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3.04 08:04
수정 : 2019.03.04 08:04
산재와 싸움 넘어 제도 개선 요구
“의사로만 구성된 판정위도 바꿔야”
반올림은 ‘시즌2’에서 산재와 관련된 제도를 개선하는 데 힘을 실을 예정이다. ‘반올림 시즌1’의 사례들을 보면 기업은 영업비밀 외에도 “사용 물질에 대한 정보가 없다”거나 “사용 물질 기록을 폐기했다”며 정보 공개를 피했다. 기업이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공장에서 쓰는 화학물질을 공개하지 않으면 직업병을 앓는 노동자들은 자기 병과 일 사이의 인과관계를 설명할 방법이 없고 산재보상을 받기 어렵다.
반올림은 기업이 단순히 사용한 화학물질을 공개하는 것을 넘어서 직접 화학물질의 위해성을 파악해 공개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3일 직업환경의학 전문의인 반올림의 공유정옥 활동가는 “첨단 전자산업에서 신물질을 많이 사용하고, 섞어서 많이 쓰기 때문에 화학물질을 공개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기업이 해당 물질의 위해성을 직접 연구해서 정보를 생산하고 공개·보관의 의무를 지도록 제도를 바꿔야 한다”고 제안했다.
한 걸음 나아가 직업병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도 목표다. 대법원은 2017년 8월29일 산재 관련 판결에서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서 업무와 질병 사이의 인과관계는 반드시 의학적·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증명돼야 하는 것은 아니다. 법적·규범적 관점에서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고 인정되면 증명됐다고 봐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노동자가 직업병과 노동환경 사이의 인과관계를 밝히고 자신의 건강권을 지키는 것이 어렵다는 점을 고려해 전향적인 판결을 내린 것이다.
문제는 이런 판례를 실무에 제대로 적용하지 못하는 산재보험 현장이다. 이종란 반올림 노무사는 “대법원 판례가 나온 뒤에도 근로복지공단에서 행정적인 변화가 없었다. 직업병 여부를 판정하는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질판위)는 의사들로 구성돼 있는데, 이들이 여전히 단순한 의학적 잣대로 직업병 판정을 하고 있다. 질판위의 구성을 비롯한 제도적 개선을 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산재 신청의 문턱을 낮추기 위해서 별도 산재 신청용 진단서가 아닌 일반 병원 진단서로도 산재 신청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재호 <한겨레21> 기자 p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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