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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0.08 21:37 수정 : 2019.11.18 14:59

문재인 대통령(왼쪽에서 둘째)이 8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내년 50인 이상 기업 시행 앞
탄력근로 단위기간 확대 촉구

“기업 대비 위해 국회통과 시급
입법 안 될 경우 대비책 마련을”

노동계 “노동시간 단축 무력화”

문재인 대통령(왼쪽에서 둘째)이 8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국회에 계류 중인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법안의 조속한 처리와 함께, 입법 절차 없이도 정부가 시행할 수 있는 ‘주 52시간제 보완책’ 마련을 당부했다. 주 52시간제로 기업 부담이 크다며 유연근무제를 대폭 확대해달라는 재계의 요구를 수용한 모양새다. 노동계는 이제 막 자리잡고 있는 노동시간 단축 정책을 무력화하려는 것이냐며 강하게 비판했다.

문 대통령은 8일 오전 청와대에서 연 국무회의 머리발언에서 “노동시간 단축에 대해서 내년도 50인 이상 기업으로 확대 시행되는 것에 대해서는 경제계의 우려가 크다”며 “기업들의 대비를 위해 탄력근로제 등 보완 입법의 국회 통과가 시급하다. 당정 협의와 국회 설득 등을 통해 조속한 입법을 위해 최선을 다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만에 하나 입법이 안 될 경우도 생각해두지 않으면 안 된다”며 “정부가 시행한 실태조사를 바탕으로 국회의 입법 없이 정부가 할 수 있는 대책들을 미리 모색해주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현재 국회에는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현행 3개월에서 6개월로 확대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계류돼 있다. 대통령 직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에서 논의한 내용을 바탕으로 한 것인데, 자유한국당이 이 법을 처리하려면 선택적 근로시간제의 정산기간도 함께 확대(1개월→3~6개월)해야 한다고 맞서 논의가 멈춘 상황이다. 탄력근로제를 하면 특정일에 더 오래 일하는 대신 다른 날의 노동시간을 줄여, 2주 또는 3개월의 평균 노동시간을 법정 노동시간에 맞추되 1주 최대 노동시간은 64시간으로 제한하게 된다. 반면 선택적 근로시간제는 업무 시작과 종료 시각을 노동자가 정하고, 1개월 이내의 주당 평균 노동시간만 52시간으로 맞추면 특정일 또는 특정주의 노동시간은 제한하지 않는다. 더불어민주당은 선택적 근로시간제의 정산기간을 확대하면 노동조건이 더 악화할 수 있다며 자유한국당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문 대통령이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법안을 국회가 빨리 처리하도록 노력하라고 주문한 것은, 당장 두 달 뒤인 내년 1월부터 상시 근로자 50인 이상 기업까지로 주 52시간제가 확대 실시되는 만큼 현장의 혼란과 기업의 부담을 줄여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의 국무회의 발언은) 국회가 좀 더 적극적으로 입법 관련 논의에 나서달라는 취지인 것 같다. 현재 발의된 여당안은 경사노위에서 한국노총과 합의한 것이라, 지금 발의된 안을 다시 조정해달라는 것은 아닌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탄력근로제 법안은 이 정부 들어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이 처음으로 총파업을 벌였을 정도로 강하게 반발하는 내용이다. 게다가 1기 경사노위의 계층별 위원 3명도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에 반대해 반년 넘게 경사노위 본위원회가 공전한 바 있다. 설령 이번 정기국회에서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정부와 민주노총 등 노동계의 관계가 더 악화할 가능성이 높은 셈이다.

더 큰 문제는 “입법 없이 정부가 할 수 있는 대책들”이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등 경제4단체장은 지난 4일 문 대통령을 만나 주 52시간제 확대에 우려하는 의견을 전했다. 앞서 8월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정부에 전달한 ‘유연근무제도 개선 건의 사항’에서 “정부는 자체적으로 할 수 있는 시행규칙과 고시를 개정하여, 한시적 인가연장근로 허용 범위와 재량근로시간제 대상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한시적 인가연장근로는 고용노동부 장관의 인가를 얻어 주 52시간 이상 일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인데, 근로기준법 시행규칙 9조는 이를 자연재해 등으로 제한하고 있다. 또 재량근로시간제는 업무 수행 방법을 노동자에게 일임하는 대신 노동시간은 사전에 사용자와 노동자가 서면합의로 정한 만큼만 인정하는 것으로, 고용노동부 고시에서 회계·금융투자분석·법무 등의 일부 업무에만 허용하고 있다. 재계의 요구는 이 두 제도를 대폭 확대해달라는 것이다.

노동부 쪽은 “노동부는 탄력근로제 법안만 통과되면 재계의 웬만한 우려는 다 해소된다. 특별연장근로나 재량근로시간제 확대는 아직 고려 사항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다만, 내년 1월부터 주 52시간제를 시행해야 하는 사업장에도 이전처럼 계도기간을 둘 여지는 적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노동계는 문 대통령의 발언으로 노동시간 단축 정책이 공공기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최저임금 1만원 공약 포기 등에 이어 또 하나의 ‘줬다 뺏는 노동정책’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이미 정부가 일본의 수출규제 조처 대응책이라며 연구개발(R&D) 노동자의 특별연장근로를 허용했고, 내년에 주 52시간제를 도입하는 기업 10곳 가운데 4곳의 준비가 제대로 안 돼 있다는 실태조사 결과를 내놓는 등 노동시간 단축 정책을 되돌릴 ‘군불때기’를 해왔다고 보기 때문이다.

한국노총은 논평을 내어 “대통령의 발언은 스스로 밝힌 ‘노동존중’에 역행하는 것으로, 기업과의 로맨스는 고스란히 노동자들에게 피해로 돌아온다”며 “지금 정부가 해야 할 것은 현재의 장시간노동 체계를 온존하려는 재계의 요구를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노동시간 단축 관련 법·제도 준수와 제도 시행을 기피하려는 사례를 철저히 근로감독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민주노총은 “문 대통령은 장시간 저임금 노동을 유일한 경쟁력으로 여기는 국내 경제계의 노동시간 단축 ‘우려’만 거론했지, 노동계의 우려와 저임금·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노동자는 고려조차 하지 않았다”며 “민주노총은 대통령이 나서 투쟁을 요구하는 만큼 더욱 철저하고 강력하게 11월 총파업과 총력투쟁을 준비하겠다”고 날을 세웠다.

조혜정 이완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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