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1.04 11:19
수정 : 2019.01.05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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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19일 오후 서울 시내 편의점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이 손님들을 응대하며 계산하다가 잠시 손님이 없을 때 편의점 진열대를 살피며 수량 등을 체크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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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The) 친절한 기자들]
임금 걱정 없이 쉬라고 주는 주휴수당
악명 높은 장시간 노동 국가에서 도입
노동계·전문가 “임금체계 개편이 핵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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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19일 오후 서울 시내 편의점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이 손님들을 응대하며 계산하다가 잠시 손님이 없을 때 편의점 진열대를 살피며 수량 등을 체크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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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최저임금 8350원이 적용되면서 ‘주휴수당 폐지’를 주장하는 경영계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지난해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넓히는 데 성공한 경영계가 올해는 주휴수당을 빼자고 합니다.
주휴수당은 1953년 근로기준법이 처음 제정될 때부터 있던 오래된 제도입니다. 임금의 16∼17%를 차지해 주휴수당을 빼면 그만큼 임금이 깎입니다. 과연 사용자 부담을 이유로 주휴수당을 없애도 되는 걸까요? ‘더 친절한 기자들’이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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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 걱정 없이 맘 놓고 쉬도록
근로기준법 55조에서 정한 주휴수당은 일주일에 15시간 이상 일하고 정해진 날짜를 개근하면 지급되는 하루 치 유급휴일수당입니다. 학계는 노동자에게 ‘임금 감소 없는 휴식’을 부여하라는 의미로 보고 있습니다. 1953년 도입 당시 임금이 워낙 낮아 노동자들이 쉬는 날도 없이 일해야 생계유지가 가능했지요. 그래서 일주일에 하루만큼은 임금 걱정 없이 마음 놓고 쉬라는 취지로 만들어졌습니다.
보수언론은 이런 역사를 뒤집어 주 5일제 시대에는 주휴수당을 폐지하자고 합니다. 실상은 주장과 다릅니다. 고용노동부가 2016년 12월 낸 ‘근로시간 운용 실태조사’를 보면 토요일에 일하는 사업체는 46.9%, 휴일에 일하는 사업체는 20.7%로 나타났습니다. 초과근로 일상화로 초과근로수당을 사실상 기본급처럼 받는 노동자도 태반입니다. 지난해 ‘주 52 시간제’가 시행될 때 제가 만난 많은 노동자는 노동시간 단축을 반기면서도 “휴일근로수당 몇푼이 아쉬운 처지라 큰일”이라고 걱정했어요.
심지어 수당을 포함한 임금을 통째로 정하는 포괄임금제로 '공짜' 주말근무를 강요하는 회사도 많습니다. 주말에 일하라는 상사 지시를 당당히 거부하는 노동자, 주변에서 얼마나 보셨나요? 한국인은 1년에 2000시간 이상을 일합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멕시코 다음으로 노동시간이 길지요. 여전히 한국의 노동자들은 휴식권을 충분히 누리기 어렵습니다.
보수언론은 주휴수당이 없는 선진국 사례로 독일·프랑스·미국·일본을 주로 꼽는데요. 미국과 일본은 1700시간대, 프랑스는 1500시간대, 독일은 1300시간대의 연간 노동시간을 자랑합니다. 독일은 휴일노동을 법으로 엄격히 금지합니다. 프랑스도 2015년 일요일 영업을 허용하기 전까지 100년 넘게 독일과 같은 원칙을 유지했어요. 법정 노동시간 한도만 지키면 주 7일을 일해도 법으로 막을 수 없는 한국과 상황이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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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휴수당 가진 나라 장시간 노동
한국에만 주휴수당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대만·터키·타이·멕시코·콜롬비아·브라질 등이 법으로 주휴수당을 보장하고 있어요. 스페인과 인도네시아는 최저임금을 하루 단위로 정한 뒤 30일을 곱하기 때문에 사실상 주휴수당이 포함돼 있습니다. 브라질과 스페인을 뺀 나라들은 장시간 노동으로 악명 높은 나라들입니다.
이름은 다르지만 쉬는 날에 수당을 주는 제도는 여러 나라에 있어요. 네덜란드는 유급휴가를 떠난 노동자에게 휴가수당(총연봉의 8% 이상)을 따로 챙겨줘야 합니다. 영국도 휴가비를 별도로 지급하고 시급에는 포함하지 않습니다. 브라질은 헌법에서 기본급 100%의 연말 상여금과 기본급의 3분의 1의 휴가비 등을 보장합니다. 이런 휴일수당은 대체로 한국의 주휴수당과 달리 개근 여부와 관계없이 지급됩니다.
왜 많은 나라에서 노동자에게 ‘쉬는 비용’을 보장하는 걸까요? 노동자가 노동력을 회복해 다시 일할 수 있게 하는 것도 사용자 책임이고 사회적 약속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노동자들은 연차휴가와 출산 전후 휴가도 유급으로 보장받지요. 고용 관계는 일로만 따지는 민사상 도급 계약과 다르니까요. 이런 맥락을 생각하면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무조건 대입해 주휴수당이 불합리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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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은 복잡한 임금체계 개편
“장기적으로 보면 주휴수당은 없애야 한다”는 목소리가 진보적 학자들 사이에서 나오기도 합니다. 이는 복잡한 임금체계를 단순화하자는 취지이지 사쪽의 부담을 줄여주자는 것은 아닙니다. 임금을 보존하면서 임금체계를 단순화하는 '주휴수당 기본급화’를 요구하는 것이지요. 주휴수당이 경영계 요구처럼 사라지면 임금의 16∼17%가 날아가거든요.
주휴수당 논란을 ‘유발하는’ 임금체계 개편이 대안입니다.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지금의 임금체계는 상여금·수당이 워낙 많고 복잡해 제도적인 왜곡이 생기고 노동자 입장에서도 ‘권리 찾기’가 쉽지 않아 개혁해야 한다”며 “주휴수당만 단편적으로 볼 것이 아니라 임금체계 전체의 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최저임금위원회 30년사>를 보면 주휴수당은 이전에는 논란이 되지 않다가 두 자릿수 최저임금 인상이 결정된 2017년에야 논의 거리로 등장해요. ‘주휴수당 폐지’ 주장이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격’이라는 점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단순히 주휴수당을 없애는 대증요법으로 소모적 갈등을 불러일으키기보다는 통상임금과 최저임금 산입범위 등을 포함한 임금체계의 전반적 개혁이라는 현명한 접근이 필요한 때입니다.
이지혜 기자
god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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