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이후 더욱 급격히 늘긴 했지만, 우리나라의 비정규직 문제는 새삼스런 것은 아니다. 그것이 사회적 문제로 제기되지 않고 있었을 뿐이다. 통계청이 임금근로자중 임시·일용직 근로자를 따로 분류하기 시작한 1989년, 비정규직 비율은 이미 45.2%나 됐다. 임시·일용직 노동자 비율은 경기가 좋아지면서 1995년 41.9%까지 낮아졌다가 이후 경기침체와 함께 다시 늘었다. 특히 외환위기 이후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을 계기로 그 비율은 급격히 늘어 2000년 52.1%에 이르렀다. 임시·일용직 비율은 2002년부터 조금씩 낮아져 지금은 50%에 조금 못미친다. 하지만 그것이 고용의 질이 개선되고 있음을 뜻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장기 임시근로자를 비정규직에서 제외해 가장 보수적으로 통계를 잡는 노동부는 2004년 8월 현재 비정규직이 전체 임금근로자의 37%를 차지한다고 밝혔다. 2001년 27.3%, 2003년 32.6%였으니, 연평균 5%포인트씩 늘어난 것이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김유선 소장은 “이는 노동부가 정규직으로 분류하고 있는 장기임시근로자가 기간제근로자로 대체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고용의 질은 지금도 계속 나빠지고 있다는 얘기다. 비정규직은 왜 이렇게 늘어나고 있는 것일까? 비정규직의 증가는 기업들이 임금 비용을 낮추고 경기변동에 따라 고용을 쉽게 조절하기 위한 목적으로 정규직을 비정규직으로 전환하고, 신규채용에서도 비정규직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기업들은 임금비용을 줄여 이윤을 늘릴 수 있었다. 비정규직을 고용하고, 정규직과 임금차이를 두는 데 대해 별 제어장치가 없는 것이 이를 부추겨왔다. 비정규직 증가는 기존의 종신고용-연공서열식 임금시스템이 개별 노동자의 생산성에 맞는 보상 시스템으로 바뀌어가는 것과도 관련이 있다. 기업들이 앞장서 추진하는 이런 변화가 유연하게 추진되지 못하면서 파행적으로 비정규직을 늘려놓은 측면도 있다. 연공임금에 비해 상대적으로 생산성이 떨어지는 고령자들일수록 비정규직으로 밀려나는 경향이 높은 것이 이를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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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문제의 핵심은 하는 일에는 별 차이가 없는데도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 존재하는 차별이다. 현재 비정규직 전체의 임금수준은 정규직의 51% 가량이다. 물론 이는 직종이나 개별 노동자의 생산성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한국노동연구원은 “생산성을 고려할 때 비정규직의 합리적 기대임금은 정규직의 평균 61% 수준”이라고 추산했다. 비정규직은 최소한 10%포인트 가량 불합리한 임금차별을 받고 있다는 얘기다. 제조업체의 경우에는 비정규직이나 정규직이나 하는 일의 성격이 거의 같고 생산성에도 큰 차이가 없어서 차별의 정도는 훨씬 크다. 시장기능이 제대로 작동한다면 비정규직은 똑같은 일을 하는 정규직보다 오히려 더 많은 임금을 받는 것이 합리적이다. 고용불안에 대한 보상까지 얹어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정규직이냐 비정규직이냐는 노동자가 자신의 조건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된다. 그러나 비정규노동센터 김성희 소장은 “지금의 노동시장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간 차별만 따로 해소하는 묘수는 없다”며 “정규직 고용을 원칙으로 하고, 합리적인 이유가 없는 비정규직 고용을 금지하는 것에서부터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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