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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2.11 21:31 수정 : 2019.12.12 02:43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이 1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주 52시간제 현장 안착을 위한 보완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 사실상 1년6개월 처벌 유예
경영상 사유도 특별연장근로 허용…
노동계 “헌법소원·행정소송” 반발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이 1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주 52시간제 현장 안착을 위한 보완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중소기업(50~299인 상시 근로 사업장)의 주 52시간제 시행을 20여일 앞두고, 이를 위반하는 사업주의 처벌을 최장 1년6개월 동안 유예하는 방안을 내놨다. 또 이들은 물론 대기업을 포함해 이미 주 52시간제를 시행하고 있는 기업까지도 특별연장근로 허용 사유를 ‘통상적이지 않은 업무량 증가로 단기간 내에 처리하지 않으면 사업에 중대한 지장이나 손해가 초래되는 경우’ 등 자의적 해석이 가능한 경영상 사유로 대폭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노동시간 단축 정책을 포기한 것이라는 비판이 쏟아지는 가운데, 양대 노총은 헌법소원 등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1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연 브리핑에서 “정기국회가 종료돼 탄력근로제 개선을 위한 보완입법 가능성이 불투명해졌다. 50~299인 기업에 주 52시간제가 안착하려면 정부가 보완조치를 마련하는 것이 불가피해졌다”며 “(이들 기업에) 1년의 계도기간과 최대 6개월의 시정기간을 부여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계도기간 동안엔 기업이 주 52시간제를 준수하는지 노동부가 근로감독을 하지 않고, 법 위반 사실이 확인돼도 최대 6개월의 ‘시정조치’만 요구할 뿐 처벌하지 않는다. 50~299인 사업장에서 주 52시간을 넘겨 일을 시켜도 최장 1년6개월 동안 처벌이 유예되는 것이라, 그동안은 법이 있으나 마나 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 함께 이 장관은 “대기업을 포함해 모든 기업을 대상으로, 업무량이 대폭 증가하거나 국가경쟁력·국민경제에 영향을 끼치는 연구개발 업무 등에 특별연장근로를 허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행 근로기준법 시행규칙은 ‘자연재해와 재난에 준하는 사고를 수습해야 하는 경우’에 한해서만 노동시간에 제한을 두지 않는 특별연장근로를 허용한다. 그런데 정부는 “주 52시간제 안착을 위해 허용 사유를 좀 더 폭넓게 인정해야 할 필요성이 커졌다”며 △인명 보호와 안전 확보 △시설·설비의 고장 등 돌발적인 상황에 따른 긴급대처 △업무량의 대폭 증가로 단기간에 처리하지 않으면 사업에 중대한 지장이나 손해가 초래될 때 △국가경쟁력 강화와 국민경제 발전에 필요한 소재·부품 관련 연구 업무도 특별연장근로를 허용하기로 했다. 노동부는 이런 내용을 담은 근로기준법 시행규칙을 입법예고할 예정이다.

문제는 정부가 내놓은 ‘보완대책’이, 명분으로 내세운 ‘주 52시간제 안착’을 돕기는커녕 노동시간 단축 정책 자체를 무력화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정부가 특별연장근로를 허용하겠다고 든 사례를 보면, △버스 운행 중 갑작스러운 교통정체로 인한 불가피한 연장근로 △원청의 갑작스러운 주문에 따른 촉박한 납기일 준수 △대량 리콜 사태 △교통사고 뒤 2차 사고 예방을 위한 도로 수습 등이 들어 있다. 무리한 납품 기한을 하청업체에 일방적으로 요구하는 일이 만연한 원청의 ‘갑질’ 방지나 상습 교통정체에 대비한 버스회사들의 인력 충원, 배차 간격 조정 등 근본적인 문제 해결책 마련엔 손 놓은 채 노동자의 장시간 노동에만 의존하는 사업주의 편의를 최우선으로 고려했다는 비판이 나올 수 있는 대목이다. 중소기업의 주 52시간제 실시를 유예한 것도, 대기업과의 임금 양극화에 이어 노동·휴식시간 양극화를 방치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노동계는 일제히 “정부가 노동시간 단축을 포기했다”고 비판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가 재벌과 보수 세력에 굴복해, 법이 보장한 노동조건을 개악하는 행정조치를 남용하고 있다”며 이재갑 노동부 장관의 퇴진을 촉구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역시 “작년 7월 특별연장근로를 ‘경영상 사유’까지 확대하는 것은 노동시간 단축 취지와 맞지 않는다고 한 노동부의 입장이 1년 반 사이에 180도 바뀌었는데, 어느 누가 이에 동의하고 수긍하겠나”라고 지적했다. 양대 노총은 모두 근로기준법 시행규칙이 개정될 경우, 헌법소원과 행정소송을 내겠다고 못박았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이정미 정의당 의원은 “법률로 정한 주 52시간 상한제 시행을 정부 시행령으로 연장하는 것은 위헌적인 조치”라며 “특별연장근로의 포괄적 사유를 허용한 것은 주 52시간제 시행 여부를 노동부 장관의 재량으로 만든 것으로 심각한 직권남용에 해당된다”고 우려했다.

경영계는 ‘한숨 돌렸다’는 반응을 보이면서도 ‘요구 사항을 더 관철하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지난 8월, 근로기준법 시행규칙을 개정해 특별연장근로의 허용 범위를 ‘사업상 불가피한 사정’ 등으로 확대하고, 주 52시간제의 경우 대기업은 계도기간을 연장하고 중소기업은 시행을 유예해달라고 정부에 요구한 바 있다. ‘숙원 과제’를 해결한 경총은 이날 논평을 내어 “정부가 중소기업에 계도기간을 부여하고, 특별연장근로 인가 사유를 확대한 것은 기업에 대응할 여지를 준 것”이라면서도 “매번 개별 근로자의 동의를 얻고 정부 인가까지 받아야 하기 때문에 정부의 재량적인 판단에 (특별연장근로 인가가) 좌우되는 불확실성을 안고 있다”고 주장했다.

선담은 김경락 최민영 기자 s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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