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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5.24 05:00 수정 : 2019.05.24 14:49

[한겨레정책상담소]
산업기능요원·공중보건의 등
개인에게 ‘입대’ 선택권 주면
ILO도 강제노동으로 보지 않아

정부가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해 이번 정기국회에 비준동의안과 관련법 개정안을 동시에 내겠다고 하자 말들이 많습니다. 이 나라가 실업자와 해고자 노동조합에 포위돼 난리가 날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목소리도 들립니다. 과연 핵심협약이 비준되면 한국 노동·산업 현장은 어떻게 바뀔지 다섯가지로 정리해봤습니다.

①손흥민 선수는 군대를 가야 할까요?

일부에선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 병역특례에 해당하는 손흥민 선수가 도로 군대에 가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합니다. 결론적으로는 안 가도 됩니다. 애초 이 얘기는 강제노동을 금지하는 협약 29호에서 비롯합니다. 이 협약은 어떤 형태의 강제노동도 금지하는데, 다만 징병제처럼 군사 분야에서 의무 복무하는 경우는 예외로 합니다. 그런데 손 선수는 이미 병역특례를 받아 병역법상 예술체육요원이 돼 4주간의 군사훈련을 포함해 34개월 해당 분야 복무 및 봉사활동 544시간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게 군사 분야 업무가 아니라서 강제노동에 해당한다는 논리입니다.

하지만 국제노동기구도 개인에게 선택권이 주어지고 특례의 관련자 수가 매우 적어서 ‘개인적 특혜’에 해당하는 경우엔 군사 부문이 아니더라도 강제노동에 해당하지 않는 것으로 본다는 게 정부의 설명입니다. 손 선수가 입대를 할 수도 있으나 본인이 원해서 예술체육요원이 되길 선택했고, 하나의 특혜에 해당해 강제노동으로 보기 어렵다는 겁니다. 산업기능요원이나 공익법무관, 공중보건의사, 전문연구요원 등도 마찬가지입니다. 양심적 병역 거부 등에 따라 대체복무를 하는 이들도 강제 노동에 해당되지 않습니다.

다만 보충역 가운데 신체 등급 4급 판정을 받아 각종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공익업무를 맡는 사회복무요원의 경우엔 선택권이 없는 탓에 강제노동에 해당한다고 볼 가능성이 큽니다. 정부는 “최대한 협약에 부합하도록 복무에 선택권을 주는 등 제도 개선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②불이 났는데 소방관이 파업하면 어쩌죠?

현행 공무원노조법은 6조에서 노동조합에 가입할 수 있는 공무원의 자격을 정하면서 5급 이상 공무원과 경찰·소방관·교도관 등은 예외로 했습니다. 하지만 결사의 자유 협약은 노동자들이 어떤 차별도 없이 노동조합에 가입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지금처럼 특정 직급 이상에겐 이유 없이 노조 가입 자격을 주지 않는 공무원노조법은 협약에 배치됩니다. 다만, 군인과 경찰에겐 노조 가입을 제한해도 협약 위반이 아닙니다.

파업 등 단체행동권은 여전히 제한될 가능성이 큽니다. 국제노동기구 결사의 자유 위원회도 ‘판정 해설집’에서 “생명에 대한 긴박한 위협, 개인 안전, 건강” 등과 관련해선 파업을 제한할 수 있다고 합니다. 소방·병원·전기·수도공급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 이밖에 철도·지하철·상품운송 등은 현행 국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에서 필수공익업무로 분류해 파업을 하더라도 최소한의 인력은 남겨놓도록 하는 것과 비슷한 형식으로 운용을 하도록 합니다. 이 대목은 협약 비준과 함께 제도 정비를 다시 해야 할 부분입니다.

③레미콘 기사, 택배기사도 자유롭게 노동조합원이 될 수 있나요?

이른바 특수고용 노동자로 불리는 레미콘 기사, 대리운전 기사, 택배기사, 학습지 교사, 골프장 경기보조원 등은 노조 만들기도 쉽지 않습니다. 노동청에 노조 설립 신고서를 내면 조합원이 노동자에 해당하는지, 사용자가 누구인지 따지느라 노조 설립 신고가 반려되거나 지나치게 늘어지는 경우가 부지기수입니다.

하지만 단결권 협약에 가입하면 이런 식의 행정은 용인되지 않습니다. 국제노동기구 결사의 자유 위원회는 2015년에도 한국 정부에 “화물차 차주 겸 기사와 같은 자영 노동자를 포함한 모든 노동자가 자신의 권익 증진·방어를 위해 스스로의 선택에 따른 노조를 통해, 결사의 자유를 전적으로 향유할 수 있도록 필요한 조처를 취하라”고 권고했습니다.

④협약 비준하면 해고자·실업자도 마구 노조에 가입하고 전교조는 합법화되는 건가요?

단결권 협약은 조합원이 해고자이건 실직 상태에 있는 이건 노조에 가입할 권리를 차별해선 안 된다고 봅니다. 따라서 현재 사용자가 누구인지 분명하게 알 수 있는 노동자만 노조에 가입할 수 있도록 한 현행 제도와 노동행정은 바뀌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협약 비준으로 노조원 수가 폭증하는 일이 벌어지진 않을 듯합니다. 이미 산별 노조엔 해고자나 실업자도 가입할 수 있지만, 노조 조직률은 하락 추세 속에 계속 10% 선에 머물고 있습니다.

해고자 9명을 조합원으로 받아들였다는 이유로 2013년 박근혜 정부 때 법외노조가 된 전교조의 경우도 협약 비준과 동시에 합법화될 가능성이 큽니다. 87호 협약을 비준하면, 해고되거나 실업 상태인 교사도 노조를 만들거나 가입할 수 있도록 교원노조법을 개정해야 합니다. 물론 여기엔 ‘함정’이 있습니다. 전교조가 법외 노조에서 법내 노조로 들어오기 위해선 협약 비준 전이라도 행정부가 노조 아님 통보를 철회하는 처분만 해도 가능하니까요.

⑤파업했다는 이유로 노동자를 처벌하고 손배·가압류하는 현재 상황은 계속되나요?

철도노조 파업 등을 보면 한국은 여전히 파업을 벌인 노동자를 형법상 업무방해죄로 인정해 징역형으로 처벌하는 후진국입니다. 사법부는 여전히 노동자의 파업을 노조법이 아닌 형법에 있는 업무방해에 해당한다고 규정한 검찰의 기소를 인정해 유죄를 선고합니다. 이를 토대로 회사는 노동자한테 손해배상 소송을 걸고 이 과정에서 가압류까지 거는 관행이 유지됩니다. 이게 어떤 결과를 낳는지는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사태 뒤 벌어진 일만 봐도 잘 알 수 있습니다. 국제노동기구 결사의 자유 위원회는 “파업행위를 범죄시하는 정부의 접근방식은 전적으로 수용될 수 없다”는 태도를 유지합니다.

법보단 사법관행이 더 큰 문제입니다. 형법엔 파업을 업무방해로 처벌해야 한다는 조항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이런 사법관행 때문에 처벌이 두려운 노동자들이 파업 대신 근무하는 게 사실상 강제노동에 해당한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대법원은 철도노조 지도부의 업무방해를 유죄로 인정한 사건에서 소수의견으로 “(파업을 업무방해죄로 처벌한다면) 근로자들로 하여금 형사처벌의 위협하에 노동에 임하게 하는 측면이 있다”고 짚은 바 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이 22일 기자회견에서 정치적 견해나 파업 참가를 제재하기 위해 징역형 등으로 처벌하는 강제근로를 금지한 105호 협약은 비준 대상에서 제외하겠다고 밝힌 대목은 문제가 커 보입니다.

다만 이 문제는 87호 협약 가입만으로도 해소가 가능하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이승욱 이화여대 교수는 “87호 협약은 평화적인 파업은 설령 그게 불법이더라도 처벌을 하지 못하게 한다”고 말합니다.

전종휘 조혜정 기자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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