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1.24 18:02
수정 : 2019.01.25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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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화력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씨가 숨진 곳에서 동료 노동자가 고착탄을 제거하는 모습을 재연하고 있다. 청년 비정규직 고 김용균 시민대책위원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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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용균씨 일했던 태안화력 비정규직 인권실태조사 결과 발표
동료 노동자 “노예같이 일했다”…서울대병원 빈소선 사회원로들 비상시국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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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화력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씨가 숨진 곳에서 동료 노동자가 고착탄을 제거하는 모습을 재연하고 있다. 청년 비정규직 고 김용균 시민대책위원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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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용균이처럼 낙탄을 손으로 끄집어내다가 헬멧이 벨트에 닿아서 벗겨진 적이 있었어요 . 운 좋게 헬멧이 턱 끝에 걸려서 그랬지 아니면 저도 휩쓸려갔겠죠 .”
“컨베이어 벨트에서 훅하던 느낌은 누구나 있어요 . 없는 사람이 없어요 . 참고 하는 거지. 그 느낌이 없었다는 건 현장에서 일을 안 했다는 거예요 .”
-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 인권실태조사 보고서
24일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 인권실태 보고회’에서 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과 인권 현황이 공개됐다. 보고회는 고 김용균씨 동료인 태안화력 비정규직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인권실태 조사 결과를 발표하는 자리로, 김씨의 동료들도 참석해 위험이 일상이 된 현장의 노동 실태를 증언했다.
조사에 참여한 활동가와 노동자는 태안화력의 다른 비정규직 노동자들 또한 고 김용균씨처럼 상시적으로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인권 활동가 박상은씨는 “태안화력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추락의 위험 △일산화탄소 중독 위험 △낙탄 처리 중 위험 등에 처해 있었다”며 “많은 노동자들이 낙탄을 제거하다 삽이나 봉이 빨려 들어간 경험을 했고, 삽이나 봉을 놓는 타이밍을 놓쳐 끌려가 부딪치는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박씨는 이어 “한 노동자는 (기계 이상을 확인하다) 옷이 빨려 들어가 30분을 버티기도 했다”며 “‘30분 간 어깨가 긁힌 상태로 버티다가 누군가 소리를 듣고 기계를 멈췄다’고 했다”고 덧붙였다.
김씨의 동료인 태안화력 청년 노동자들도 직접 열악한 노동 실태를 증언했다. 태안화력의 하청업체인 한국발전기술지부 태안지회 조합원인 ㄱ씨는 “현장 노동자들은 석탄재가 흩날려 앞이 안 보이는 데도 조그마한 손전등과 있으나 마나 한 마스크를 끼고 낙탄 제거 업무 등을 했다”며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할 때도 있었고 노예같이 일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조합원 ㄴ씨는 “저희는 다치지 않고 죽지 않는 현장에서 일하고 싶을 뿐”이라며 “회사에 설비개선 요청을 해도 비용 문제, 계약상의 문제를 말하며 회피하기 급급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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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 인권실태조사 보고회에 참석한 인권활동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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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단은 이처럼 위험한 노동 현장의 밑바탕에는 ‘안전할 수 없는 구조’가 깔려 있다고 지적했다. 박상은씨는 “밥 먹을 시간도 부족한 상황에서 일상적 안전 교육은 이뤄질 수 없었고 설비와 장비는 부실해 있으나 마나 한 상태였다”며 “하청 노동자는 현장 상황 통제를 자유롭게 하기도 어렵다”고 설명했다.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 대용은 “(태안화력의) 지시 체계는 위계적이었으며 카카오톡을 통한 지시가 이뤄지는 등 적절한 소통수단이 부재했다”며 “절차가 간소해진 만큼 업무지시는 쏟아졌고 노동자가 위험에 처하는 상황은 고려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날 오전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김씨의 빈소 앞에서는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사장 등 사회 원로들이 진상규명과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비상시국선언 기자회견을 열었다. 백 소장은 이 자리에서 “우리 용균이를 누가 죽였냐”라며 “비정규직이라는 체제가 죽였고 사람이 일할 수 없는 작업장에서 일하도록 모는 자본주의 체제가 죽였다”고 비판했다. 이 이사장은 “용균이 영정 앞에 어떻게 서야 할지 어쩔 줄 모르는 참담한 심정”이라고 털어놨다. 자리에 함께한 김씨의 어머니 김미숙씨는 “서부발전 사장 김병숙을 일벌백계해 다시는 국민의 목숨을 우습게 여기지 못하도록 만들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김민제 기자
summ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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