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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8.12 17:33 수정 : 2019.08.12 20:34

우삼열 아산이주노동자센터 소장(맨 오른쪽)이 12일 오후 서울 저동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열린 ‘이주노동자 출국 후 퇴직금 수령제도 실태조사 발표회’에서 실태조사 경과보고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주노동자단체들, 실태조사 결과 발표회

우삼열 아산이주노동자센터 소장(맨 오른쪽)이 12일 오후 서울 저동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열린 ‘이주노동자 출국 후 퇴직금 수령제도 실태조사 발표회’에서 실태조사 경과보고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주노동자 ㄱ씨는 한국에서 일을 끝내고 지난 2월28일 고향으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그동안 일한 대가로 당연히 받아야 할 퇴직금을 받는 과정은 복잡하고 까다롭기 그지없었다. 우선 출국만기보험(사업주가 퇴직금을 지급하기 위해 노동자를 피보험자로 설정해 가입하는 보험)의 보험금을 찾으려면 출국예정사실 확인서, 거래외국환은행 지정 신청서 등 필요한 서류 6가지를 모두 준비해 미리 보험사에 제출해야 했다. ㄱ씨는 일하던 곳의 고용센터와 은행 등을 방문해 관련 서류를 준비했고, 사업주한테도 보험금을 수령하겠다고 얘기했다.

출국 당일인 2월28일, 보험금을 찾으려고 공항에 있는 은행 영업점에 간 ㄱ씨는 황당한 일을 당했다. 이미 지역 은행에 가서 공항 영업점을 거래외국환은행으로 지정해달라고 신청했는데, 지역 은행 창구 직원이 서류에 그의 이름을 잘못 적어 등록이 안 됐던 것이다. 수정을 하려면 처음 신청서를 낸 지역 은행의 협조를 받아야 하는데, 창구 담당자는 계속해서 전화를 받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거래외국환은행 지정 등록이 된 건 오전 10시30분으로, 그가 타야 할 비행기 출발 30분 전이었다. ㄱ씨는 이 항공권을 취소하고, 다음날 표를 다시 예약했다. 하지만 다음날에도 그는 보험금을 받지 못했다. 출국예정사실 확인서 등에 적힌 출국예정일이 아니라는 이유였다.

‘퇴직금 출국 후 수령제도’ 때문에 ㄱ씨처럼 이주노동자들이 퇴직금을 받는 데 어려움을 겪는 일이 많다는 지적이 나왔다.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 이주노동자 차별철폐와 인권·노동권 실현을 위한 공동행동, 이주인권연대는 12일 오후 서울 저동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이주노동자 출국 후 퇴직금 수령제도 실태조사 발표회’를 열어 이런 주장을 폈다.

이주노동자를 고용하는 사업주는 퇴직금 지급을 위해 출국만기보험에 가입해야 한다. 이 보험금이 곧 퇴직금인데, 2014년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면서 보험금 지급 시기가 ‘퇴직 후’가 아니라 ‘출국한 때부터 14일 이내’로 바뀌었다. 회사를 그만둬도 한국을 떠나기 전까지는 퇴직금을 받을 수 없게 한 것으로, ‘불법체류’(초과 체류)를 막겠다며 넣은 내용이다.

이날 발표회에서 우삼열 아산이주노동자센터 소장은 경과보고를 통해 “제도 시행 1년 후, 고용노동부는 제도 도입의 효과가 3.4%라며, 아무런 실효성이 없음을 스스로 인정하기도 했다”며 퇴직금과 불법체류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지적했다. 발표자인 박다혜 전국민주노조총연맹 금속노조 법률원 변호사는 “국내 노동자에게는 ‘퇴직 14일 이내’에 퇴직금을 지급하는 것과 달리, 이주노동자에게는 출국 때까지 퇴직금 지급을 보류한 것이 재산권 침해이며, 차별”이라며 “출국 시까지 출국만기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 것은, 근로기준법이 금지한 강제저금의 성격을 사실상 가지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는 문제도 제기했다.

우삼열 소장은 수령 절차가 복잡해 이주노동자들이 퇴직금을 받는 데 어려움이 많다는 조사 결과도 공개했다. 전국 이주노동자 단체들이 지난달 국내 체류 이주노동자 712명(유효 설문)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출국만기보험금 수령 절차를 안다’고 한 응답자는 60%(조금 알고 있다 47.1%, 잘 알고 있다 12.9%)뿐이었다.

발표자들은 출국만기보험금과 실제 퇴직금의 차액인 ‘잔여 퇴직금’의 경우 문제가 더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실제 퇴직금보다 보험금 액수가 적은 경우, 사업주에게 이주노동자가 그 차액을 직접 받아야 하는데 앞의 설문조사에서 이런 제도를 ‘안다’는 응답자가 42.7%에 불과할 정도로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는 것이다.

‘잔여 퇴직금’이 발생하는 이유는, 출국만기보험금과 실제 퇴직금을 차이가 나도록 제도를 설계한 탓이다. 퇴직금은 1년 이상 일한 노동자가 퇴직 직전 3개월 동안 받은 ‘평균임금’이 기준이 된다. 그런데 사업주가 매월 납입하는 출국만기보험료의 기준은 평균임금이 아니라 ‘통상임금’이다. 평균임금은 노동자가 회사에서 실제로 지급받은 임금 전체를 포함하지만, 통상임금은 비정기적으로 지급하는 상여금이나 성과급 등은 포함하지 않기 때문에 평균임금보다 액수가 적다. 박다혜 변호사는 “(국내 노동자의 경우) 퇴직연금은 평균임금을 기준으로 사용자에게 납입부담금 적립 의무를 부과하고 있는데, 이주노동자 퇴직금 제도인 출국만기보험만 통상임금을 기준으로 정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주노동자 단체들은 “정부가 사업주를 위해 이주노동자 퇴직금을 깎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출국 후 퇴직금 수령제도를 폐지하고, 근로기준법을 준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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