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4.05 05:00
수정 : 2019.04.05 05:00
숨진 20대·신고자 모두 하청직원
‘위험의 외주화’ 여전히 개선 안돼
태안화력발전소 김용균씨 사망사고에 이어 20대 청년 노동자의 생명을 또 앗아간 3일 한솔제지 장항공장의 황아무개(28)씨 산재사고 당시 현장에 한솔제지 소속 정규 직원은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숨진 황씨는 계열사 소속 사내하청 직원이었고, 문제의 롤지 운송장치 고장을 신고한 직원도 사내하청업체 직원인 것으로 밝혀졌다. 사망자도 목격자도 한솔제지 직고용 직원이 아닌 것이다. 오랫동안 지적되고 김용균씨 사고로 개선될 것으로 기대한 ‘위험의 외주화’가 여전함을 이 사건은 보여준다.
사고를 조사 중인 보령고용노동지청 관계자는 4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조사 결과, 사고 당시 현장에 있던 직원은 협력업체 소속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3일 새벽 충남 서천군 장항읍에 있는 한솔제지 장항공장에서 롤지 운송장치 쪽에서 일하던 사내하청업체 소속 여성 노동자가 설비장치 이상을 발견해 숨진 황씨 쪽에 신고했다는 것이다. 입사한 지 1년4개월밖에 지나지 않은 황씨는 이날 새벽 한솔제지 장항공장에서 롤지 운송장치를 고치다 운송장치를 움직이는 대형 무쇠 원반에 몸이 끼여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
황씨도 한솔제지 소속이 아니라, 한솔제지 지주회사인 한솔홀딩스가 지분 98.3%를 가진 계열사 한솔이엠이 소속이다. 한솔이엠이는 이 공장의 기계설비 유지보수 및 수리 등의 업무를 맡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 쪽은 이 업무가 3인1조로 운영된다고 밝혔지만, 사고 당시 황씨와 함께 일하는 근무자들은 다른 보수업무를 하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돌발상황이 생긴 새벽 시간에 문제의 공정에 정규직 노동자는 한명도 없었던 셈이다.
노동계는 혼자서 고장난 컨베이어벨트 수리를 하다 사고를 당한 김용균씨 사고에서 볼 수 있듯 산업안전 문제와 관련해 현장에서 목소리를 내기 힘든 비정규직 노동자들끼리 하는 작업이 위험하다고 거듭 지적해왔다. 박준선 김용균시민대책위원회 상황실장은 “노동안전을 확보하기 위해선 기업이 노동자를 직접 고용해 그 노동자가 힘들고 위험한 업무의 경우 거부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작년에 김용균법이 통과된 이후에도 현장에선 아무런 변화의 조짐이 없다”고 짚었다. 이른바 ‘김용균법’으로 불리는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은 시행령·시행규칙 개정을 거쳐 내년 1월 시행될 예정이다. 노동지청 관계자는 “사고가 난 감열 공정은 정규직이 투입되지 않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다음주부터 산업안전보건공단 등과 함께 특별근로감독을 벌일 때 근로감독관을 보내 노동자들의 소속사 현황을 상세히 살필 계획”이라고 말했다.
사고가 난 한솔제지를 비롯한 제지업계의 비정규직 비율은 여전히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고용형태 공시 자료를 보면, 한솔제지에서 일하는 노동자 1791명 가운데 열에 네명꼴인 711명(39.6%)이 사내하청업체 소속이었다. 한솔제지와 함께 비교적 큰 규모인 한국제지와 무림페이퍼도 ‘소속 외 노동자’ 비율이 37.2%와 36.8%에 이르렀다. 이는 본사 등에 근무하는 사무직 노동자까지 포함한 수치로, 실제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 가운데 사내하청 노동자 비율은 이보다 훨씬 높다. 이날 한솔제지와 보령고용노동지청 쪽이 공개한 내용을 종합하면, 장항공장에서 일하는 한솔제지 소속 정규직 노동자는 268명인 반면, 사내하청 노동자는 6개 업체 450명에 이른다. 전체 718명 가운데 62% 남짓이 사내하청 노동자인 셈이다.
이에 대해 한솔제지 쪽은 “경찰 조사에 성실히 임하고 있으며 결과가 나오길 기다리고 있다”며 말을 아꼈다.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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