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9.07 10:05
수정 : 2019.09.07 10:05
[토요판] 이슈
‘서울신문’ 3대 주주가 된 호반건설
호반, ‘서울신문’ 주식 19.4% 매입
정부-우리사주 이어 3대 주주 등극
‘300억 투입해 대주주 계획’ 밝혀
언론사 인수합병 건설사 최근 늘어
사주의 이익 증식 수단 활용 목적
“경영권 노린 적대적 인수합병 시도”
‘서울신문’ 임직원들 강하게 반대
1대 주주 기재부 “신문사와 협의” 입장
‘서울신문’ 독립성·공공성 기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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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반건설의 <서울신문> 지분 매입과 관련해 우리사주조합, 언론노조 지부, 기자협회 지부는 지난 7월3일 ‘서울신문 만민공동회’를 열었다. 2대 주주인 <서울신문> 사원들은 이날 1대 주주 지위 회복에 나서기로 결의했다. 언론노조 서울신문지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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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반건설이 포스코가 보유하던 <서울신문> 지분 전량(19.4%)를 인수함으로써 기획재정부(30.49%), 우리사주조합(29.01%)에 이어 3대 주주로 등극했다. <서울신문> 쪽은 호반건설이 경영권을 노린 적대적 인수합병(M&A) 절차에 돌입했다고 보지만, 호반건설은 중장기적 사업다각화 차원이라는 입장이다. 왜 <서울신문> 구성원들은 매출 5조원이 넘는 호반건설 쪽의 구애를 뿌리칠까?
포스코 홍보실장이 <서울신문> 편집국장을 만나러 온 건 6월25일 오전이었다. 기업체 홍보담당자들의 의례적인 방문이려니 했는데, 포스코 홍보실장의 입에서 나온 얘기는 청천벽력이었다. 포스코가 보유하고 있던 <서울신문> 지분 전량(19.4%)이 호반건설에 팔렸다는 것이다. 3대 주주가 바뀌었다는 소식이 전해진 이후 <서울신문>은 벌집을 쑤셔 놓은 것 같다.
그 전까지 <서울신문>의 지분구조는 기획재정부가 1대 주주로 30.49%, 사원들이 만든 우리사주조합 29.01%, 포스코 19.4%, 한국방송공사(KBS) 8.08% 등이었다. 호반건설의 갑작스러운 <서울신문> 지분 매입은 무엇을 내포하고 있을까. “단순한 3대 주주 교체가 아닌 거죠. 호반건설이 3대 주주에 만족하려고 200억원이 넘는 거액을 들여 <서울신문> 주식을 샀을까요? 기재부나 우리사주조합 지분을 매입해 경영권 확보에 나서겠죠. 지분을 사고파는 과정에서 <서울신문> 경영진이나 1대 주주인 기재부에 아무런 사전 협의도 하지 않았습니다. 호반건설이 언론사의 경영권을 노린 적대적 인수합병(M&A) 절차에 돌입했다고 보는 이유입니다.” 호반건설의 3대 주주 등극 배경을 묻자, <서울신문> 우리사주조합 관계자는 이렇게 설명했다.
호반건설 배후에 정부 실세설
호반건설의 기습적인 인수합병 시도는 <서울신문> 전 구성원들이 결속하는 계기가 됐다. 지난 7월3일 사원에서 경영진까지 180여명이 참석한 ‘서울신문 만민공동회’는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2시간 넘게 진행됐다. 사원들은 이날 호반건설의 <서울신문> 주식 매입을 언론 사유화 시도로 규정짓고 “우리의 일터이자 공영 언론인 <서울신문>의 독립성과 공공성을 확보하기 위해 구체적이고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동시에 이를 훼손하는 어떤 시도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며 전사적 차원에서 대응하기로 결의했다.
<서울신문>은 1904년 영국인 베델과 양기탁이 함께 창간하고 독립운동가 박은식과 신채호 등이 활동한 <대한매일신보>의 후신으로 115년의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2002년 1월 우리사주조합이 사원들의 급여와 퇴직금, 상여금 등을 모아 지분 38.97%로 최대 주주가 되면서 정부의 소유에서 벗어났다. 그전까지 정부가 60% 이상의 지분을 가진 ‘공기업적 정부출자기관’이었다. 정부에서 임명한 경영진이 내려오는 등 정부의 영향력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했다. <서울신문> 구성원들 사이에서 과거 오욕의 역사를 씻어내고 공정한 신문, 제대로 된 신문을 만들기 위한 요구가 거셌다. 당시 김대중 정부의 언론개혁 바람과 맞물려 2002년 1월 <서울신문>의 소유 구조를 개편해 독립언론의 첫발을 내디뎠다. 우리사주조합은 1대 주주에 올랐고, 재정경제부(현 기재부)와 포항제철(현 포스코), 한국방송공사는 각각 2·3·4대 주주가 됐다. 이후 우리사주조합원 가운데 퇴직자가 생겨나면서 지분이 계속 줄어 2014년에 1대 주주를 기재부에 넘겨줬다.
17년 넘게 이어져온 <서울신문>의 소유 구조가 호반건설의 등장으로 지각 변동을 예고하고 있다. 호반건설 쪽은 <서울신문>의 주식 인수 철회 요구에도 불구하고 300억원을 더 투입해 우리사주조합 지분을 추가로 매입하겠다는 의사를 언론 인터뷰에서 밝혔다. 기재부의 <서울신문> 지분을 사들이는 방법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기재부는 <서울신문> 지분을 처리할 때 <서울신문>과 협의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호반건설은 <서울신문> 인수와 관련해 중장기적인 사업다각화 차원이라는 입장이다. 호반 쪽은 김상열 회장이 어려운 시절에 <서울신문>을 배달한 인연까지 거론하며 선의의 투자라고 주장하지만 언론계 안팎에선 액면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서울신문>의 지난 3년(2016~2018년)간 평균 매출은 802억원, 영업이익은 46억원 정도다. 매출 5조원이 넘는 대기업집단으로 성장한 호반건설이 이 정도 규모의 언론사를 인수하면서 사업다각화라는 말을 붙이기는 어색하다.
1989년 광주에서 시작한 호반건설은 ‘호반베르디움’이라는 브랜드를 보유한 아파트 전문 중견 건설회사다. 최근 10년(2008~2018년)간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공급하는 신도시·공공택지의 공동주택용지 473개 필지 중 44개를 낙찰받아 직접 분양과 시공을 하는 방식으로 몸집을 키웠다. 시공능력 순위는 2008년 77위였으나 올해 10위로 뛰어올랐다. 이와 관련해 <서울신문>은 지난 8월2일과 7일치 보도에서 자회사 수십곳을 동원한 ‘벌떼 입찰’로 공공택지를 낙찰받았으며 지난 10여년간 신도시·공공택지지구에서 2조원 넘는 분양수익을 챙겼다고 보도했다.
호반건설은 주력인 주택 이외에 종합레저, 도시정비, 해외건설 등 사업구조 다각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런 배경에서 호반건설 쪽의 <서울신문> 인수합병 시도가 이뤄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사주 리스크 최소화, 그리고 수도권 등 전국으로 퍼진 사업 영역을 관리하고 신사업을 찾기 위해 중앙언론사가 필요했을 것이란 얘기다. 실제 호반건설은 지난해에 전국을 아우르는 온라인 경제매체를 인수하거나 새로 창간하려다 접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다가 포스코 쪽과 닿아 <서울신문>의 3대 주주가 됐는데, 이 과정에서 정부 실세가 개입했다는 풍문도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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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반건설은 김상열 회장이 어려운 시절에 <서울신문>을 배달한 인연까지 거론하며 <서울신문> 지분 인수가 선의의 투자라고 주장하지만 언론계 안팎에선 액면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위치한 호반건설 본사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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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안 되는 언론사 속속 인수하는 건설사들
언론사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자본이 필요하다. 콘텐츠 경쟁력의 주축인 인력도 확충해야 하고, 달라지는 디지털 기술에 대응하기 위해선 정보기술(IT) 인프라와 디지털 플랫폼에 대한 투자가 절실한 게 요즘 언론사의 현실이다. 그런데 왜 <서울신문> 구성원들은 매출 5조원이 넘는 호반 쪽의 구애를 뿌리칠까.
지난 7월19일치 <서울신문> 사설 ‘서울신문 115주년, 독립언론의 길 꿋꿋이 걷겠다’에서 그 일면을 엿볼 수 있다. “자본력을 내세운 인수합병은 해당 언론이 공공재로서 저널리즘의 가치를 제대로 구현할지 의문스럽게 한다. 혹여나 개발사업에 뛰어드는 사기업의 이익을 옹호하는 등 방패막이로 악용되는 것이 아닐까 우려한다.” 언론의 공적 책무보다는 더 큰 돈을 벌기 위해, 회장 일가의 사익을 도모하기 위해 호반건설 쪽이 <서울신문> 인수를 추진한다고 의심하는 것이다.
사실 언론사 지배구조를 보면 건설사 소유가 도드라진다. 지역 주요 신문사만 해도 <영남일보>, <남도일보>, <광주매일>, <인천일보>, <한라일보>, <중도일보>, <전남매일>의 대주주가 건설사다. 지역방송의 경우
, <경기방송>, <광주방송>, <청주방송> 등이 건설사 소유다. 최근 건설사가 언론사를 인수합병하는 일도 잦다. 부동산개발회사 자광은 작년 10월 <전북일보> 주식 45%를 인수했고, 올해 5월 중흥건설은 <헤럴드경제>와 <코리아헤럴드>를 발행하는 ㈜헤럴드의 지분 47.78%를 684억원에 사들였다.
언론사 경영으로 돈을 버는 시대는 끝났다고 할 수 있는데, 건설자본이 언론사를 소유하고자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언론 본연의 목적도 없지 않겠지만 언론사를 기반으로 사업을 키워나가고, 사주 개인의 이익을 증식하는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언론사주 신분을 십분 이용해 사회적 명망을 높이고 정보와 권력의 이너 서클에 편입하는 것은 덤으로 얹어진다.
지난달 9일 호반건설은 <서울신문> 일부 경영진과 우리사주조합 대표 등 7명이 호반건설이 인수한 <서울신문> 지분을 무상으로 넘기지 않으면 기사를 계속 게재하겠다고 협박했다며, 이들을 특수공갈과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했다. <서울신문>은 지면에 200자 원고지 11장이 넘는 장문의 입장문을 싣고 호반건설이 허무맹랑한 주장을 펴고 있다고 반박했다. 법적 분쟁으로 이어지는 등 전면전으로 치닫고 있는 양상이다.
호반건설이 무슨 생각으로 <서울신문>의 대주주가 되려고 하는지 명확히 알기는 어렵다. <서울신문> 지분을 매입한 과정도 석연치 않고, 대주주가 되겠다면서 <서울신문>의 콘텐츠 경쟁력을 높일 투자 로드맵도 제시하지 않고 있다. 돈으로 밀어붙이면 원하는 걸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 걸까. 그렇다면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 같다. 자본에도 예의가 있는 법이니까 말이다.
김성후 기자협회보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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