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1.19 18:18
수정 : 2005.01.19 18:18
“사회연대·복지문제 새 해법 탐구”
“감옥에서도 ‘왜 한국 노동운동은 급격하게 변화하는가’라는 고민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자연스럽게 박사학위 논문으로까지 이어졌죠.”
1980년대 노동운동에 헌신하며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을 결성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6년 동안 감옥살이를 했던 은수미(41)씨가 서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강단에 선다. 1982년 이 대학의 사회학과에 입학하고 23년 만이다.
은씨는 97년 감옥에서 나와 복학했지만 6년 동안의 독방생활 후유증은 심각했다. 그는 “처음에는 어두운 영화관이나 지하실에 들어가지 못했다”며 “여러차례 등산을 하려고 시도했는데 등산은 아직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카를 데리고 미끄럼틀에 올라갔다가 내려오지 못했을 정도였다고 했다. 그는 98년에 학부를 졸업하고 99년 석사, 2001년 박사 과정에 진학했고, 대학 동기와 결혼식도 올렸다.
은씨의 박사학위 논문 제목은 〈한국노동운동의 정치세력화 유형 연구〉로, 1983년부터 2004년까지의 한국 노동운동의 변화에 대해 고찰하고 있다. 84년 서울 구로공단에서 미싱을 배우며 노동현장에 투신했던 그에게는 자신의 운동사를 정리하는 셈이다. 그는 “90년대 중반 한국 노동운동은 ‘뒤늦은 성장, 때이른 후퇴’라고 보는 공감대가 있었다”며 “위기와 함께 새로운 가능성이 있다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에 논문을 써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그는 민주노총의 ‘상징’과 ‘실제 구조’가 일치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민주노총 중앙은 사회적 의제 등에서 전체 국민의 이해를 대변한다며 일관된 모습을 보이지만, 실제 지역의 행위구조는 정규직 이기주의가 심각하게 나타나는 등 두쪽의 불일치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민주노동당도 ‘낡은’ 계파들의 존재가 이념틀의 형성과는 무관하게 존재한다면서 이를 극복하고 새로운 청사진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은씨는 올해 1학기 서울대 사회학과에서 강사로 나서 자신의 구체적인 경험을 토대로 ‘사회운동론’이라는 전공과목을 강의한다. 그는 “요즘 학생들은 시민운동에 익숙한데, 한국에서는 노동운동과 시민운동이 한 뿌리에서 나왔고, 과거와 현재가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드러낼 것”이라며 “지금은 연대와 복지의 문제가 제기되지 않지만 80년대와는 다른 방식으로 어떻게 이 문제를 발전시켜야 하는지 학생들과 함께 가능성을 탐구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아직도 사회 초년생 같은 느낌”이라며 “학생들이 강의를 좋아했으면 한다”고 했다.
황상철 기자
rosebud@hani.co.kr 사진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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