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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6.08 19:41 수정 : 2005.06.08 19:41



35년전 “근로기준법 준수” 외치며 분신
기념사업회, 평화시장 앞 버들다리에 추진
서울시 “내부검토…다음주에 의견정리”

1970년 11월13일 서울 청계천 평화시장 앞에서 피복공장 재단사로 일하던 노동자 전태일은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는 외마디를 남기고 숨을 거뒀다. 전태일은 어린 여공들이 일당 70원을 받기 위해 닭장 같은 공간에서 폐병에 시달리며 점심도 거른 채 하루 14시간씩 미싱일을 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노동착취 현장을 고발하려 그의 몸에 불을 질렀다.

그로부터 35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난 지금 전태일 열사가 불꽃처럼 산화한 그곳에서 청계천 복원과 함께 전태일은 다시 부활을 꿈꾸고 있다. 전태일을 기리는 상징물이 곳곳에 세워질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전태일기념사업회는 8일 “이광택 기념사업회 이사장이 지난주 서울시를 찾아 설치미술가 임옥상 화백이 직접 만든 ‘전태일거리 조성안’을 제출했다”고 밝혔다.

‘역사와 일상, 그리고 미래 전망’이란 제목의 조성안을 보면, 평화시장 앞길과 다리를 중심으로 땅바닥과 다리에 조형물이 설치된다. ‘희망’을 상징하는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진 두 개의 큰 손을 버들다리 위에 만들어 멀리서 볼 때 불꽃 이미지로 다가오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시민들과 함께 전태일 조형물을 만드는 계획도 마련됐다. 시민 9천여명이 전태일을 기리며 자신의 염원과 희망을 담은 글을 다리 바닥에 동판으로 제작해 설치한다. 다리 바닥 중간중간엔 ‘전태일’을 수메르글자, 아랍어, 한자, 산스크리트어, 영어 등 다양한 언어로 조각하기로 했다.

전태일이 분신한 평화시장 들머리 바닥에는 가로 2m, 세로 5m 크기의 눈동자를 형상화한 조형물을 만들고, 시장 바닥 군데군데에도 전태일의 생애를 담은 바닥 조형물을 제작할 계획이다.


전태일의 부활은 쉽지 않았다. 청계천 복원 공사가 시작되면서 2003년 12월 서울 청계천6가 평화시장 횡단보도 앞바닥에 새겨진 ‘전태일열사 분신 동판’이 아스팔트를 걷어내는 과정에서 뜯기어 물의를 빚었다.

▲ 설치미술가 임옥상 화백이 만든 ‘전태일거리 조성안’에 나와 있는 조감도. 버들다리 위에 설치된 두개의 큰 손은 ‘희망’을 상징한다.



기념사업회를 비롯한 시민단체들은 서울시에 청계천6~7가를 ‘전태일거리’로, 이곳에 만들고 있는 다리(버들다리)를 ‘전태일다리’로 이름붙일 것을 줄곧 요청했다. 또 서울 방산동 일대 1만3천평 규모의 미군 공병부대 터에 연건평 600평 정도의 기념관을 세우는 데 협조를 구했다.

하지만 시는 “다리 이름은 시 지명위원회의 심의를 거쳐야 하는데, 사망한 지 100년이 넘지 않을 경우 이름붙이기가 어렵다”며 거부했다. 또 공병단 터에 대해서도 교육부 소유라며 손사래를 쳤다.

대신 시는 전태일거리에 대해서는 안을 가져오면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장석효 서울시 청계천복원추진본부장은 “기념사업회가 낸 조성안을 이명박 시장에게 보고하고 내부적으로 검토하겠다”며 “다음주 안으로 서울시의 의견을 정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 평화시장 앞 버들다리의 확대장면. 제공 전태일기념사업회



1980년대 청계피복노조를 이끌었던 민종덕씨는 “1960~80년대 경제 성장을 이끌었던 노동자들을 위한 조그만한 공간조차 허용하지 않는 우리 사회에 대해 실망도 많이 했다”며 “우리 사회가 사회적인 약자에 대한 배려에 좀더 신경 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황만호 기념사업회 사무국장은 “서울시가 다리 이름은 바꿀 수 없다고 통보했지만, 버들다리 위에 전태일을 기리는 디자인을 넣는다면 실질적으로 전태일다리가 될 것”이라며 위안을 삼았다.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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