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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1.16 08:49 수정 : 2019.01.16 13:18

15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국제노동기구 결사의 자유 협약 비준 촉구 토론회’에서 유정엽 한국노총 정책실장이 발언하고 있다.

“핵심협약 비준 빌미로 노동권 후퇴라니”
경영계 핵심협약 위반하는 주장 쏟아내
협약 비준 위한 선입법안은 초라한 수준

15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국제노동기구 결사의 자유 협약 비준 촉구 토론회’에서 유정엽 한국노총 정책실장이 발언하고 있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산하 노사관계제도관행개선위원회(이하 노개위원회)에서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논의가 한창인 가운데 노동계가 “핵심협약 비준을 빌미로 경영계가 숙원과제를 해결하려 한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전문가들은 경영계의 요구 사항인 ‘대체근로 전면 허용’ 등이 핵심협약에 위반된다고 비판했다.

15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국제노동기구 결사의 자유 협약 비준 촉구 토론회’에서 유정엽 한국노총 정책실장은 “현재 경사노위 산하 노개위원회는 핵심협약 비준을 하려면 경영계의 합의가 필요하다며 단체교섭·쟁의행위 제도 ‘개악’ 요구를 논의 테이블에 올리고 있다”며 “패키지 협상을 추진할 것이 아니라 경영계 요구가 핵심협약에 합당한지부터 재검토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번 토론회는 민주주의법학연구회,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 등 노동법률단체와 국회 헌법33조위원회가 공동주최했다.

앞서 노개위원회는 지난해 11월 결사의 자유 관련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최소 입법과제를 공익위원안 형태로 발표했다. 이는 주로 단결 관련 내용이고, 오는 1월 말까지 단체교섭·쟁의행위 관련 내용을 추가 논의하기로 했다. 단체교섭·쟁의행위 제도 개편은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필수 사안이 아니지만, 정부는 “경영계 합의를 끌어내려면 경영계 요청 사항을 어느 정도 반영해줘야 하지 않냐”는 태도를 보여왔다. 실제로 노개위원회에 노동자위원으로 참여 중인 유 실장은 “단체교섭·쟁의행위 관련한 노동계의 요구 사항은 노개위원회에서 거의 논의되지 않는다. 경영계 요구 중에서 반영 가능한 것이 무엇이 있는지 살펴보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핵심협약 빌미로 노동권 후퇴

문제는 경영계 요구 사항이 노동삼권을 상당히 후퇴시키는 내용으로 핵심협약에 정면으로 배치될 소지도 있다는 점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경영계의 주요 요구 사항인 ‘대체근로 전면 허용’이 대표적이다. 결사의 자유 위원회 판정례집을 보면 “엄격한 의미에서 필수 서비스라고 간주할 수 없는 부문에서 파업을 파괴하려 노동자를 고용하는 것은 결사의 자유의 심각한 침해”라는 해석이 일관적으로 나타난다.

1990년 미국 최대 노조 연합체인 산별노조총연맹(AFL-CIO)이 파업 시 대체근로를 허용하는 미국 정부를 국제노동기구에 제소한 사건에 대해 결사의 자유 위원회는 “다른 노동자가 자신의 일자리를 합법적으로 영원히 빼앗아 갈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면 파업권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다고 본다”고 판단한 바 있다.

이날 발제를 맡은 윤애림 민주주의법학연구회 대외협력부위원장은 “이미 현행법에도 사업주가 쟁의행위로 중단된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신규 채용, 도급, 내부 대체인력 투입 등을 하는 것이 폭넓게 허용되고 있어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며 “대체근로를 전면 허용하라는 경영계의 요구는 파업권을 실질적으로 무력화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 다른 경영계의 요구 사항인 ‘단체교섭 유효기간 3∼5년으로 연장’도 마찬가지다. 경영계는 현행 최대 2년으로 정해진 단체교섭 유효기간을 더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국제노동기준 위반이다. 2007년 결사의 자유 위원회는 캐나다 노동조합들이 퀘벡 주정부를 제소한 사건에서 “단체협약 유효기간에 3년간의 법령상 제한을 부과하는 것은 결사의 자유에 대한 상당한 제한”이라고 판단했다. 3년 이상의 장기 단체협약이 가능해지면 노동자의 임금·근로조건이 지나치게 오래 ‘제자리걸음’을 하게 된다는 문제의식이다.

비준 위한 입법안 초라한 수준

다분히 ‘경영계 편향적’인 노개위원회 논의의 바탕에는 지난해 11월 발표된 공익위원안이 노동계의 요구를 많이 반영했다는 인식이 있다. 그러나 정작 공익위원안을 바탕으로 만든 법안을 보면 아쉬운 부분이 많다. 지난해 12월28일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공익위원안을 토대로 노동조합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을 살펴보면, 현재 사실상 ‘허가제’로 운영되는 노동조합 설립신고제도 개선을 위한 입법사항은 포함되지 않았다. “근로자가 아닌 자의 가입을 허용하는 경우 노동조합으로 보지 않는다”는 내용의 노동조합법 제2조 제4호 라목은 수년간 국제노동기구의 수정 권고 대상이었지만 일부만 고쳐지고 그대로 남았다.

아울러 해고자, 실업자, 상급노조 임원 등의 노동조합 활동을 제한하는 문구도 포함돼 논란의 여지가 남았다. 신설 조항으로 해고자, 실업자, 상급노조 임원 등 사업장에서 일하지 않는 조합원이 특정 사업장에서 노동조합 활동을 하려면 사용자에게 목적·시기·장소·인원 등을 정해 통보해야 한다고 정한 부분이다. 지금은 판례상 상급노조 임원은 본질적인 시설관리권을 침해하지 않고 정당한 조합활동을 하는 한 특정 사업장에 출입하는 것이 가능하다. 유정엽 실장은 “개정안에 따르면 상급노조 임원은 조직 대상인 사업장에 출입할 때 추가적인 제한을 받게 된다”며 “과거 악법이었던 ‘제삼자 개입금지’ 제도가 부활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글·사진 이지혜 기자 god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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