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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2.08 21:48 수정 : 2019.12.09 02:30

`김용균 1주기 추모위원회' 주최로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열린 추모대회에서 참석자들이 밝힌 촛불이 환하게 빛나고 있다. 촛불 뒤로 주최 측이 준비한 팻말이 놓여져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김용균 1주기 연속 기고
박점규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 집행위원

`김용균 1주기 추모위원회' 주최로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열린 추모대회에서 참석자들이 밝힌 촛불이 환하게 빛나고 있다. 촛불 뒤로 주최 측이 준비한 팻말이 놓여져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11월의 마지막날 한국지엠(GM) 부평공장의 ‘김용균’.

고향이 인천인 ㅇ씨가 군대를 제대한 후 취직자리를 알아보던 해에 외환위기가 터졌다. 대기업 취업문이 막혀 옷가게에서 일하다 남동공단 가구공장에서 직장을 구했다. 대우자동차를 인수한 지엠은 공장 가동이 정상화되던 2006년 사람을 많이 뽑았다. 그런데 정규직이 아닌 사내하청이었다. 그는 유경이라는 하청업체에 입사했다.

부평공장 2공장 도장 스프레이 공정. 윈스톰과 말리부 차체가 들어오면 로봇이 페인트를 뿌렸다. 트렁크 후미나 도어 모서리처럼 칠이 되지 않은 곳을 찾아 페인트를 칠하는 작업, 방독면을 쓰고 일해야 하는 기피 공정이었다. 정규직은 없었고, 하청업체 직원들만 일했다.

2017년 5월.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고 첫 일정으로 인천공항을 방문해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선언했을 때, 그는 정규직 전환에 대한 기대에 부풀었다. 문 대통령은 “불법파견 판정 시 즉시 직접고용 제도화”를 약속했다. 2016년 6월, 금속노조 소속 창원공장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낸 소송에서 이들이 한국지엠 정규직이라는 대법원 판결 이후 부평공장에서도 정규직 소송이 시작됐다. 노조원이 아니었던 그는, 금속노조 대신 소송을 도와주겠다는 하청업체의 권유를 받아 정규직 소송에 참여했다.

금속노조가 나선 소송은 빨리 진행돼 지난해 2월13일 1심에서 승소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그가 속한 회사 소송은 더디기만 했다. 그러는 사이 잘나가던 회사가 점점 어려워졌고, 군산공장을 폐쇄한 한국지엠은 올해 1월부터 무급휴직을 시행했다. 한달은 일하고, 다음달은 쉬라고 했다. 월급은 반 토막 났다. 그는 실손보험 하나만 남기고, 생명보험을 비롯한 다른 보험 3개를 다 해지했다. 정규직의 꿈은 아스라이 멀어져갔다.

하청업체는 희망퇴직을 받았다. 그는 쫓겨나고 싶지 않았다. 신혼여행 이후 15년 만에, 중학교에 진학하는 아들과 제주도로 가족여행을 가기로 한 약속을 지키고 싶었다. 11월 한달 일요일까지 하루도 쉬지 않고 일했다. 11월 마지막날 아침 8시, 그는 구토 증상으로 도장부 사무실에서 쉬다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숨졌다. 그가 가족에게 남긴 유품은 사발면과 쓸모가 사라진 실손보험, 그리고 ‘근로자지위 확인 소장’이었다.

고 김용균씨 1주기를 앞두고 7일 저녁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열린 추모대회에서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씨 등 참가자들이 광화문광장 김용균 씨 분향소와 청와대 앞으로 행진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2018년 산업재해 사망자 2142명, 경제협력개발기구 1위. 일하러 갔다가 하루에 6명이 퇴근하지 못하는 사회다. 김용균 이후에도 달라지지 않은 죽음의 일터를 오늘도 밥 벌러 간다. 한국지엠에서 14년 동안 자동차를 만든 ㅇ씨의 사망 원인은 산업재해로 인정받기 쉽지 않은 심근경색이다. 한국지엠이 법원 판결대로 그를 정규직으로 전환했다면, 비정규직에게만 무급휴직을 강요하지 않았다면, 일요일만이라도 쉴 수 있게 했다면, 밥 벌러 간 그는 퇴근할 수 있었고, 가족과 제주도 여행을 떠날 수 있었다.

시민의 힘으로 불의한 권력을 끌어내리고 들어선 촛불 정부에 대한 기대는 매우 높았다. ‘비정규직 이제 그만’과 ‘직장갑질 119’가 문재인 대통령 취임 2주년을 맞아 비정규직 당사자 124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노동정책에 대한 기대는 매우 컸음(69.6%)과 컸음(20.6%)을 더해 90.2%를 기록했다. 그런데 2년이 지난 후 노동정책 만족도는 매우 불만(45.4%), 불만(41.5%)을 합쳐 86.9%가 불만을 나타냈다. 파견, 용역 등 간접고용 노동자의 경우 매우 불만(53.4%)과 불만(40.3%)이 무려 93.7%였다.

문재인 정부는 70개의 노동 존중 공약을 내걸었다. 그중 직장인들의 삶에 영향이 적은 10여개 공약만 실현됐다. ㅇ씨가 그토록 고대했던 정규직의 꿈, “불법파견 판정 시 즉시 직접고용 제도화”를 비롯해 △비정규직 사용 사유 제한 △용역업체 변경 시 고용·근로조건 승계 의무화 △체불임금 200% 부과금 제도 및 임금채권 소멸시효 5년 연장 △근로자 대표 제도 실질화 △근무시간 외 카톡 금지 등 직장인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공약은 정부 서랍과 국회 창고에 처박혀 있다.

지난여름 만난 김수억 기아자동차 비정규직지회장은 서울노동청 앞에서 단식하겠다고 했다. 황교안처럼 열흘도 되기 전에 쓰러져 병원에 실려 가는 ‘황제 단식’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말렸다. 기륭전자에서 쌍용차까지 이가 몽땅 빠지고 오장육부가 뒤집히는 단식 후유증을 가까이서 지켜봤기 때문이었다. 근로자지위 확인 소송을 하고 있어서 가만히 있어도 정규직이 될 텐데 왜 고행의 길을 가느냐고 물었다. 김수억은 수백만명에 이르는 하청노동자들이 대법원까지 10년을 소송하지 않아도, 정부 행정명령으로 정규직이 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김수억은 47일을 굶다 의식을 잃어 병원으로 실려 갔다.

“이대로 20년, 30년을 더 살라고 하면 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박근혜가 퇴진하면 내 삶도 나아질 수 있을까요?” 박근혜 퇴진 촛불집회에서 스물넷 전기공이 외친 호소다. 땀 흘려 일하는 사람들의 삶이 달라졌느냐고, 문재인 대통령에게 묻고 싶다.

서초동 촛불이 한창일 때였다. 동네 후배 가족이 검찰 촛불집회에 갔을 때, 나는 경북 김천 한국도로공사에서 점거농성 중인 톨게이트 노동자들과 연대하는 ‘희망버스’를 탔다. 후배가 말했다. “형님, 여기 사람 많은데 버스 몇대 보내드릴까요?” 검찰 개혁을 위한 서초동 촛불도 중요하고 국회 개혁을 위한 여의도 촛불도 필요하다. 그런데 오늘도 밥 벌러 나간 6명이 퇴근하지 못하는 사회는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아직 엄마는 이곳에서 할 일이 많단다. 대통령과 정부 여당이 유가족 앞에서 약속했던 것도 하나도 지켜지지 않았어. 그래서 합의 이행 약속 지키라고 해야 하고 특조위 권고안도 현장에서 이행이 되는지 지켜봐야 하고, 너를 죽게 만든 책임자들 강력한 처벌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단다. 그리고 또 중요한 것은 너를 비록 살릴 순 없지만 다른 사람들이 우리처럼 삶이 파괴되는 것을 막고 싶단다.”

지난 토요일 영하의 강추위 속에서 열린 김용균 1주기 촛불집회에서 어머니 김미숙씨가 눈물을 흘리며 읽은 편지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김용균 2차 촛불’을 제안했다. 내 친구 일하다 죽지 않게, 내 동생 일터에서 차별받지 않게 같이 촛불을 들었으면 좋겠다.

박점규 ㅣ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 집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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