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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1.08 19:13 수정 : 2019.12.09 14:45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30돌을 하루 앞둔 지난 5월27일 오후 서울 세종로 광화문 소공원 앞 전교조 농성장에서 해직교사들이 선물받은 책도장을 바라보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토요판] 다음주의 질문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30돌을 하루 앞둔 지난 5월27일 오후 서울 세종로 광화문 소공원 앞 전교조 농성장에서 해직교사들이 선물받은 책도장을 바라보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동의안과 관련 노동관계법 개정안이 국회에 보내진 지 한달여 지났다. 정기국회 국정감사 기간엔 법안을 다루지 못하니 마냥 ‘국회가 놀았다’고 욕할 순 없다. 하지만 국감이 끝난 지 2주가 흐르도록, 소관 상임위원회인 환경노동위원회만 상임위 17곳 가운데 유일하게 법안심사소위 일정조차 합의하지 못했다는 점은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만든다.

국회가 다루는 쟁점 가운데 중요하지 않은 게 어디 있을까만, 핵심협약 비준동의안과 노동관계법 개정안은 일하는 사람이 사람답게 일하고 정당하게 대접받을 기초를 다지는 일이라 우선순위에 오르는 게 마땅하다. 그런데도 환노위에선 관련 논의를 시작조차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비준동의안은 결사의 자유와 관련한 87·98호 협약과 강제노동을 금지한 29호 협약이다. 이 가운데 이목이 집중된 것은 모든 노동자의 단결권, 즉 모든 노동자가 노동조합을 만들거나 가입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노조 활동을 이유로 차별받아선 안 된다는 결사의 자유 협약이다.

헌법으로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이라는 노동 3권을 보장하는 나라에서 별도로 무슨 협약을 비준하나 싶지만, 사실 현재 노동 3권의 적용 범위는 제한적이다. 가령, 현행법상 소방관은 노조를 만들거나 가입할 수 없다. 툭하면 방화복조차 제대로 지급 못 받고 장갑도 사비로 사서 쓰는 ‘극한의 노동자’인데도, 이를 개선하라고 집단적으로 사용자에게 요구할 길이 막힌 것이다.

해고자·실업자도 마찬가지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을 생각하면 쉽다. 교사들은 모두 다른 학교에서 일하지만, 사용자는 교육부·시도교육청으로 전교조와 단체협약을 맺었었다. 하지만 해고자가 있다는 이유로 전교조는 ‘노조 아님’ 신분이 돼버렸다. 하물며 여기서 몇달 일하다 잘리고, 저기 들어갈 때까지 또 몇달이 걸리는 일이 반복되는 요즘 세상에서 단지 해고자·실업자라는 이유로 노조에서도 나가라니 너무 이상하지 않은가.

이를 바로잡으려는 게 결사의 자유 핵심협약이다. 그런데도 재계는 만능열쇠 ‘시기상조론’으로 핵심협약 비준에 반대하고, 자유한국당은 돌림노래로 이를 이어받는다. ‘글로벌 스탠더드’를 그렇게나 좋아하는 분들이 왜 노동권 보호 문제에선 ‘한국식’을 고집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이번 정기국회에서 반드시 비준동의안과 관련 법안을 통과시키겠다는 정부와 여당은 역부족이다.

이렇게 지지부진하다간 비준동의안 등이 20대 국회에서 자동 폐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기국회가 끝나면 여의도는 내년 4월 치러지는 총선 대비체제로 전환될 텐데, 그때 국회의원들이 자기 공천장 따내는 것보다 중요한 일이 있을까?

어쩌면, 이 최악의 시나리오가 결과적으로는 더 나을지도 모른다. 사실 정부가 발의한 비준안 관련 노동관계법 개정안엔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학습지 교사, 보험설계사, 택배노동자 같은 특수고용노동자는 핵심협약 비준과 법 개정 이후에도 여전히 단결권을 보장받지 못한다. 이렇게 구멍 사이로 빠져나가는 특수고용노동자의 규모는 230만명으로 추산된다. 노조의 사업장 주요 시설 점거 금지, 단체협약 유효기간 3년으로 연장 등도 핵심협약 위반에 해당된다는 지적이 많다. 그렇다면 시간이 좀 더 걸리더라도 법 개정안을 제대로 만들어 통과시키는 게 합리적일 수 있다.

문제는 이런 가정이 실현될 리 없다는 점이다. 노동계가 반발하는 것 못지않게, 법 개정안이 ‘노조 편향적’이라는 재계의 압박도 거세다. 더구나 집권 하반기, 정부는 눈에 보이는 성과 만들기에 조급증을 낼 수밖에 없다. 설령 정부가 개정안을 다시 만든다 하더라도 이들의 요구를 추가로 더 수용할 여지는 분명하다는 얘기다.

더구나 이 핵심협약 비준을 전제로 한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유럽연합(EU)은, 이미 한국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며 전문가 패널 소집을 요청해놓은 상황이다. 전문가 패널 소집은 ‘분쟁 해결 절차’로, 한국과 유럽연합, 제3국 대표가 1명씩 참여해 90일 동안 문제점을 살피고 권고·조언 등을 담아 보고서를 제출하게 된다. 한국이 노동권 후진국이라는 망신을 당할 ‘기회’가 아직 남아 있는 셈이다.

이런 모든 상황과 가정, 가능성을 국회와 정부가 모를 리 없다. 지금처럼 지지부진하게 가만히 있는 게 답이 아니라는 걸 그들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물어봐야겠다. 국제노동기구 핵심협약 비준동의안은 국회 문턱을 넘을 수 있을까?

조혜정  ㅣ 사회정책팀 데스크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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