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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4.27 19:01 수정 : 2005.04.27 19:01

채권추심 비정규직이
240만원 물고 퇴사하는 사연

서울 여의도 ㅇ증권 빌딩 17, 18층에는 엘지카드 통합채권팀 사무실이 자리잡고 있다. 27일 오후, 전화기에 매달려 채무자들과 씨름을 하던 150여명의 여직원들 가운데 통화를 시작한 지 2~3분가량 지난 몇몇 직원들이 갑자기 안절부절 못하기 시작했다.

“3분이 넘는 통화는 회사 모니터링팀의 집중 감시 대상입니다. 통화가 길어질수록 불친절 사례를 적발하기가 쉽기 때문이죠. 이 모니터링에서 ‘전화를 채무자보다 먼저 끊었다’거나 ‘불친절했다’ 등의 결과가 나오면 많을 땐 몇백만원의 벌금을 물어야 합니다.”

이곳에서 근무하는 김아무개(24)씨는 최근 회사로부터 “모니터링에서 적발됐다”며 240만원의 벌금 통보를 받았다. 물론 240만원은 김씨의 월급보다 훨씬 큰 돈이다.

“임금이 성과급 중심이다 보니 직원들은 무슨 수로든 채무자들로부터 카드 빚을 회수하려 안간힘을 씁니다. 관리자들은 매 시간 회수액을 집계하며 직원들을 닥달하고요…실적이 나쁘면 아예 일거리를 줄이고, 퇴근 시간도 실적 순으로 정합니다. 그렇게 실적경쟁을 강요하고 나서, 한두 통의 불친절 사례를 적발해 터무니없는 액수를 월급에서 삭감하는 겁니다.” 한 달에 많으면 1만 통 가깝게 연체고객들과 전화통화를 하는 동료 직원 ㄱ(23)씨의 설명이다.

‘완벽하게 친절한 빚 독촉’ 요구하며 임금은 성과급제


석달간 3만통 전화에 ‘불친절’ 7건…기본급 두배 벌금

이 회사는 “‘불친절’한 경우에 한해 제재를 가한다”고 했지만, 이 ‘불친절’에는 △채무자보다 먼저 전화를 끊거나 △(직원들의 말투와 무관하게) 채무자가 흥분한 어조로 말하는 경우까지 모두 포함된다. 퇴근 순서도 채권 회수 실적에 따라야 하는 직원들에게 ‘완벽하게 친절한 빚 독촉’을 요구하고 있는 셈이다.

벌금체계도 혹독한 누적식이다. 처음 적발 땐 5만원이지만, 8번째 적발 땐 그 한 건만으로 180만원을 물어야 한다. 8차례 ‘문제통화’가 적발되면 모두 600만원을 물게 된다. 이 회사의 최근 ‘페널티 일람표’ 등을 보면 3월에도 직원 29명이 적발돼, 적게는 5만원에서 많게는 240만원까지 벌금을 부과됐다.

직원인 ㅇ(25)씨는 “회사도 양심이 있는지 월 70만~110만여원인 직원들의 기본급엔 손을 대지 않지만, 성과급 하나 바라보고 생리현상까지 참으며 전화를 돌려대는 직원들은 단 한두 통의 ‘불친절’ 전화 때문에 그간 노고가 물거품이 된다”고 말했다.

이들 한 사람이 하루에 거는 통화는 300~500통으로, 벌금 통보를 받은 김씨는 지난 3개월 동안 3만여 통을 걸었고, 그 가운데 7번의 문제통화가 적발됐다. 김씨는 “점심도 굶고 아침 8시부터 밤 9시까지 하루 13시간 동안 목이 잠기도록 일했는데, 다음달 성과급은 한 푼도 못 받게 됐다”고 했다.

가혹한 노동조건은 이뿐만이 아니다. 김씨 등 직원들은 “이유가 어떻든 사흘 이상 연속해 결근해도 곧바로 퇴사하라는 통보가 날아온다”고 했다. 병가는 물론 월차나 생리휴가조차 인정되지 않는다. 아파서 병원에 가려 해도 은행 업무가 마감되는 오후 4시30분 이후에나 가능하다.

“사직할 테니 벌금이라도 줄여달라” 호소에 “나갈 테면 나가라”

이에 엘지카드 쪽은 “벌금을 물리는 것은 친절한 회사 이미지를 위해 어쩔 수 없다”며 “페널티라고 하지만, 성과급 계산 방식의 일환일 뿐이며 벌금이 부과되는 직원들도 많지 않다”고 해명했다.

김씨는 회사 쪽에 “사직할 테니 벌금이라도 줄여 달라”고 호소도 했다. 하지만 돌아온 답은 “나갈 테면 나가라”는 말이었다.

“장학금과 아르바이트로 힘겹게 대학 4년을 마치고 얻은 첫 직장을 떠나야 할 형편입니다.” 김씨의 신분은 ‘파견노동자’였다. 그의 동료들도 거의 대부분 마찬가지다.

현재 엘지카드 말고도 ㅂ보험, ㅎ캐피털, ㅅ카드 등 카드업체나 금융기관에서 이들과 엇비슷한 처지에 있는 파견·계약·도급제 비정규직 노동자는 몇천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한겨레> 사회부 양상우 기자 ysw@hani.co.kr


다음은 김씨가 <한겨레>에 사연을 적어보낸 편지다.

저는 대학생활 동안 4년 내내 장학금을 받고 아르바이트를 해서 생활했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많았기 때문에 ‘많이 힘들고 고되더라도 돈을 많이 벌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지인의 소개로 ‘채권’이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고, 다행히 파견노동자 공급업체를 통해 엘지카드에 입사할 수 있었습니다. 처음 입사했을 때 회사는 부도위기를 겪고 있었습니다. 한 달에 하루 밖에 쉬지 못하고 아침 8시부터 저녁 9시까지 일할 때도 저는 더욱 열심히 일했습니다. 목이 쉬어서 목소리가 나올 수 없을 때도 결근 한 번 하지 않았습니다.

할당(전화로 접촉해야 할 연체고객자 명단)을 받는 날엔 점심을 거르며 일을 하기 일쑤였고, 화장실 가는 시간까지 아껴가며 정말 열심히 일했습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저랑 같이 입사한 동기들이 거의 모두 오래 버티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회사를 그만두거나 불평불만을 쏟아놓을 때도 저는 일한 만큼의 대가를 얻기 위해 묵묵히 일했습니다.

그렇게 1년7개월을 지냈습니다. 지방대를 졸업하고 4학년 2학기에 첫 직장으로 들어왔던 터라 사람에 대한 이유없는 ‘믿음’도 컸습니다.

이제 와 ‘과장님이나 다른 관리자에게 기대를 하지 말았어야 하는데’하는 후회로 제가 힘들어 하는 것도 그 믿음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엘지카드의 부당함을 어떻게든 세상에 알려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참으로 ‘내가 이리도 무력한가’ 하는 생각에 힘이 빠집니다.

회사가 적발한 불친절 전화로 인한 감봉 때문에 퇴직금 정산에도 막대한 피해가 가게 되었고 ‘자진퇴사’로 처리돼 실업급여 또한 받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저는 딸 넷중 막내로 자랐습니다. 또한 부모님께서는 연로하시어 지금 칠십을 바라 보고 계십니다.

부모님이 외진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시며 넉넉지 않은 생활을 하시는 탓에 저는 대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스스로 벌어 학교를 마쳤습니다. 대학교 다닐 때는 라면 하나 사먹을 돈이 없어서 힘든 때도 많았습니다. 그 때 제가 간절이 원했던 것은 아무리 힘이 들어도 괜찮으니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직장이었습니다.

그렇게 4년 동안 장학금과 아르바이트로 졸업을 하였습니다. 4학년 1학기만 마치고, 서울에 올라와 일자리를 알아본 덕분에 그해 9월말에는 엘지카드에 입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서울에선 언니랑 같이 살게 되었는데 월세 돈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지난 가을 생활이 힘들어 월세 방을 옮기려 집을 내놓았지만 6개월이 지나도록 나가지 않고 있고, ‘공부해야겠다’며 뒤늦게 대학에 들어간 언니의 학비까지 도와야 할 형편이었습니다. 결국 3월부터는 집세도 제 때 못내기 시작했습니다. 밥과 김치뿐인 도시락을 싸들고 다녔지만, 시골의 부모님에게 다달이 단 돈 몇만원이라도 부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꼬박꼬박 적금도 들고 아껴가며 생활했습니다. 그런 제게 이번에 회사가 통보한 벌금 240만원을 포함해 모두 400만원이나 되는 감봉 액수는 정말 상상할 수 없는 돈입니다.

남들처럼 컴퓨터도 갖고 싶었고 카메라도 사고 싶었고 예쁜 옷들도 사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항상 기약없는 ‘파견노동자’인 제 처지에 꿈조차 꾸기 힘들었습니다. 제 사회 경험이나 성실성이 부족한 것인지 세상이 험한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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