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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5.09 19:10 수정 : 2005.05.09 19:10

“고통의 세월 신념으로 버텼습니다”

‘요금 8200원 착복’ 누명 벗어

“정의가 살아있다는 확신으로 고통의 세월을 버티어 왔습니다. ”

시외버스 요금을 착복했다는 이유로 7년 동안 근무한 회사에서 해고당한(<한겨레> 2005년 1월26일치 9면) 버스기사 박종만(46)씨. 그는 3년간 끈질긴 해고무효 투쟁 끝에 지난달 28일 대법원에서 마침내 최종 승소했다.

대법원은 회사 쪽인 ㅈ시외버스가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과 박씨를 상대로 낸 부당승무정지 및 부당해고구제 재심판정취소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이를 기각하고 박씨 손을 들어줬다.

노조활동에 적극적이었던 박씨의 불행은 2002년부터 시작됐다. ㅈ시외버스는 차량에 설치한 폐쇄회로티브이(CCTV) 확인 결과, 박씨가 그해 2월5일 전주~마산 구간을 운행하면서, 승객 20명 가운데 18명분만 입금해 나머지 2명분(8200원)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같은 해 6월 박씨를 해고했다. 그는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했다. 1명은 상이군경증을 갖고 있어 요금을 면제해 줬으며, 다른 한명은 무임승차했다고 현금수익 입금표에 기록했다. 그러나 회사는 그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박씨는 전북지방노동위에 구제신청을 했으나 기각됐다. 그러나 중앙노동위는 “확실한 증거가 없다”며 박씨 손을 들어줬다. 그 뒤 회사 쪽은 서울행정법원에서 재심판정 취소 소송을 제기해 승소했으나, 항소심과 상고심에서 모두 패소했다.

힘든 투쟁을 하면서 박씨 가족은 뿔뿔이 흩어졌다. 밀린 월급으로 극도의 경제난에 시달리던 1999년 아내와 이혼했고, 자식들과도 함께 살지 못했다. 그는 동료들이 머무는 회사근처 여관에서 머물며 언제 끝날지 모르는 지루한 싸움을 해왔다.

그는 지난해 12월부터 지나친 신경성으로 시력이 나빠져 안경을 써야할 처지가 됐다. 승소한 이후에는 긴장이 풀어져서인지 온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어버이날을 하루 앞둔 지난 7일 그는 부모님 산소를 찾았다. 재판에 매달리느라 3년간 한번도 찾지 못했던 불효를 만회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산소에서 돌아가신 부모님을 생각하면서 목 놓아 울었다.

중졸 학력이 전부인 그는 “있는 자와 싸움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배워야 한다는 점을 가슴속 깊이 새겼다”며 “회사에서 해고시킨다고 곧바로 떠나지 말고 끝까지 투쟁해 싸워야 이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이라도 회사가 잘못을 인정하면 모든 것을 용서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투쟁기간 동안 힘들 때 분을 삭이면서 거의 매일 일기를 써왔다. 일기 첫 장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돈도 없고 빽도 없고 배움이 없어도 세상을 정직하고 깨끗하게 살아야하며, 남한테 손가락질 받는 그런 사람이 되지 말자. 이 재판을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

전주/박임근 기자 pik00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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