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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9.15 17:00 수정 : 2019.09.15 20:47

직장갑질119, 신고 방치하거나 불이익 준 사례 공개
실업급여 수급 가능한 정당한 자발적 퇴사 사유 추가로 필요

#1.

직장인 ㄱ씨는 직장 상사가 다짜고짜 욕설을 퍼붓고 의자를 발로 차면서 해고하겠다고 협박을 해왔다. 옆에 있던 다른 상사도 폭언하면서 ㄱ씨를 “잘라야 한다”고 거들었다. 다행히 부서장이 “해고할 수 없다”고 나섰지만, ㄱ씨는 사장에게 직장 내 괴롭힘을 고발했다. 하지만 사장은 “그런 것도 못 참아 내냐”고 오히려 욕을 했다. 그러면서 “나한테 보여준 고발 자료들이랑 나한테 한 얘기들 안 보고 안 들은 거로 할 테니 일이나 하라”라고 했다. ㄱ씨는 “저를 괴롭히고 자르려고 했던 상사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농담을 주고받는데 너무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며 “잘못된 행동을 하지도 않았는데 이러니 너무 억울하다”고 말했다.

#2.

한 공공기관의 용역으로 특수경비 일을 하는 ㄴ씨도 비슷한 경우다. ㄴ씨는 외부인의 무단출입 문제를 계기로 반장과 사이가 틀어져 괴롭힘을 당했다. 반장은 시시티브이(CCTV)로 ㄴ씨의 휴대전화 사용을 감시하더니 급기야 화장실에 간 사이 무전을 받지 않았다며 경위서를 쓰라고 했다. ㄴ씨는 반장이 원하는 문구를 강제로 집어넣은 경위서를 나흘 동안 매일 1장씩 써야 했다. ㄴ씨는 상급자인 대장에게 문제를 제기했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ㄴ씨가 근무를 잘 서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 아니냐”는 말이었다. ㄴ씨는 결국 고용노동청에 신고했지만, 회사는 자체 조사 결과 “직장 내 괴롭힘이 아니다”는 결론을 내리고 ㄴ씨를 여전히 해당 반장과 같은 조에서 근무하게 하고 있다. ㄴ씨는 “노동청 근로감독관이 제대로 조사를 해주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반장은 보이지 않게 괴롭힘을 이어가고 있다”며 “게다가 본사는 노동청에 신고되었다는 이유로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오는 16일이면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된 지 두달이 되면서 시민단체 ‘직장갑질 119’에는 법 시행 이전(하루 평균 65건)보다 1.6배 정도 많은 하루 평균 102건의 제보가 들어오고 있다. 직장갑질 119는 특히 법 시행 이후 직장 내 괴롭힘을 회사에 신고하고도 신고 내용을 방치하거나 신고자에게 불이익을 주는 사례가 속속 접수되고 있다고 15일 밝혔다. 직장갑질 119는 “법 시행으로 기업들이 취업규칙을 개정하고,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예방교육을 하는 등 변화가 일어나면서 참고 있던 직장인들이 용기를 내기 시작했다”며 “하지만 여전히 과거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회사와 상사들이 갑질 신고를 방치하거나 무시해 조직 내에서 ‘갑질 암세포’가 퍼지게 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직장 내 괴롭힘이 정당한 실업급여 수급 사유에 해당하지 않아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배송 업무를 하는 직장인 ㄷ씨는 일이 많기로 소문난 업체에서 새벽부터 저녁까지 끼니도 거르며 일해왔다. 토요일도 오후까지 일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업무 강도보다 ㄷ씨를 못 견디게 한 건 사장의 폭언이었다. 사장은 자주 인상을 쓰면서 퉁명스럽게 지시를 했고, 급기야는 지시하지도 않은 내용을 가지고 심한 욕설과 폭언을 하며 “때려치워라”고 말했다. ㄷ씨는 참다못해 “저의 퇴사를 원해서 이러시는 거냐”고 물었지만, 사장은 “나는 퇴사하라고 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곧 사장은 신입에게 배정하는 가장 힘든 업무를 ㄷ씨에게 배정했다. ㄷ씨는 결국 “객관적으로 증명될 정도로 남들보다 많은 일을 했고, 동료나 다른 상사들과는 사이가 좋은데 유독 사장이 괴롭히니 다니기가 힘들었다”며 퇴사를 택했다.

고용보험법 시행규칙을 보면, ‘사업장에서 불합리한 차별대우를 받은 경우’와 ‘성적인 괴롭힘을 당한 경우’ 등은 실업급여 수급이 제한되지 않는 정당한 자발적 퇴사 사유로 인정된다. 하지만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한 경우’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 ㄷ씨가 실업급여조차 받지 못하는 막막한 상태에 처하게 된 까닭이다. 직장갑질 119 상근 스태프인 최혜인 노무사는 “임금체불이나 최저임금 미달 등은 정당한 자발적 퇴사 사유로 인정되는데, 직장 내 괴롭힘도 결코 가벼운 사유라고 할 수 없다”며 “시행규칙에 사유만 추가하면 되기 때문에 국회를 거치거나 국무회의 결정도 필요하지 않고 고용노동부 장관이 결정만 하면 된다”고 말했다.

‘직장 내 괴롭힘’ 사례가 발생하면, ‘직장갑질119’ 카톡 오픈채팅에서 ‘직장갑질119’를 검색해 상담하거나 고용노동부 상담센터(국번 없이 1350)로 신고해 상담하면 된다.

오연서 기자 lovelett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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