시 단 한차례도 하지 않았다. 부산항운노조는 내년부터 2011년까지 단계적으로 개장하는 부산신항에도 기존 재래식 부두와 같은 방식으로 조합원을 투입해 운영할 방침이다. 부산신항이 완전 개장되면 30개 선석에 6천여명의 부두노무자가 투입될 예정이다. 부산항운노조는 내년에 개장하는 3개 선석에 훈련을 위해 오는 6월부터 투입될 조합원들에 대해 클로즈드숍, 하역작업권, 성과급제 등 재래식 부두와 같은 운영방식을 보장받는 대신 기계식 부두 개장 때마다 받던 노임손실보상금을 받지 않겠다고 부산신항㈜에 제시했다. 하지만 부산신항㈜ 관계자는 “부산신항 전체 사업비의 60%가 외국자본인데다 외국 운영사들도 대거 입주할텐데 이들이 부산신항의 경쟁력을 떨어뜨릴 것이 뻔한 부산항운노조의 요구를 받아들이겠느냐”며 “노조와 협상을 해봐야 알겠지만, 노조의 요구를 받아들이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부산/최상원 기자 cs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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