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도로공사 고속도로 톨게이트 요금수납 노동자와 김승하 전 철도노조 케이티엑스(KTX) 승무지부장이 23일 오후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손펼침막을 함께 들고 있다. 왼쪽부터 이인순·백숙현씨(경기 성남시 서울요금소), 전서정씨(경남 함안군 칠서요금소), 김승하 전 승무지부장.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
’자회사 전직’ 거부해 해고된
한국도로공사 요금 수납원 1500명
‘2심까지 직접고용 판결’ 이행 촉구
한달 가까이 노숙·고공농성 중
13년 전 같은 이유로 해고됐다
마침내 지난해 복직한 승무원
“회사로 돌아갈 때까지 끝 아냐
믿을 건 연대하는 사람들의 힘 뿐”
|
한국도로공사 고속도로 톨게이트 요금수납 노동자와 김승하 전 철도노조 케이티엑스(KTX) 승무지부장이 23일 오후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손펼침막을 함께 들고 있다. 왼쪽부터 이인순·백숙현씨(경기 성남시 서울요금소), 전서정씨(경남 함안군 칠서요금소), 김승하 전 승무지부장.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
하루 평균 10만대 이상의 차량이 드나드는 경기 성남시 궁내동 서울 톨게이트. 지상 10여m 높이에 이르는 캐노피 위에선 지난달 30일부터 한국도로공사(도공)에서 해고된 요금수납원 30여명이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그 아래에선 같은 처지의 요금수납원 300여명이, 서울 종로구 효자동 청와대 사랑채 앞에선 또 다른 300여명이 노숙농성을 하고 있다.
왜 이들은, 깔고 앉은 매트의 때를 지우기 힘들 지경으로 심한 서울 톨게이트의 매연을 견디고, 청와대 앞 그늘 하나 없는 한여름의 뙤약볕을 참는 걸까? 노숙농성 24일째인 23일, 한국노총 톨게이트 노조 조합원 이인순(54)·백숙현(57)씨와 민주노총 민주일반연맹 경남일반노조 조합원 전서정(52)씨가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이 자리엔 자회사 이적을 거부해 해고됐다가 12년 동안의 투쟁 끝에 복직한 김승하 전 철도노조 케이티엑스(KTX) 승무지부장도 함께했다.
■
약속
전서정씨는 2004년부터 경남 함양군 칠서 톨게이트에서 요금수납원으로 일했다. 처음엔 도공, 2008년부턴 외주·용역업체로 여러 차례 소속이 바뀌었지만 하는 일은 똑같았다. 전씨의 근태를 관리하고 업무를 지시·감독하는 사람도 도공 직원이었다.
“도공 정년퇴임한 사람이 외주업체를 맡을 거고, 요금 수납원들은 소속만 그 쪽으로 바뀌는 거라 해서 달라지는 게 뭔지 몰랐다. 업체에서 도공과 계약한 대로 월급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고, 퇴직금도 떼먹은 걸 알게 되면서 비정규직이 문제라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 문재인 대통령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말했을 때 정말 밤에 잠을 설칠 정도로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 그런데 뜬금없이 자회사로 가라니.... 그 발표가 나고 6달은 지옥 속에서 일했다.” 자회사를 거부한 전씨는 결국 지난달 30일부로 해고됐다.
서울 톨게이트에서 각각 22년, 19년 동안 요금수납원으로 일한 이인순(54)·백숙현(57)씨도 해고자다. 도공으로 입사한 이들의 소속이 외주업체로 바뀐 것은 2009년이었다. 2013년, 도공을 상대로 근로자 지위확인 소송을 냈고, 2심까지 불법 파견으로 인정받았다. 불법 파견이 인정되면, ’진짜 사용자’인 도공이 이들을 직접 고용해야 한다. 이인순씨는 “법원이 이런 판결까지 했는데 선뜻 자회사로 갈 사람이 누가 있겠냐”고 반문했다.
지난달 도공에선 이들을 포함한 1500여명의 요금수납원이 집단해고됐다. 전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큰 규모의 해고가 이뤄진 사유는 자회사 전적 거부다.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에 따라, 자회사인 한국도로공사서비스의 정규직으로 이동하라는 도공의 요구에, ‘도공이 직접고용하라’고 맞선 이들의 소속 외주·용역업체과 도공이 맺은 계약이 만료됨에 따라 일자리를 잃은 것이다. 이들은 하루빨리 대법원 판결이 확정되길 기다리고 있다.
이들의 현재는, 케이티엑스 승무원들의 상황과 판박이다. 채용와 업무 관리는 철도청이 하면서 소속은 자회사를 전전하게 하는 데 반발해 직접고용을 요구했던 승무원 280명은 2006년 해고됐다. 이들이 낸 근로자 지위확인 소송에서 법원은 2심까지 철도공사가 직접고용하라는 판결로 이들의 손을 들어줬다. 박근혜-양승태 사법농단이 아니었다면 대법원에서 이 판결이 뒤집혔을 가능성은 별로 없다는 게 노동계의 상식이다.
김승하 전 지부장은 “우리랑 똑같이, 2심까지 다 이겼는데도 어떻게 도공이 버텼는지 기가 막힌다. 자회사 전적을 거부한 분들이 해고당해 노숙농성까지 한다는 얘기를 듣고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김 전 지부장은 인터뷰 하루 전인 22일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요금수납원 지지 기자회견을 했었다.
|
고속도로 톨게이트 요금 수납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지난 1일 한국도로공사의 직접 고용을 요구하며 농성 중인 경기 성남시 분당 서울요금소 옥상에서 휴대전화 라이트를 켜고 흔들고 있다. 성남/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
■
반박
해고된 요금수납원들의 ‘동료’ 5100여명은 회사의 요구를 받아들여 자회사로 간 상태다. 직접고용을 요구하는 이들은 대법원의 불법파견 확정 판결이 나더라도 요금 수납 업무를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채찍’과, 1인당 100만원 인센티브라는 ‘당근’을 회사가 번갈아 내놓은 결과다. 더구나 자회사는 정년이 1년 더 길다.
그럼에도 이들은 자회사를 거부한다. 전서정씨는 “도공이 2023년부터 스마트 톨링(차량 인식 장비가 자동차 번호판을 자동으로 읽어 고속도로 이용요금을 후불 청구하는 방식)을 시행한다고 했다. 요금 수납에 필요한 사람이 지금보다 더 줄어들 테니 감원을 해야 하는데, 자회사는 그때 가서 폐업신고 해버리면 그만”이라며 “도공 직원으로 남아 있으면 함부로 자를 수 없으니 기를 쓰고 자회사로 보내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용역업체나 자회사나 다를 게 없단 얘기다.
기술 발전으로 어차피 언젠가는 ‘사라질 일’이라면 직접 고용을 고집할 필요 없는 것 아니냐는 시선에도, 갑자기 공공기관 정규직이라니 힘들게 시험 봐서 들어간 사람들과 비교해 공정하지 않다는 주장에도 이들은 반박할 준비가 돼있다. 백숙현씨는 “환경정비 같은 조무 업무만 200가지라는데, 요금 수납이 아니어도 다른 일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정규직으로 직접 고용을 해달라고 해서 (공무원 시험 봐서 들어간 사람들처럼) 고임금을 원하는 것도 아니다”라며 “최저임금 수준을 받는 요금 수납원 대부분이 저소득 중장년층인데, 이런 취약계층을 보호하는 게 정부의 역할 아니냐”는 말도 덧붙였다.
■
분열
자회사를 밀어붙이는 도공의 태도는 집요하다. 인센티브와 업무 관련 ’경고’에 이어, 이번엔 분리교섭 카드를 꺼냈다. 해고자들이 보기엔 “노노 분열을 부추기려는 교란책”이다. 현재 해고자 1500명은 한국노총 톨게이트 노조와 민주노총 민주일반연맹이 공동교섭단을 꾸려, 도공과 교섭을 시도하고 있다. 상급 단체는 다르지만, 직접고용이라는 요구사항이 같고 바로 그 요구 때문에 집단해고돼 함께 싸우고 있으므로 공동교섭이 당연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도공은 지금까지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을 나눠 교섭해온 것이 관행이라며, 공동교섭을 거부하고 있다.
도공의 ‘배짱’엔 또 다른 배경이 있다. 해고자 1500명 가운데 다수가 톨게이트 노조 소속이긴 하지만, 민주노총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민주일반연맹과 달리 톨게이트 노조는 한국노총 안에 ‘우군’이 없다는 점이다. 이미 자회사로 넘어간 이들 대다수가 영업소 노조 등 한국노총의 다른 요금수납원 노조 소속이다. 이들은 직접 고용을 주장하는 이들의 해고가 임박한 지난달 20일 성명을 내어 자회사 정규직의 정당성을 강조했고, 지난달 25일엔 긴급집회를 열어 자회사에 동의하지 않는 이들에게 요금수납 업무를 맡겨선 안 된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이인순씨는 “상급단체나 다른 가맹 노조와 생각이 다르다보니, 도공은 분리교섭으로 ‘약한 고리’인 톨게이트 노조를 흔들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성명 등도) 이렇게 5000명이 자회사를 지지한다며 힘을 과시하려 한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
희망
“내 발등을 내가 찍은 심정이다. 내 손으로 뽑은 대통령인데 1500명이 해고돼도 관심 한 번 가져주지도 않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이인순씨) “노숙농성 시작하기 전에 사흘 동안 청와대 앞에서 행진하고 기자회견을 했는데, 나도 모르게 펑펑 눈물이 나더라.”(전서정씨) “정부가 오히려 직접 고용은 안 된다고 부추기니 맨날 운다.”(백숙현씨)
문재인 대통령과 정부에 품은 기대가 배반당해 눈물이 난다는 이들의 말에, 김승하 전 지부장이 단호하게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을 뽑고 정부가 바뀌었다고 해서 ‘뭐든지 다 해결해드릴 테니 어서 오세요’ 하진 않는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뭉치고, 정부에 압력을 행사해야 한다. 결국 믿을 건, 연대하는 사람들의 힘밖에 없다. 하루하루 힘들지만, 내가 회사로 돌아갈 때까진 진 게 아니니까, 끝난 게 아니니까, 서로 힘을 보태서 가야 한다.”
‘연대’라는 단어에 다른 세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전서정씨는 “물, 커피, 아이스크림에 가끔씩 밥차도 지원해주는 분들이 있다. 이 사람들이 어떤 심정으로 우리를 도와주는 걸까, 지지 방문을 온 저 학생들은 어떤 마음일까 놀랍고 고맙기 짝이 없다”며 “해고당하기 전까진 연대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몰랐는데 이제 알겠다”고 했다. 이인순씨는 “새로운 희망이 생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