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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8.23 21:04 수정 : 2019.08.28 15:02

서울 가산동 디지털단지에선 아직도 강요된 공짜야근이 공공연히 이뤄진다고 노동자들은 증언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야근·연장노동 밥 먹듯 시키더니
수당 포기 거부하면 자른다 을러
고용노동청 “수당 6천만원 줘라”
시정명령 이행 안한 대표 형사입건
기막힌 ‘가산동 오징어잡이 배’
돌연사 잇따라도 공짜야근 버젓이

서울 가산동 디지털단지에선 아직도 강요된 공짜야근이 공공연히 이뤄진다고 노동자들은 증언한다. 게티이미지뱅크.
30대 여성인 김상진(가명)씨는 2017년 5월 서울 금천구 가산동에 있는 컴퓨터그래픽 전문 ㅍ회사에 취직했다. 유명 애니메이션 마무리 작업을 하는 하청업체였다. 원청이 원하는 작업을 사나흘에 한번씩 마감하느라 1주일에 사흘 안팎 연장근로를 해야 했다. 날짜를 넘겨 하는 야근도 부지기수였고, 다음날 아침까지 일하고 집에 가 옷만 갈아입고 출근한 적도 있다. 김씨는 “밤샘 야근을 하고 아침에 1~2분이라도 지각하면 ‘기본이 안 돼 있다’ ‘회사에 놀러 다니냐’는 호통을 들어야 했다”고 말했다.

첨단 디지털 산업의 장시간 노동을 상징하는 ‘가산동 오징어잡이 배’의 불은 이렇게 꺼지지 않았다. 하지만 김씨는 그렇게 일을 하고도 야근수당은 한푼도 받지 못했다. 회사는 심지어 월급명세서도 주지 않았다.

참다못한 김씨는 지난해 말 회사를 그만뒀다. 김씨와 상담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서울본부는 올해 4월 고용노동부 서울관악지청에 진정을 냈다. 노동청의 근로감독이 시작되자 회사는 이번엔 직원들한테 야근수당을 한푼도 받지 않겠다는 합의서를 쓸 것을 종용했다. 말로는 30%는 따로 챙겨주겠다며 “밀린 야근수당 다 주면 회사 망한다”고 했다. 서명을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느냐는 직원들의 질문에 회사 간부는 “실업급여 받게 자른다. 퇴사 처리를 하는 거다. 야근수당을 주는 회사가 어디 있느냐”고 말했다고 당시 재직 중이던 민지영(가명)씨가 말했다. 민씨는 끝까지 서명을 거부했다.

결국 민씨 등 2명을 뺀 직원 20여명에게 합의서를 받아낸 회사는 며칠 뒤 체불 임금과 관련해 “대표이사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추가된 합의서를 다시 들이밀어 받아 갔다. 민씨는 합의서 서명을 거부하고 버티다 지난 6월 초 퇴사했다.

근로감독을 벌인 관악지청은 7월4일 ㅍ사에 재직자 18명과 퇴직자 16명한테 체불한 연장근로수당과 야근수당 6천여만원을 지급하라고 시정 명령을 했다. 하지만 ㅍ사는 기한인 7월24일까지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 관악지청 관계자는 “대표를 입건해 조사를 마쳤고 조만간 기소 의견으로 서울남부지검에 송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조아무개 ㅍ사 사장은 “회사에 돈이 없어서 밀린 야근수당을 주지 못하고 있다. 돈이 있으면 주고 끝내고 싶다”며 “법적인 부분에 대해선 따로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ㅍ사에서 보듯 ‘가산동 오징어잡이 배’로 상징되는 첨단 업종의 장시간 노동은 하루 이틀 문제가 아니다. 고용노동부가 2017년 게임업체 등에서 잇달아 과로사 사건이 벌어진 뒤 게임업체 12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노동자 3250명 가운데 63.3%인 2057명이 주중 12시간인 법정 한도를 넘겨 일하면서도 연장근로수당은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던 사실이 드러났다. 가산동 등 서울 남부지역 노동자 권리 찾기 단체인 ‘노동자의 미래’ 박준도 정책기획팀장은 “최근 몇년간 가산동에서만 노동자 4명이 돌연사하고 2명이 과로가 원인이 된 것으로 보이는 자살을 하는 등 상태가 심각한데도, 이 지역에서 공짜 야근이 근절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고 짚었다.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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