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1.21 07:16
수정 : 2019.01.21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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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지난해 10월12일 오전 노사정대표자회의가 열리는 서울 새문안로 에스타워 앞에서 열린 'ILO 핵심협약 비준과 7대 입법과제 연내처리 촉구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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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고자 등 빠진 ‘근로자’ 조항 문제
택배기사 등 근로자성 불인정 지적
‘파업 업무방해죄 처벌’도 개혁 요구
“EU압박 지렛대 삼아 정부가 해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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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지난해 10월12일 오전 노사정대표자회의가 열리는 서울 새문안로 에스타워 앞에서 열린 'ILO 핵심협약 비준과 7대 입법과제 연내처리 촉구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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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연합(EU)이 한국 정부에 제기한 노동기본권 관련 공식 무역분쟁해결 절차가 시작됐다. 2011년 7월부터 발효된 한-유럽연합 자유무역협정(FTA)에서 양쪽은 핵심협약 비준을 약속했지만 한국 정부가 이를 지키지 않고 있다는 것이 주요 쟁점이다. 유럽연합 쪽은 핵심협약에 반하는 한국 현행법 조항까지 언급하며 강도높은 협의를 요구하고 있으나 한국 정부의 대응은 미온적이어서 갈등이 예상된다.
21일 오후 서울 중구의 한 호텔에서 한국 정부와 유럽연합 대표부는 ‘한-유 자유무역협정’ 무역과 지속가능발전 장의 핵심협약 비준 의무에 대한 ‘정부간 협의’를 개최했다. 이날 미카엘 라이터러 주한유럽연합대표부 대사는 “무역은 재화 및 서비스 교환 이상으로 기준과 가치를 지킨다는 의미다. 지금까지 한국 정부의 행동은 충분하지 않다”며 “한국에 국제노동기구 핵심협약 국회 비준과 노동관계법 및 행정 개혁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또 유럽연합은 보도자료에서 “(협의) 결과물에 국제노동기구의 권고가 반영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앞서 유럽연합이 요구했던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구체적인 일정’에서 나아가 ‘국제노동기구 권고사항 반영 여부’까지 협의 사항에 포함된 것이다.
유럽연합의 요구는 상당히 구체적이다. 지난해 12월17일 유럽연합이 정부간 협의를 요청하며 낸 보도자료를 보면, 한국 현행법 가운데 문제 조항을 직접 언급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근로자’를 직업의 종류를 불문하고 임금·급료 기타 이에 준하는 수입에 의하여 생활하는 자로 규정하는 노동조합법 2조 1항이 지적됐다. 한국 판례상 종속적 자영업자·해고자·실업자 등이 ‘근로자’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근로자가 아닌 자의 가입을 허용하는 경우 노동조합으로 보지 않는다”고 정한 노동조합법 2조 4항 라목도 문제 삼았다. 법적으로 ‘자영업자’ 신분인 택배기사·대리운전기사·학습지교사 등 특수고용노동자들은 노동조합 설립 과정에서 ‘근로자성’이 문제가 돼 오랜 갈등을 겪은 바 있다.
노동조합 임원 자격을 재직자로 제한한 노조법 23조 1항과 정부가 노동조합 설립신고서를 반려할 수 있도록 정하는 노동조합법 10조·12조도 문제가 됐다. 국제노동기준은 노동조합 가입·활동·임원 자격을 전적으로 노동조합 자율에 맡겨야 한다고 정하고 있으며 노동조합 설립 과정에서 당국의 실질적 심사가 이뤄지는 경우 결사의 자유원칙 위반이라고 여러 차례 밝혀 왔다. 아울러 노동자의 기본권인 파업에 형법상 업무방해죄를 적용해 처벌해온 관행도 개혁 대상으로 지목됐다. 그동안 법원·검찰은 파업에 형법을 적용하면서 노동자의 파업권을 사실상 무력화해왔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러한 유럽연합 쪽의 요구는 앞서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논의된 노동조합법 개정 수준을 훨씬 상회한다.
유럽연합이 무역협정에서 노동기본권을 둘러싸고 정부간 협의를 요청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유럽연합은 “정부간 협의는 상호 이해관계가 걸려있는 어떤 사안이든 양측 소통을 공식적으로 강화하는 방법”이라면서 한국의 낮은 노동기본권 수준이 유럽연합의 이익을 침해하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한국 기업이 노동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방식으로 불공정한 이득을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유럽연합 내부에서 한국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여온 강경파가 주로 통상 분야에 속한 이들이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유럽연합은 이튿날 한국 노사단체도 차례로 만나 간담회를 가질 예정이다. 이번 협의를 통해 만족스러운 해결책을 얻지 못할 경우 한국·유럽연합·제3국의 전문가가 6명씩 참여하는 ‘전문가 패널’이 소집될 예정이다. 전문가 패널은 권고 보고서를 양쪽에 전달하고 이후 ‘무역과 지속가능발전위원회’에서 이행사항을 점검하게 된다.
한국 정부의 대응은 미적지근하다. 이날 김대환 고용노동부 국제협력관은 모두발언을 통해 “핵심협약 비준을 위해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진행 중인 결사의 자유 협약 비준 관련한 사회적 대화를 지원하고 있다”면서 기존의 입장을 되풀이 했다. ‘사회적 대화’가 한국 정부의 “계속적이고 지속적인 노력”이라는 것이다. 한국 정부는 ‘야당의 반대’를 이유로 노사 합의 외에 구체적인 로드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앞서 한국 정부가 여러 차례 “사회적 대화를 통해 핵심협약 비준을 추진하고 있다”고 해명했음에도 유럽연합이 정부간 협의 요청을 강행했다는 점에서 해결책을 도출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윤애림 서울대 고용복지법센터 연구위원은 “한국 정부는 핵심협약 비준과 관련해 국제 사회에 새롭게 내놓을 대책이 전무한 상황이다. 유럽연합의 압박을 지렛대 삼아 국회나 경영계를 설득하려는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노동계는 정부에 적극적인 대처를 요구했다. 류미경 민주노총 국제국장은 “한국 정부는 사실상 사회적 대화에 핵심협약 비준 여부를 내맡긴 채 의무를 방기하고 있다. 정부가 유럽연합에 더 진전된 대답을 내놓지 못한다면 스스로 한 약속도 지키지 못하는 무책임한 국가로 남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유 자유무역협정은 다자간 무역협정 중에서는 처음으로 제13장(무역과 지속가능발전 장)을 통해 양쪽의 노동·환경 관련 의무사항을 담았다. 양쪽은 국제노동기구 핵심협약과 최신 협약 77개 비준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하며 자국의 노동법을 효과적으로 집행하지 않아 무역과 투자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는 의무 위반으로 본다는 내용이다.
이지혜 기자
god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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