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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5.01 20:37 수정 : 2005.05.01 20:37

“노동절이요? 욕만 안먹어도…” 상처입은 육신 송금때만 미소

“110만원, 인도네시아로 보내주세요.”

115주년 세계 노동절인 1일 경기 안산시 외환은행 원곡동 지점. 인도네시아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 페라 와티(27)는 현금 다발을 건넸다. 웃음이 절로 난다. “환율이 내려가 인도네시아에서 받는 돈이 늘어났어요.”

그가 한국에 온 것은 2003년. 광산에서 일하는 아버지의 벌이만으로는 다섯 식구가 먹고 살기 힘들어 한국행을 선택했다. 처음에는 말이 통하지 않아 고생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나름대로 ‘삶의 지혜’를 터득했다.

“한국 사람들은 딱 두 가지만 중요하게 생각해요. 빨리빨리 일하는 것이랑 인사 잘하는 것. 이 두 개만 하면 사람들이 만족하더라고요. 큰 소리로 ‘안녕하십니까, 수고하세요!’ 이렇게 말하죠.”

환율덕 금액 늘어나 반색

일이 고된 것은 처음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그는 하루 12시간 일하고, 일요일은 격주로 쉬거나 24시간을 내리 근무한다. 그래도 그는 인도네시아에서 가족들이 돈을 받고 기뻐하는 모습을 떠올리며 고된 노동을 이겨내고 있다. 밤샘 일을 할 때는 신경이 곤두선다. “얼마 전에 한 동료 외국인 노동자가 드릴에 손이 뚫렸는데, 불법체류자라고 보상도 안 해줬어요.”

2년 전 한국에 온 네팔인 비싼(27)은 올해 들어 처음으로 돈을 보냈다. 쿠데타 등 네팔 정국이 혼란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는 “부인이랑 아기가 보고 싶어 많이 울었다”며 “가족들이 돈 받고 좋아할 것을 생각하면서 열심히 일하고, 돌아가면 가게를 열어 가족들과 오순도순 사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외환은행 원곡동 지점은 2003년 국내 최초로 생긴 외국인 노동자용 외환 송금센터다. 일주일에 평균 70~80시간 노동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특성을 감안해 일요일에도 문을 열고 평일에도 저녁 8시까지 영업한다. 노동절인 이날도 가족들에게 돈을 보내려는 외국인 노동자 350여명이 몰려들었다.

거리 떠도는 쓸쓸한 노동절

이정애 대리는 “중국 사람들은 1만원~2만원 하는 수수료도 아까워 돈을 모아 한꺼번에 보내고, 한 달에 100만원 벌어 70만원~80만원 송금하는 사람들도 많다”며 “공장에서 산업재해로 팔이 잘려 받은 돈 3500만원을 송금하던 1984년생 중국 청년을 결코 잊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적어도 2만명의 외국인 노동자들이 사는 것으로 추정되는 원곡동 지역은 불법체류자 단속이 강화돼 위축돼 있다. 실적을 올리려고, 멀리 전남 광주에서까지 찾아오는 단속반원을 피해 외국인 노동자들이 다른 지역으로 옮기고 있기 때문이다. 과일가게를 운영하는 이아무개(52)씨는 “동네 사람들이 단속하지 말라는 서명서도 돌리고, 현수막도 걸었다”며 “열심히 살고 있는 사람들을 그냥 놔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노동절인 이날 원곡동에 사는 일부 외국인 노동자들은 초등학교에서 근처의 한 성당이 주최하는 행사장에 가 나라별로 노래와 춤 등 장기를 뽐냈다. 그러나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하릴없이 거리를 떠돌았다. 마땅히 갈 곳이 없기 때문이다. 스리랑카 출신인 플라스티 가자싱화(28)는 “노동절이 나의 날이라는 생각은 해보지 못했다”며 “우리도 한국말을 알아듣는데, 공장이랑 식당에서 나쁜 말을 안 들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노동절을 맞은 외국인 노동자의 작은 바람이었다.

안산/글·사진 서수민 기자 wikk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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