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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1.19 18:47 수정 : 2005.01.19 18:47

허준영 제12대 경찰청장의 취임식이 열린 19일 오전 서울 미근동 경찰청 앞에서 지난해 말 집단 직권면직을 당한 전국경찰청 고용직 공무원들이 기능직으로의 전환을 요구하며 시위를 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bluehey@hani.co.kr



집단면직 경찰청 고용직 584명‘시련의 겨울’

김은미(28·전국경찰청 고용직공무원 노동조합 강원지부장)씨는 경찰청 소속의 엄연한 공무원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12월31일 전국의 동료 584명과 함께 집단 직권면직을 당했고, 지금은 서울 여의도 민주노동당사에서 ‘기능직’으로의 전환을 요구하며 30일째 단식 농성중이다. 경찰청이 밝힌 직권면직 사유는 “이제 할 일이 없다”는 것이었다.

대부분이 여성…한달째 단식 농성중
"하위직에 정책실패 떠넘기나" 분노

99%가 여성인 고용직은 단순 노무에 종사하는 공무원을 말한다. 정부는 지난 1989년 ‘고용직 공무원’ 제도를 폐지하기로 하고, 자연감소하는 인원을 충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인력을 감축해 왔다. 그러나 일부 지방자치단체와 경찰청은 고용직 공무원을 ‘음성적으로’ 계속 신규채용해왔다. 그들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김씨가 강원도 원주의 한 파출소에 고용직 공무원으로 취직한 것은 지난 1994년 1월, 고3 겨울방학 때였다. 6년동안 근무하던 동네 언니가 결혼을 앞두고 그만두면서 김씨를 소개한 것이었다. 마침 부모가 모두 몸져 누워있는 상태라 직장을 알아보고 있던 터였다.


“봉급이 19만8천원밖에 안되지만 그래도 공무원 아니냐. 일용직하고는 달라. 곧 기능직이 될 수 있을 거야. 열심히만 하면 좋은 세월 올 거다.”

김씨는 파출소 경찰관 아저씨들이 하는 말을 굳게 믿고, “내 집처럼” 열심히 일했다. 직원들의 식비를 절약하기 위해 재료를 사다가 직접 밥을 지었고, “타일이 떨어져 나갈 정도로” 화장실을 청소했다. 컴퓨터가 도입되기 시작하면서는 나이 많은 경찰관들에게 컴퓨터도 가르쳐 줬다. 각종 문서수발은 차라리 가욋일이었다. 경찰서 생활안전과로 옮기고 나서는 관내 파출소에서 올라오는 일일 업무보고를 챙기고, 각종 범죄 발생 및 검거 현황, 범죄분석시스템 통계 내기 등 모든 직원의 도우미 노릇을 했다.

그러나 경찰은 지난 2003년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가 각 기관에 구조조정안을 제출하라고 요구했을 때, 고용직을 없애는 대신 수사·생활안전 등 핵심인력을 늘이는 방안을 보고해 승인을 받았다. 결국 정규직 인력을 늘리기 위해 약자인 고용직을 희생시킨 것이다. 2003년 496명이 1차로 내몰렸고, 2004년에는 김씨를 포함한 584명이 면직 대상이 됐다.

“10년동안 열심히 일한 대가가 해고라니…. 명색이 공무원인데….”

어처구니가 없었다. 같은 처지에 처한 동료들과 힘을 합쳐 노조를 만들려고 했으나, 이마저도 거부당했다. 서울지방노동청 남부지방노동사무소는 “국가공무원은 노동조합을 조직하거나 가입할 수 없다”며 반려했다. 국가인권위에도 진정을 냈지만 “같은 국가기관끼리 뭐라 말하기 어렵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경찰은 각 경찰서 정보과 형사를 몇명씩 붙여 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다. 남편 직장에 찾아가 “마누라 단속 잘해라. 그렇지 않으면 무슨 일 생길지 모른다”며 으름장을 놓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남편이 경찰인 조합원들은 실제로 인사상 불이익을 당하기도 했다.

노동계는 정부가 주먹구구식 인력운용으로 인한 정책실패를 하위직 공무원들에게 일방적으로 떠넘겨 실업자를 되레 양산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권두섭 민주노총 법률원장은 “직제가 없어진 뒤 16년동안 고용직을 꾸준히 신규채용해 왔고, 경찰서가 사라지지 않는 한 이들의 업무도 사라지지 않는다”며 “면직처분 취소소송을 준비중”이라고 밝혔다.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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