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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6.14 06:00 수정 : 2019.06.14 07:25

이상헌 국제노동기구(ILO) 고용정책국장

경총 등 부당노동행위 처벌 금지 요구에
“논의가 생산적이지 않고 핵심 놓칠 수 있어”
“EU 관료들은 한국 상황 굉장히 심각하게 생각”

이상헌 국제노동기구(ILO) 고용정책국장
이상헌 국제노동기구(ILO) 고용정책국장은 한국 정부가 단결권·강제노동 금지 등 국제노동기구 핵심협약 비준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부당노동행위 처벌조항 삭제, 파업 때 대체인력 투입 허용 등 협약과 상관없는 사용자 단체의 주장이 함께 논의되는 상황에 대해 “재고해야 할 문제”라며 우려했다.

이 국장은 13일(현지시각) 100주년 기념 총회가 열리고 있는 스위스 제네바 국제노동기구 본부에서 한국 기자들과 한 인터뷰에서 “핵심협약은 모든 노동자가 어디에 있든 누려야 할 가장 보편적인 권리에 관한 것으로, 협상하거나 무슨 조건을 달고 할 문제가 아니다. 그런 걸 없애자고 핵심협약 8개를 골라낸 것”이라며 “핵심협약을 비준하기 위해 이걸 하자, 저걸 하자 하는 게 저희로선 최선의 방법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 국장의 발언은 한국 정부가 8개 핵심협약 가운데 아직 비준하지 않은 87호·98호 결사의 자유 협약과 29호·105호 강제노동 금지 협약 관련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논의 과정에서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사용자 단체들이 부당노동행위를 형사처벌하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 조항을 삭제할 것, 파업 때 대체근로를 금지하는 같은 법의 관련 조항을 삭제할 것 등을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은 것에 대한 의견을 묻는 말에 대한 답변으로 나왔다.

이 국장은 “핵심협약 다루면서 필수불가결한 문제가 아닌 걸 갖고 들어와서 논의하는 건 논의 전체가 생산적으로 되기 힘들고 핵심을 놓칠 수도 있어서 우리는 약간 걱정하는 분위기”라며 국제노동기구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이 국장은 “이걸 섞어서 논의하는 것은 재고해봐야 할 문제”라고 짚었다.

이 국장은 유럽연합(EU)이 핵심협약 비준을 약속한 자유무역협정(FTA) 위반을 이유로 한국을 전문가 패널에 회부할 움직임을 보이는 것에 대해 생각보다 상황이 심각하다는 의견을 내놨다. 이 국장은 “표면에 드러난 것보다 (유럽연합 쪽이) 심각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관료들은 굉장히 심각하게 보고 있다. 유럽의회가 굉장히 심각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국장은 “무역제재라는 게 일반인들은 관세만 생각하지만 비관세 제재도 종류가 굉장히 다양하다. 유럽연합이 비관세 제재를 아주 오랫동안 사용해왔고, 그런 방식의 제재까지 배제할 순 없다고 말할 수 있다”며 개인 의견을 전제로 “곧 유럽의회가 구성되면 뭔가 구체적 액션을 취하라는 압력이 나올 가능성이 상당하다”고 말했다.

아래는 이 국장과의 일문일답.

-핵심협약 비준 관련 유럽연합 분위기는 어떤가.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입장에서는 한국에 대해 부드럽게 갈 명분이 없다. 첫째로 핵심협약이 너무 보편적인 권리고, 대부분 나라서 다 비준한 것이라서 그런 이해를 갖고 한국과 양자 에프티에이 한 것이다. 한국이 그 첫 케이스이다. 유럽연합은 무역동맹이다. 핵심적인 협약 같은 보편적 권리를 보장하지 않는 국가와 계속 무역한다는 데 대한 정치적 부담이 굉장히 있다. 이게 어디로 튈지도 모르고, 관료들이 걱정 많이 한다. 게다가 지금 여러 연구결과로는 핵심협약이란 게 경제나 무역, 노동 등에 미칠 부정적 영향은 거의 없다는 것이 이미 너무 널리 알려졌다. 경제적 이유로 한국이 주저하고 있다는 식으로 설명하기도 힘든 상황이다.”

-정부는 투트랙으로 동시 진행하겠다는 입장이다. 선비준 등 말이 많은데, 국제적 기준에 비교하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보나?

“이것은 국내 문제이고, 우리가 보기엔 방법론의 문제다. 국제노동기구로선 한국이 국내에서 정치적 과정을 통해 판단할 방법론적 문제지 이게 옳다, 저게 옳다 얘기하기가 좀 힘들다. 물론 아이엘오는 올해 100주년 기념으로 모든 회원국이 최소한 한 개 이상 협약을 비준하자는 것이 기본 캠페인이기 때문에 한국이 가능하면 올해 한두개라도 협약 비준하고, 가능하면 핵심협약을 빨리 비준하면 환영할 일 아닐까 싶다.”

-한국이 핵심협약 아직 비준 못 하고 있는데 그 외에도 협약 비준 못 한 게 많다. 한국을 협약 후진국으로 볼 수 있겠다.

“그게 한국이 국제노동외교에서 직면한 가장 큰 숙제 아닐까 싶다. 비준 빈도나, 횟수, 그런 것 때문에 한국이 국제노동문제에서 수세적 입장에 놓여 있다. 그런 걸 해결하는 게 큰 숙제다. 약간 과도기란 느낌도 든다. 이번 정부는 덜한데, 아직은 한국이 낡은 주장에 의지해 수세적 입장을 계속 수호하려고 한다. 대표적인 게 한국은 특수하다는 것이다. 그 특수성이 70년대 정도면 많이 인식되지만 지금은 아프리카나 중앙아시아 같은 국가에 비하면 그런 식으로 따지면 모든 국가가 다 특수하기 때문에 그런 주장하기 어렵다. 둘째 한국이 아직 개도국이란 생각인데, 이것도 지금 한국의 경제규모가 세계 10위권이다. 그런 주장을 한국에서는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제 국제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정도는 예전보다 훨씬 낮은 상태이다. 전향적으로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결사의 자유 협약을 ‘노조할 권리’라고만 얘기하는 건 너무 좁은 해석이란 지적이 있다. 이번 협약 비준으로 노조들이 강해진다기보다 노조가 아닌 사람도 결사할 자유를 보장할 협약으로 봐야 한다는 얘기도 있다.

“협약 87호와 98호는 노조 하자는 권리가 아니다. 단결할 권리이고 조직할 권리이다. 조직하면 그 힘으로 협상 당사자와 협상할 권리이다. 노조라고 하면 사람들이 특정 형태만 생각하는데, 실제론 그뿐 아니라 훨씬 열린 형태와 다양한 조직을 포함한다. 그런 면에서 핵심협약을 비준하면 비정규직이나 취약계층이 다양하고 열린 형태의 조직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조직할 길이 열리지 않겠냐는 것이다.”

-양대 노총도 있지만, 조직화하지 않은 노동자가 더 많다. 이들도 조직될 방법이 있을까.

“요즘엔 노조란 이름 없이 단체 형식이 있다. 뉴욕 청소부 조직 보면 노조 대신 아주 느슨한 조직으로, 시에서 지원도 받는다. 이러면 자기들이 시나 기업에 대해 자기 조건을 협상도 할 수 있게 된다. 이런 조직은 시민사회와 결합해 다른 방식으로도 할 수 있다. 이러면 노조가 아니라도 주나 시에서 지원해준다. 거기 속한 사람들도 다양하다. 한 직종이 아니라 지역별, 마을 단위로도 조직한다. 이걸 인정해줘야 한다. 제일 중요한 건 조직하고 끝이 아니라 그걸 받아줘야 하는데 공공단체나 기업에서 적극적이다. 혁신적 형태의 조직은 미국이나 유럽, 남미 아프리카에도 많다.”

-이번에 총회에서 채택할 ‘일의 미래 보고서’ 관련 한국에 절실한 현안이나 주목할 이슈는 어떤 게 있는가?

“개인적으로 첫째로 꼽고 싶은 건 양성평등 분야이다. 제가 보기에 최근 많은 노력과 논의가 있지만, 적어도 지표상으로는 아주 갈 길이 멀다. 좀 더 정책을 과감하게 써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둘째는 짐작하겠지만 산업안전이다. 나도 한국인이지만 산업안전 문제 얘기만 나오면 부끄럽다. 동료들이 왜 이러냐고 자꾸 물어본다. 부끄러울 정도다. 산재 사망률이 너무 높다. 셋째 노동자의 목소리다. 대기업 노조나 기존 노조를 어떻게 좀 더 진보시킬 수 있느냐는 문제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비정규직이나 취약계층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제도적 장치나 지원이 부족해서 이것에 좀 더 우선순위를 둬야 하지 않을까 싶다. 노·사·정부 할 것 없이 비정규직 보호하자고 다들 공감하면서도, 왜 이분들께 목소리 줄 수 있는 장치를 안 만드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불평등 문제다. 어떻게 보면 100주년 선언문의 핵심이다. 노동시장 불평등 문제가 중요한데, 한국에선 노동시장 불평등이 노동시장 문제가 아니라 경제정책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노동시장 불평등을 다루려면 경제, 거시정책, 산업정책 등이 전향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그래야 노동시장 개혁에 숨통이 트일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소득주도 성장론의 이론적 틀을 마련하는 데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는 이 국장은 소득주도 성장의 핵심은 적극적 재정정책을 이용한 소득분배와 총수요 관리, 이를 통한 성장동력 확보임에도 그동안 정부의 재정정책에 문제가 많다고 지적했다. 그는 “재정정책이 너무 수동적이고 소극적으로 운영돼 오히려 소득주도 성장의 정책 동력을 감소시킨 면이 있다. 정책 일관성 면에서 아쉬운 면이 있다”고 말했다.

-소득주도 성장과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생각은?

“단적으로 얘기하면 한국의 최저임금 논의도 많이 되는데, 한국에서 최저임금 올릴 때 그 정도 올리면 어느 정도 영향 있을 거란 건 대부분 예상했다. 그런데도 추진할 수 있던 것은 최저임금 관련 정책과 더불어 각종 노동시장 정책, 경제정책, 산업정책이 따라갈 줄 알았다. 나는 소득주도성장이 그런 총괄적 정책 패키지라고 생각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불공정 구조 개선이라든지, 새로운 산업의 활력을 살릴 산업정책, 자원확보나 불평등 해소를 위해 좀 더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운용했어야 하는데 이 모든 게 다 쏙 빠지고 너무 최저임금만 홀로 외롭게 앞선 바람에 어려워진 측면이 있다. 노동시장의 여러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핵심적인 경제, 산업정책이 구조적으로 바뀌는 게 중요하다.

-한국에서 최근 2년간 최저임금을 과도하게 빨리 올렸다는 비판에 대한 생각은?

“속도가 빠르다고 할 때, 상대적인 기준이 뭔가. 정상적인 조정 속도에 비해 빠르단 건데 그럼 뭐가 정상적인 인상속도냐는 건 아무도 정확히 얘기하지 않는다. 이게 중요한 질문이다. 최저임금을 인상했는데, 그 보완대책이 빨리 따라붙었더라면 지금 같은 상황은 아니었을 것이다. 중요한 건 빨랐다고 판단한 건 전제했던 여러 보조정책이 없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최저임금만 노출돼서 좀 과도하게 빨랐다는 게 아닌가. 그래서 최저임금 속도가 빨랐다고만 얘기하기는 사실 조심스럽다.”

-속도 조절론에 대해서는?

“지금도 최저임금을 전방에 홀로 내세우고 이걸로 모든 문제 논쟁하는 건 사실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형국이다. 지금도 이게 문제의 핵심이고, 해법의 핵심인 것처럼 최저임금 인상 조절론에만 논의의 포커스를 맞춘다. 물론 최저임금이 중요하지만, 모든 논의가 다시 최저임금으로 돌아오고, 거기 해법이 있다는 그런 접근방법은 좀 조심해야 하지 않을까. 1년 전 소모적 논쟁 다시 할 수 있다.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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