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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대기업 노동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부당해고 철회’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한겨레 김정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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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박점규의 갑돌이와 갑순이
‘해고→철회→괴롭힘→퇴사 유도→징계해고’
상습 부당해고 사용주 처벌 강화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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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대기업 노동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부당해고 철회’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한겨레 김정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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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접사인 민준(가명)씨는 조선소 협력업체에 다닌다. 조선소와 발전소의 온수가열기, 열교환기 등 조선 기자재를 만든다. 보수는 많지 않지만 용접 일은 괜찮았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면, 상사의 간섭이나 괴롭힘을 당할 일이 없는 것도 좋았다.
오전 작업을 하던 날 눈이 심하게 아팠다. 그는 조퇴를 신청했다. 회사는 오후에 출장을 가라고 했다. 민준씨는 병원에 가야 해서 출장이 어렵다고 말하고 조퇴했다. 다음날 출근했더니 회사 공기가 무거웠다. 관리자의 눈빛이 차가웠다. 며칠 뒤 이사가 면담을 요청했다. 회사를 그만두라고 했다. 이유는 말해주지 않았다. 해고할 때는 30일 전에 반드시 서면으로 통지해야 한다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났다. 해고통지서를 달라고 했다. 이사는 다음날 준다고 했다. 그는 짐을 싸서 집으로 돌아왔다.
병원 갔다고 구두로 해고 통보
회사 관리팀에서 전화가 왔다. 해고통지서를 어디에 쓰는지 물었다. 민준씨는 대답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관리팀 대리가 출근하라는 문자를 보냈다. 민준씨는 해고를 통보한 이사에게 직접 전화하라고 전했다. 이사는 그에게 해고는 없었던 일로 하겠다고 했다. 내일은 유급휴가로 쉬고 모레 출근해서 다시 이야기하자고 했다. 뭔가 께름칙했지만 출근하기로 했다.
이사는 해고한 적이 없다며 그에게 일하라고 했다. 민준씨는 작업복을 입고 용접을 준비했다. 그런데 회사는 용접 대신 청소를 시켰다. 청소가 끝나면 그라인더(공작물 면을 깎는 일) 작업을 시켰고, 다시 청소하게 했다. 그는 말없이 시키는 일을 했다. 며칠 뒤 회사는 주휴수당과 연차수당이 임금에 포함됐다는 내용의 근로계약서에 서명하라고 했다. 입사할 때도 쓰지 않았던 근로계약서다. 그는 ‘근로조건 불이익 변경’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서명을 거부했다.
괴롭힘이 한층 심해졌다. 용접 업무를 아예 주지 않고 청소와 잡일만 시켰다. 사장은 그에게 낙엽을 쓸라고 했다. 사장은 이어폰을 끼고 청소하는 민준씨 모습을 휴대전화 사진으로 찍었다. 다음날 회사는 근무시간에 이어폰 착용을 금지한다는 공지문을 붙였다. 사장은 민준씨를 쫓아다니며 이어폰을 끼지 말라고 했다. 회사에서 지급하는 귀마개는 통증이 있어서 이어폰을 써야 한다고 했는데도 막무가내였다.
며칠 뒤 회사는 민준씨에게 경고장과 징계위원회 출석통보서를 보냈다. 경고장은 황당했다. 눈이 아파 조퇴한 날을 ‘출장 작업 지시 거부’로, 줄자가 없어서 파손된 줄자를 주워 썼는데 ‘근무 중 줄자 고의 파손’으로 적었다. ‘근로계약서 서명 거부’와 ‘근무 중 이어폰 착용 금지 위반’도 포함됐다. 차라리 해고하면 부당해고로 신고하면 될 듯한데 감봉과 징계로 피 말리게 하는 게 두려웠다. 그는 직장갑질119를 찾아 상담하고 전자우편을 보냈다.
“저도 이런 회사에 계속 다니고 싶어서 버티는 게 아닙니다. 억울하고 분한데 이대로 제가 자진 퇴사를 하면 자존심도 상하고 아이를 키우는 아빠로서 돈도 벌어야 하기 때문에 버티는 겁니다. 자진 퇴사하면 실업급여도 못 받게 되니….”
회사 대표와 관리자로 구성된 징계위원회는 민준씨에게 정직 1개월이라는 중징계를 내렸다. 민준씨는 직장갑질119의 자문을 받아 노동위원회에 부당징계 구제신청을 내고, 노동청에 체불임금도 진정했다. 한 달 뒤 복귀하자 회사는 합의를 제안했다. 그는 체불임금과 해고 위로금을 제시했다. 회사는 금액이 많다며 합의를 거부했다.
해고통지서 요구하자 ‘해고 철회→괴롭힘’
며칠이 지났다. 쉬는 시간에 자리에 앉아 있는데 사장이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으며 그의 옷을 잡아끌고 나가 쓰레기통 주변을 청소하라고 했다. 민준씨가 거부하자, 사장은 해고라며 집으로 가라고 했다. 그는 해고통지서를 달라고 했다. 다음날 회사는 다시 “해고 철회 대기발령”이라는 문자를 보냈다. 민준씨는 다시 출근했다. 갖은 모욕을 감수하며 현장사무실에 앉아 대기했다. 체불임금 진정 뒤 고소 단계로 가자, 회사는 체불임금을 입금한 다음 고소를 취하해달라고 했다. 민준씨는 고소한 뒤의 체불임금이 있어서 고소를 취하하지 않았다. 회사는 민준씨가 현장사무소에 대기하고 있을 때 휴대전화를 본다는 이유 등으로 다시 징계위원회에 회부했고 해고를 결정했다. 민준씨는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준비했다. 그러자 회사는 다시 위로금 합의를 요청했고, 노동위원회에서 그가 제시한 금액으로 합의했다. 징계위원회에 회부된 지 3개월 만이었다. 그는 3개월 동안 직장갑질119와 열 차례 질의응답을 주고받았다.
근로기준법 제26조(해고의 예고)는 “사용자는 근로자를 해고하려면 적어도 30일 전에 예고”를 해야 하고, 제27조(해고 사유 등의 서면 통지)는 “해고하려면 해고 사유와 해고 시기를 서면으로 통지하여야 한다”고 명시한다. 서면이 아니면 효력이 없기 때문에 노동위원회에서 부당해고로 인정돼 해고 기간의 임금을 받을 수 있다.
평소 맘에 들지 않는 직원을 말 한마디로 쫓아낸 사용자는 부당해고라는 사실을 알고 곧바로 해고를 철회한다. 그리고 해당 직원에게 업무를 주지 않거나 괴롭혀서 스스로 나가도록 한다. 그래도 직원이 버티면 지시 불이행과 근무 태만으로 엮어 징계해고로 쫓아낸다. 해고→철회→괴롭힘→자진 퇴사 유도→징계해고 순이다. 해고를 철회하면 부당해고 구제신청의 실효가 사라진다는 점을 악용하는 것이다.
“체불임금에는 합의했는데, 부당해고 구제신청에서 부당해고가 인정될 것 같으니까 오늘 일방적으로 해고를 철회하겠답니다. 이후에 무슨 일을 꾸며서든 자진 퇴사를 받으려고 별짓을 다 할 게 뻔한데, 철회에 대해 근로자 동의가 없어도 해고 예고가 철회된 건가요? 해고도 일방적으로 마음대로, 해고 철회도 일방적으로 마음대로…. 근로자가 장난감도 아니고, 진짜 이제는 어이가 없고 멍해지네요. 너 나가, 했다가 이제 부당한 것을 인지하고 문제가 생길 듯하니 다시 들어오라는 건데, 해고 철회 통보 이후 결근하면 자진 퇴사로 본다는 말이 있는 거 같아서요. 진짜 웃기는 거죠.” 한 대기업 가맹점 직장인이 보낸 편지다.
불법해고 철회 땐 무죄… 돈 돌려준 강도는 무죄?
노동자가 사직 의사를 철회하려면 사용자 동의가 필요하지만, 사용자는 노동자 동의 없이 해고를 철회할 수 있다. 일방적으로 해고를 철회한 뒤 노동자가 응하지 않으면 결근으로 처리돼 자진 퇴사가 되고 실업급여도 받기 어렵다. 신종 ‘해고 철회 갑질’이다.
월급 떼먹었다 갚으면 면죄, 불법으로 해고했다 철회하면 무죄라니, 길거리에서 돈을 빼앗았다가 뒤늦게 되돌려주면 처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불법을 방치하니, 반성을 모르는 못된 사장들이 넘쳐난다. 악의적이고 상습적으로 해고와 철회를 반복하는 사용자를 엄하게 처벌해야 악질 사장이 줄어든다.
*제1224호 ‘교수의 절대 갑질 어디까지 당해봤니’에 나오는 성균관대 약학대학원 교수에 대해 교육부가 특별조사를 벌여 자녀 연구·논문에 대학원생들을 동원한 사실을 확인하고 성균관대에 파면을 요구했고, 검찰과 경찰은 연구비 가로채기에 대해 조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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