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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2.21 19:34 수정 : 2019.02.21 19:53

지난 14일 오전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회의실에서 열린편집위원회 회의가 열리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한겨레 열린편집위원회]
‘젠더’ 관련 보도 평가

지난 14일 오전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회의실에서 열린편집위원회 회의가 열리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오피니언난의 필자가 대부분 남성이다.” “젠더 이슈 관련해 유포되는 허위사실에 대해 ‘팩트체크’를 했으면 좋겠다.” “소수자 문제에 집중해달라.”

지난 14일 한겨레신문사 8층 회의실에서 열린 <한겨레> 열린편집위원회(위원장 신광영)의 다섯번째 정례회의에선 한겨레의 ‘젠더’ 관련 보도에 대해 가감없는 지적이 나왔다. 사회적으로 성평등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있지만, 동시에 성차별을 둘러싼 여성과 남성의 인식 격차가 벌어지는 상황에서 ‘젠더’는 자칫하면 첨예한 대립각을 세우는 요소로만 비칠 수 있는 주제다. 특히 일부 언론은 이러한 갈등을 적극적으로 부추기는 역할을 자임하고 있기도 하다.

한겨레는 최근 ‘스포츠 미투’ 국면에서 유도계 미투 기사를 발굴하고 ‘미투 1년’ 기획 기사 등을 보도했다. 열린편집위원들은 한겨레가 “갈등을 촉발하려는 보도는 하지 않았다”고 평가하면서도 젠더 관련 보도의 대다수가 칼럼이나 문화 분야 기사에 쏠려 있고, 필진 구성의 다양성이 떨어지는 점 등을 지적했다.

이번 열린편집위원회에는 신광영 위원장(중앙대 교수·사회학), 김제선 위원(희망제작소 소장), 안지애 위원(<한겨레:온> 편집위원), 정민영 위원(변호사·법무법인 덕수), 최서윤 위원(작가), 최선목 위원(한화그룹 커뮤니케이션위원회 사장), 김종구 편집인, 신윤동욱 사회정책팀장이 참석했다.

신광영 위원장 이번 회의에선 ‘젠더’ 관련 <한겨레> 보도 방향 등을 토론해 봤으면 한다. 이 이슈가 상당히 크고 중요한데다 앞으로도 (관련 갈등이) 계속 진행될 주제다. 여러 의견을 말씀해주시면 좋겠다.

최서윤 젠더 이슈가 소비되는 방식이 답답하다. 지금 일어나는 갈등에 대한 논의가 생산적으로 진행되기 위해선 사회 구성원들이 어느 정도는 학습이 필요하다. 하지만 학습은 안 되고 각자의 신념만 강화된 상황에서 서로 다르게 ‘진실’이라고 믿는 것들을 갖고 싸우는 현실이다. 그런 과정에서 한겨레는 언론으로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다른 분들의 의견을 듣고 싶다. 타사의 일부 기사들은 사회적 갈등을 굉장히 부추기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겨레는 사회적으로 갈등을 촉발하려는 보도는 하지 않았지만, 갈등 완화에 적극적으로 기여하고 있는가에 대해선 아쉬움이 있다. 물론 언론이 본질적으로 갈등 완화를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구심도 있지만 말이다.

나흘치 신문 봤더니 여성필자 2명
여성 이슈 다룰 때만 나와
‘유도선수 미투’ 신중한 보도
디지털판 사진 안쓴 점 돋보여

안지애 재밌게 읽은 기사는 초등학교 교실에서 ‘역지사지’ 상상력을 발휘해 젠더 교육을 해보자는 내용을 담은 칼럼이었다. 여성이 생각하는 남성, 반대로 남성도 부러운 여성의 장점에 대해 말해보고 같이 공유할 수 있으면 좋겠단 생각을 해봤다. 한가지 말하고 싶은 부분은 한겨레 오피니언난의 필자들 대부분이 남성이란 점이다. 2월8일부터 봤는데, 그날 오피니언면의 필자 8명이 모두 남성이었다. 9일엔 여성이 한명이었다. 11일치에도 8명 모두 남성, 12일치도 5명이 남성이었다. 여성 필자는 많아야 2명이고, 대부분 남성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관련 분야 전문가들이 과연 남성밖에 없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여성이 오피니언난에 나오는 건, 여성 관련 이슈를 다룰 때만이다.

최서윤 토요판 ‘이런 홀로’ 시리즈의 재기발랄한 글도 재밌게 보고 있다. (부모와 자녀로 구성된) 소위 ‘정상가족’이 아닌 다양한 가족에 대한 내용을 꾸준히 보여주는 점도 좋다. 가부장적인 사회 구조 안에서 ‘정상가족’만이 용인받고 있고, 이 구조를 유지하기 위해 여성들은 지금껏 특정한 역할을 수행할 것을 강요, 억압받았다고 생각한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젠더’ 갈등은 더 이상 그 주어진 자리를 거부하는 여성과, 그 자리에 계속 있으라고 요구하는 쪽이 대립하는 측면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갈등은 사회적으로도 계속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본다.

김제선 한겨레 보도에서 좋았던 점은 유도선수 신아무개씨의 ‘미투’ 보도에서 (온라인에선) 사진을 사용하지 않은 점이다. 한겨레 보도를 받은 다른 언론에선 매우 자극적으로 보도를 했다. 한겨레가 나름 좋은 자세를 갖고 보도한 것 같다. ‘미투’는 세계적인 현상이고 우리 사회에서도 큰 문제인데 1주년을 맞아 기획 특집을 한 건 적절하고 좋은 노력이었다고 생각한다. 조금 더 기대한다면, 20대 남성의 견해차를 다룰 때 세대론적인 배경도 있다는 점을 함께 다뤘으면 좋겠다. 20대에선 젠더 관련해 균열이 드러나는 게 아주 정상적인 현상이란 생각이 든다.

젠더 관련 이슈의 ‘팩트체크’에 더 노력해줬으면 하는 부분도 있다. “여성고용할당제 때문에 남성이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고 하면 그럴듯하게 들리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최근 통과된 ‘여성폭력방지기본법’도 남성을 처벌하자는 게 아니라 피해 구제와 방지를 위한 기본법으로 처벌조항이 없다. 그럼에도 “여성이 남성을 괴롭히면 처벌 안 받는데 왜 이런 법이 있냐”는 식으로 젊은 남성들 사이에서 허위 사실이 많이 유포된다. 이와 관련해 팩트체크를 해줬으면 좋겠다. 또 ‘미투’ 관련 법안이 처리되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도 후속보도를 꾸준히 해주길 바란다.

한겨레가 조금 더 노력한다면, 언어에 관한 캠페인도 기획해주면 좋겠다. 우리 의식 안에 위계질서가 계속되는 건 상당 부분 언어가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저출산’과 ‘저출생’처럼, 별 차이 아닌 것 같아도 단어 하나가 큰 의미를 가진다. 차별적인 언어에 대한 시민들의 제안이나 제보를 받아서 어떤 대체 용어가 있을까 보도를 해줬으면 좋겠다.

정민영 ‘미투’ 흐름이 1년 이상 지속되고 있다. ‘미투’가 얼마나 세상을 바꿨는가뿐만 아니라 과연 남는 문제는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짚어줬으면 한다. 예를 들어 사법부가 취해온 입장이나 방식이 성폭력 재판의 결론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어떤 문제가 있는지 사례를 통해서 보여준다든가 하는 식으로 말이다. 또 ‘미투’ 관련 보도에 있어서 피해 고발자가 자신이 겪은 피해를 공론화하며 문제제기하는 것과 언론이 보도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언론 입장에선 ‘매뉴얼’까지는 아니더라도 기본적인 원칙이 언론사 안에서도 정리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반론권을 어디까지 보장할 것인가 등에 대해서도 구성원들 사이에서 합의된 원칙이 있으면 좋겠다.

최선목 한겨레가 우리나라 언론 가운데는 젠더 이슈를 적극적으로 주도하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년간 주요 매체 보도 중 ‘젠더’란 단어가 포함된 기사 건수를 뽑아보니 한겨레가 252건으로 다른 보수매체의 2~3배였다. 그중 오피니언이 19% 정도(48건)를 차지한다. 기획특집이 44건, 책 소개가 43건, 문화 관련 기사가 28건이다. 지난해 11월에 여성전담기자를 지정하고 젠더 이슈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점도 한겨레의 특징이다.

‘미투1년 기획’ 적절했지만
20대 남성 세대론적 분석 빠져
여성할당제 등 ‘남성 역차별’로 오해
허위유포 많아 사실 꼼꼼히 밝혀야

최서윤 궁금한 점도 있다. 사실 개인이 성찰하는 걸 기대하고 생산하는 뉴스들도 있을 것 같은데 소위 인터넷에서 싸움의 형태로 뉴스가 소비되거나 오독되는 걸 어떻게 보는지, 혹시 내부에선 어떤 고민을 하는지 궁금하다.

신윤동욱 팀장 기사 주제를 고민할 때는 젠더나 섹슈얼리티 등에 관해 새로운 이야기를 담고 있거나 중요한 문제제기를 할 경우 감춰져 있는 부분에 대한 이슈를 과감하게 선택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야기가 제대로 전달되기 위해선 기사의 완결성과 디테일의 문제에 신경을 쓰는 것이 저희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본다. 젠더 갈등이 혐오의 방식으로 확산하는데 그 갈등 자체를 제어할 순 없고, 기사는 사회의 여러 목소리 중 하나로 존재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불평등한 상황을 고려할 때 우리 기사가 어떤 기능을 할 것인가란 고민을 하는데 ‘기울어진 운동장’에선 아직까지 제대로 전해지지 않은 목소리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는 의견이다.

신광영 위원장 한겨레가 보도를 통해 모든 것을 정리할 수는 없지만, 나름대로 사회 변화의 방향성을 제시할 수는 있을 것 같다. 갈등의 요소가 많은 기사의 경우 어떻게 균형과 방향을 잡는가가 편집국의 과제란 생각이 든다.

김제선 지난 대선의 특징 중 하나가 반려동물 공약이 있었단 거다. 현재 반려동물과 관련해 가장 기사를 많이 쓰는 매체가 한겨레의 <애니멀피플>이다. 젠더 감수성을 갖고 있는 독자층이 상당 부분 <애니멀피플> 독자층과도 중첩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한겨레 입장에서도 그 독자층에 대해 집중적인 고민을 할 필요가 있다. 예민한 감수성을 가지고 있는 소수자 그룹과 소통하고자 하는 것이 중요한데, 젠더에 국한하지 말고 소수자 문제에 특화한 방향의 버티컬 매체가 있으면 좋지 않을까.

안지애 성인지 감수성이란 게 성별 간의 불균형에 대해 이해와 지식을 갖추고, 그런 점을 일상생활에서 바로 짚어낼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건데, 이건 인권감수성을 가지고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 아닐까라고도 생각한다. 관련 주제를 다룰 때 교육 문제로 확장한다거나 서로 다른 입장이 소통하는 코너를 만들면 어떨까도 생각해봤다.

신광영 위원장 젠더 이슈에는 복합적인 요소들이 관여돼 있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여성-남성의 권력관계뿐만 아니라, 개인의 인권 측면에서 바라보면 그 개인이 결국 세대·계급·지역 등 여러 사회적 관계 안에 있기 때문이다. 결국 여성과 남성 사이의 갑을 관계에 대한 이슈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고, 그 내용은 젠더뿐만 아니라 다양한 영역으로 확장될 수도 있다고 본다.

최선목 한국의 기업 여성 임원 비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라고 한다. 임원을 하려면 최소 20년 이상 근무해야 하는데 지금의 불평등한 구조가 고착화된 건 아무래도 지금 임원들이 1998년 외환위기 전후에 입사했고, 당시는 여성인력 채용이 낮은 상황이어서 그런 것 같다. 한겨레도 이런 임원 비율에 대해 비판을 하지만 정작 이곳도 역대 사장은 다 남성인 구성 같다.

김제선 직장 내 성차별, 임금격차가 여전히 존재하는 현실이다. 공공분야에서 여성을 채용할 때 비정규직으로 채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청소처럼 임금 등 고용 조건이 열악한 분야엔 여성이 많이 고용된다. 임금 성차별 관련 통계조사 결과나 방법 등이 왜곡되지 않게 보도하는 것이 필요하다.

안지애 지난 설에 난 보도에도 올해 남산예술센터의 프로그램 중 절반을 여성 연출자에게 맡겼다는 기사가 나왔는데, 이전엔 남녀 비율이 어땠는지, 계속 남성 연출 위주로 이뤄졌었는지 등을 심층적으로 다루면 어땠을까 생각했다.

김종구 편집인 오피니언면 필진의 성비에 대해서 말씀해주셨다. 현재 논설위원실에 여성 논설위원이 1명인데 여성 비율이 적다고 생각한다. 최근에는 편집국 안에 여성 기자가 늘어나고 있는 편이다. 외부 필자 같은 경우에도 여성 필자를 발굴해 되도록 성비를 맞추려고 노력은 했다고 생각했는데, 반성을 하게 된다. 필진 개편 때 더욱 신경을 쓰도록 하겠다.

정리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녹취 시민편집인실 김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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