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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2.24 18:39 수정 : 2005.02.24 18:39

대부분 언론, 판례·법감정 들어 ‘튀는 판결’ 몰아
“오랜 통념에 문제제기한 판결” 의미 부여 한곳뿐

(귀족 스포츠)골프+(튀는 판사)이정렬=(볼것없이)논란?

서울남부지법 이정렬 판사가 고액 내기골프를 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이들한테 무죄를 선고하자, 대부분 언론들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한 목소리를 냈다. 상급법원 판례와 국민 법감정에 어긋난다는 이유다. 언론은 이 판사의 법리 해석을 깎아내리는 데 급급해 ‘내기골프가 도박인지 아닌지’ 합리적으로 따져볼 공론의 장은 마련해주지 못했다.

〈경향신문〉은 21일치 9면 〈억대 내기골프 “도박죄 안된다”〉라는 기사를 △반발하는 네티즌 반응 △이번 판결에 비판적인 대법원과 중앙지법 판사 멘트 △항소하겠다는 남부지검 쪽 방침 △대법원 판례 등으로 채웠다. 이날치 사설 제목도 〈억대 내기골프가 도박이 아니라니〉였다. 22일치 8면 〈‘내기골프 무죄’ 네티즌 90% 반대〉라는 기사의 마지막 부분에 “새로운 관점에서 생각해 볼 여지를 던져준 판결”이었다는 한 변호사의 말을 짧게 붙였을 뿐이다. 23일치 ‘기자메모’에서 “이번 판결은 형법이 내기골프를 여론에 부합하는 유죄로 걸러내지 못한다는 점을 보여준 것”이라고 지적했지만 뒷북이었다.

이 판사는 “내기골프는 우연성이 아닌 기량에 따라 승패가 갈리므로 도박이 아니다”라고 판시했다. 이에 대해 〈동아일보〉 22일치 ‘횡설수설’ 등은 경기 참가자의 몸상태, 당일 날씨 등 우연적 요소가 골프의 승부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언론들은 갖가지 상황을 가정하며 이 판사의 판결이 모순이라고 했다. 〈조선일보〉는 한술 더 떠 22일치 사설 〈억대 내기 골프가 도박이 아니라는 법 논리〉 끝부분에서 “하급심의 한 판사가 이렇게 연속적으로 ‘판례 파괴적 판결’을 내리고 있는 배경이 궁금하다”고 생뚱맞은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 판사는 23일 〈한겨레〉와 전화통화에서 “판사는 법리에 따라 판결을 내리는 사람”이라고 했다. “내기골프가 무조건 도박이라고만 했지 명확한 법리해석이 이뤄진 적은 없습니다. 또 국가가 사적 영역에 불필요하게 개입하는 것에 대해서도 문제제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많은 언론들은 이 판사를 비판하며 2003년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내세웠다. 그러나 판례를 찾아보니, 대법원도 ‘내기골프가 왜 도박인지’에 대해 본질적으로 파고든 것이 아니라 ‘정황상 일시적인 오락의 정도를 넘어섰기 때문에 도박’이라는 모호한 결론을 내렸다. 조선일보도 21일치 12면 기사에서 판례 얘기를 하며 “대법원은 내기골프가 도박죄로 처벌되는지를 별도 쟁점으로 다루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중앙일보와 세계일보 등은 이 판사를 인터뷰해 그의 속내를 들었다. “법률은 시대 흐름에 따라 상식이 바뀌면 언제든 재해석될 수 있어야 한다”(중앙) “개인에 대한 비난보다 판결에 대한 논리를 따지는 건강한 논의가 이뤄지길 바란다.”(세계)


언론이 ‘내기골프가 도박인지’에 대한 공론의 장을 마련하지 못했다는 비판은 적어도 한국일보만큼은 예외다. 한국은 22일치 〈내기골프 무죄 판결이 부른 논란〉이라는 사설에서 “이 판결이 법리적·사회적으로 옳고 그른가를 성급하게 결론짓기보다는 법과 사회통념상 당연하게 여기면서도 뭔가 미심쩍던 사안을 공론의 장에 이끌어낸 것으로 평가한다”며 “사회정책적 필요에서 가혹하게 규제한 도박 행위를 현실과 법리에 걸맞게 규율할 때가 됐다”고 강조했다. 강병태 논설위원은 23일치 〈이정렬 판사의 정성〉이라는 제목의 ‘지평선’ 칼럼에서 “여론과 언론의 비판 논리가 판결 취지나 법원칙 등과 동떨어진 점이 많다”고 지적했다. “(이정렬 판사는) 그저 튀는 판사가 아니라 개인의 권리 보호라는 법관의 가장 중요한 본분을 다하기 위해 남달리 정성을 기울인 것으로 볼 만하다. (국민들이) 자신들을 위해 정성을 쏟은 판사에게 욕설을 퍼붓는 아이러니마저 느낀다.”

김영인 기자 sophi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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