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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8.21 16:17 수정 : 2019.08.21 16:24

단식 중인 김수억 금속노조 기아차 비정규직지회장이 20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 앞 농성장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김수억 기아차 비정규직지회장 단식 24일째
현대기아차 대부분 공정 “불법파견” 선고에도
노동부, 지난해 약속 이행 않고 계속 미적대
“지난해 노동행정개혁위 기준 따르면 될 일”

단식 중인 김수억 금속노조 기아차 비정규직지회장이 20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 앞 농성장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볼은 홀쭉해졌다. 목청이 갈라진 듯 정부를 향한 비판의 언어엔 쇳소리가 섞여 나왔다. 23일 동안 곡기를 끊은 탓이다. 그새 몸무게는 14㎏ 줄었다고 한다. 지난 20일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 앞 인도 위 김수억 전국금속노조 기아차비정규직지회장의 천막 농성장엔 생수병 꾸러미만 찰랑찰랑 생기를 뽐냈다.

김 지회장이 이 자리에서 단식하는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10월에도 비정규직지회 조합원들과 함께 18일 동안 농성하며 16일 동안 밥을 굶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김 지회장의 요구는 같다. “법원이 판단한 기준대로 고용노동부가 기아자동차에 불법파견자들을 직접 고용하라고 시정명령을 하라”는 것이다.

시간을 되돌려 문재인 정부 출범 뒤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이 설치한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는 지난해 8월1일 활동 결과를 발표하면서 적폐청산 과제 가운데 하나인 근로감독 분야에서 삼성전자서비스와 현대기아차 불법파견 문제를 다뤘다. 위원회는 현대기아차에 대해선 공장에서 일하는 사내하청 노동자의 경우 불법파견에 해당한다는 법원의 판결이 잇따르는데도 고용부가 직접 고용하라는 시정명령을 하지 않는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어 “현대기아차의 불법파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법원 판결 기준에 따라 당사자 확정을 위한 조사를 토대로 직접고용 명령, 당사자 간 협의 중재 등 적극적인 조치를 조속히 취하라”고 고용부 장관한테 권고했다.

그 뒤 김영주 장관은 9월13일 “노동부의 부당하거나 소극적인 대응으로 인해 노동자와 노동조합의 권리가 제대로 보호받지 못한 점에 대해 유감을 표명한다”며 사실상 사과의 뜻을 밝혔다. 하지만 직접고용 시정명령은 계속 이뤄지지 않았다. 김 지회장을 비롯한 노동자들의 농성과 단식이 이어지자 고용부는 10월7일 자료를 내어 “고용노동행정개혁위 권고사항에 기초해 직접고용 시정명령을 진행해 나갈 계획”이라고 재차 확인했다.

하지만 그 뒤에도 직접고용 시정명령이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고용부가 다음달께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이뤄지는 직접생산공정에 대해서만 시정명령을 할 방침이라는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급기야 김 지회장이 또 단식에 들어간 것이다. 김 지회장은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부터 서울중앙지법과 서울고법 등 법원이 10차례에 걸친 판결에서 현대기아차에서 일하는 모든 사내하청은 불법파견이라고 판단했는데 문재인 정부가 직접생산공정이니 간접생산공정이니 하며 법원 판단을 뒤집으려 하는 모습을 보니 개탄스럽다”고 말했다.

수원지검 공안부는 지난달 9일 사내하청 노동자 860명을 불법적으로 파견받아 쓴 혐의(파견노동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로 박한우 기아차 사장을 기소하면서 이른바 직접생산공정에 대해서만 불법 파견으로 판단했다. 고용부는 이 판단 기준을 따르겠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고용부 고위 관계자는 21일 <한겨레>와 통화에서 “검찰이 현대차 관련 대법원 확정판결 기준을 따라 판정한 것으로 안다. 검찰의 지휘명령에 따라 우리가 당사자 확정 작업을 하는 것으로 안다”며 “공무원이 확정되지 않은 판결을 기준으로 해석할 수 없다”고 말했다.

“법원 판결 기준”이란 표현을 놓고 김 지회장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구체적으로 법원이 그동안 불법파견 판단을 받은 모든 공정이라고 해석하는 반면, 고용부는 지휘명령·노무관리 여부 등 합법 도급과 불법 파견을 가르는 판단 기준이라고 얘기하는 데 차이가 있는 것이다. 김 지회장은 “노동부가 2004년과 2005년 현대차와 기아차의 사내하청이 불법 파견이라고 판단해놓고도 15년 동안이나 불법을 방조하며 직접고용 시정명령을 하지 않는 바람에 일을 더 키웠다”며 “하급심 법원은 심지어 새 차를 완성한 뒤 출고를 위해 세차하는 사내하청 노동자까지 불법 파견이라고 판단한 상황에서 노동부랑 검찰만 엉뚱한 기준을 들이대 재벌의 불법을 눈감아주려 한다”고 짚었다. 김 지회장은 고용부가 지난해 12월 관련 사건에서 식당·청소·세탁 업무를 뺀 모든 공정을 불법파견으로 보고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해놓고도 이번에는 형사처벌과는 결이 다른 직접고용 시정명령에 검찰의 기준을 가져와 자신의 기준을 무너뜨렸다는 점도 지적했다.

김 지회장은 2003년 4월 기아차 사내하청 노동자로 입사해 그동안 소렌토·K3·K5 등 자동차 조립 라인에서 운전대와 문짝 손잡이, 창문을 여닫는 도어레귤레이터 등 부품을 컨베이어 벨트에 공급하는 일을 해왔다. 법원 기준대로라면 그도 직접고용 시정명령 대상이 되나, 고용부 기준으로는 제외된다. 그는 2005년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노조인 비정규직지회가 설립된 뒤 불법파견 철폐 파업 투쟁을 하는 과정에서 한 차례 해고되고 두 차례에 걸쳐 징역형을 3년간 살았다.

김 지회장은 법원에서 불법파견으로 인한 한국도로공사 직원임을 인정받고도 자회사 이적을 거부해 해고당한 노동자 1500명한테도 동질감을 표시했다. “정부(공공기관)마저 법원 판결을 이행하지 않고 저러는데, 어느 대기업이 법을 지키겠나. 우리 요구는 특별하지 않다. 국가가 불법을 비호하고 봐주지 말고 제발 법대로만 해달라는 것이다. 촛불을 들고 싸운 이들한테 상식과 원칙이 통하는 사회를 보게 해달라는 것이다.”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단식 중인 김수억 금속노조 기아자동차 비정규직지회장이 20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 앞 농성장에서 전화통화를 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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