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개별 교섭방식 뇌관 여전
실무회의 앞길도 ‘안갯속’ 전망 71일 동안 파업이 지속된 울산건설플랜트노조 사태가 27일 시민단체들까지 나선 중재 끝에 일단락됐다. 하지만 ‘대화’보다는 ‘물리적 대응’ 위주로 점철된 이번 사태가 남긴 상처도 적지 않다. 최대 쟁점이었던 노조 쪽의 ‘집단교섭’과 사용자 쪽의 ‘개별교섭’ 주장의 타협점을 끝내 찾지 못한 점은, 언제든 사태가 재발할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다. 경과 울산건설플랜트노조가 3월18일 처우개선 등을 요구하며 파업을 시작한 이후, 노조원 35명이 구속되고 180여명이 불구속 입건됐다. 노조 전체 조합원이 1천명선임을 감안하면 노조의 투쟁이 ‘결사항전’ 수준이었음을 확인하게 하는 대목이다. 사용자 쪽이나 자치단체, 정부는 이런 울산건설플랜트 노동자들의 요구를 수용하기는커녕, 조기에 대화의 틀을 짜는 데도 머뭇거렸다. 파업이 장기화하면서 정부는 경찰력을 동원한 물리적 대응 위주로 맞섰다. 이달 한 달 동안 노조의 시위와 집회 과정에서 경찰과 노조원들의 부상자가 각각 116명과 200여명에 이른 것은 이런 사정을 잘 보여준다. 교섭 방식이 뇌관 이번 노사정 합의는 ‘노동자들에 대한 처우개선’ 등 일부 쟁점에서 타결이 이뤄졌음에도 교섭방식에 합의를 이루지 못하는 바람에 ‘폭발성 강한 뇌관’은 제거하지 못했다. 이번 사태가 물리적 충돌 일변도로 흐른 데는 무엇보다도 노사 문제를 평화적으로 푸는 기본 요건인 ‘대화’ 창구 자체가 ‘쟁의’의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애초 노조는 ‘다단계 하도급 금지’와 ‘처우 개선’ 등을 요구하며, 이를 풀어낼 ‘대화창구’로 사용자단체들과 ‘집단교섭’을 요구했다. 수십 명 단위의 개별교섭으로선 노사 협상은 물론 정상적인 교섭 자체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게 노조 쪽 주장이었다. 반면 사용자인 전문건설업체들은 끝까지 ‘개별교섭’을 고집했다. 이와 관련해 전문건설업체 한 관계자는 “집단교섭 방식을 통해 노조가 힘을 갖게 될 경우, 잦은 파업이 벌어져 공사에 차질이 빚어질 것을 우려하는 원청·발주업체들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며 “집단교섭에 응하면 원청·발주업체들이 해당 전문건설업체들한테 공사 물량을 주지 않을 게 분명하다”고 하소연했다. 건설플랜트 노사 문제의 저변엔 원청·발주 업체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순탄하지 않은 앞날 조합원에 대한 불이익을 주지 않는 방법을 논의하기 위한 ‘실무회의’도 이번 노사정 합의 내용에 들어있지만, ‘실무회의’의 앞 길도 순탄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일반적 관측이다. 또 노조와 전문건설업체는 노조원을 채용할 때 어떠한 차별을 하지 않기로 합의했지만, 원청·발주 업체들이 암암리에 개입할 경우 뾰족한 대책이 없다는 설명이다. 일례로, 노사 관계자들 모두, 원청·발주사가 블랙리스트 명단을 작성해 노조원이 포함된 전문건설업체에 공사를 주지 않거나 노조원들의 공장 출입을 막을 경우 뽀족한 방법이 없다는 데 일치하고 있다. 결국 근본적 해법은, 정부나 자치단체가 전문건설업체와 노동자 뿐만이 아니라 원청업체들까지 포괄하는 ‘교섭창구’를 어떤 식으로 만들어 내느냐에 달려 있다고 많은 노동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울산/김광수, 양상우 기자 k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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