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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2.26 04:59 수정 : 2019.12.26 04:59

전국공공운수노조 한국가스공사 비정규지부 조합원들이 지난 11일 낮 대구 동구에 있는 가스공사 직원식당 앞에서 직접 고용을 촉구하는 선전전을 하고 있다. 대구/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모기관이 준 사업비가 수익의 전부
지출항목도 구체적으로 정해놔
예산증액 없이는 처우개선 불가능

전국공공운수노조 한국가스공사 비정규지부 조합원들이 지난 11일 낮 대구 동구에 있는 가스공사 직원식당 앞에서 직접 고용을 촉구하는 선전전을 하고 있다. 대구/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직원이 1천명 안팎으로 제법 규모가 큰 어느 공공기관 자회사 사장 백승우(가명) 대표는 요즘 골머리를 앓고 있다. 노조 쪽이 10개월 전에 안전관리 책임자한테 한 달 5만원 안팎의 수당을 책정해달라고 요구했는데, 여태껏 답변을 주지 못하고 있는 탓이다. 백 대표가 보기엔 노조 쪽 주장이 일리 있다고 보고, 모회사인 공공기관에 지급 여부를 문의했으나 답변을 듣지 못했다. 백 대표는 22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자회사 직원들의 임금, 처우 개선 등 예산과 관련해선 자회사 사장에게 결정권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예산을 쥐고 있는 모기관이 나서줘야 하기 때문에 노동조합과 협상할 때도 늘 ‘(모기관과 협의할 테니) 기다려달라, 노력하겠다’는 말밖에 못한다. 모기관에 자료를 제출하고 관련 예산 증액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며 고충을 털어놨다.

문재인 정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정책 시행을 위해 공공기관들이 설립한 자회사의 대표들은 자체 결정권이 없는 탓에 각종 처우를 개선해달라는 직원들의 요구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정책 시행 과정에서 설립된 많은 자회사들이 오직 모기관과 수의계약으로 받는 계약금이 수익의 전부인 탓이다. 백 대표는 “이렇게 지출 항목들이 구체적으로 정해져 있어 자회사가 자체적으로 임금 인상이나 처우 개선을 원천적으로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상황 탓에 자회사 노조가 자회사 대표를 건너뛰어 모기관에 직접 협상을 요구하는 일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500명 직원 규모의 한 자회사 대표는 “노동조합과 임금교섭 때 노조도 자회사 대표에게 권한이 없는 걸 잘 알기 때문에 (나를 제치고) 모기관이 교섭에 임하라고 주장하는 당황스러운 경험을 했다”고 말했다.

이는 정부가 관련 지침에서 자회사를 기존 용역 방식대로 운영하지 말고 안정성과 독립성, 책임성, 전문성을 갖춘 지속가능한 조직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 것과는 모순된다.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은 “자회사 대표들의 말은 현재 자회사가 정부의 지침이 구현될 수 있는 여지가 없는 상태로 운영되고 있고, 자회사가 민간 용역회사와 다를 게 없다는 것으로 들린다”며 “정부가 자회사를 공공기관 자율에만 맡겨둘 게 아니라 체계적으로 관리하면서 자율성과 책임성을 갖출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규남 기자 3string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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