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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2.06 18:52 수정 : 2019.02.06 19:31

[짬] ‘두꺼비 마을신문’ 조현국 편집장

조현국 <두꺼비 마을신문> 편집장. 오윤주 기자

“마을은 크게 둘로 나뉘죠. 신문이 있는 마을과 없는 마을. 신문 있는 마을은 십중팔구 좋은 마을이죠. 우리처럼….”

지난달 25일 충북 청주 산남동 <두꺼비 마을신문> 편집국에서 만난 조현국(51) 편집장은 신문과 마을 자랑을 한 보따리 풀어놨다. 청주지방검찰청 바로 앞 건물 3층에 자리 잡은 <두꺼비 마을신문> 편집국은 아담하다. 2008년 12월 10일치 창간 준비호부터 2009년 1월 15일 창간호를 거쳐 지난 연말에 나온 178호까지 지난 신문이 책장에 빼곡히 꽂혀 있다.

공교롭게 창간 준비호와 창간 10돌을 맞아 지난 연말에 나온 신문 1면 사진이 눈 내린 두꺼비 생태공원이다. 창간 이후 한동안 격주간으로 내다 요즘은 월간 단위로 발행한단다. 최신호인 179호는 지난달 31일 나왔다.

“사람도, 사회도 변했지만 신문은 크게 변한 게 없죠. 다만 주민들이 느끼는 신문에 대한 생각은 조금 변했을걸요.”

신문은 마을과 함께 자랐다. 신문이 나오는 산남동은 2003년 3월부터 한국주택공사 등이 벌인 택지 개발로 탄생한 아파트 마을이다. 구룡산이 둘러싼 논밭, 벌판을 갈아엎고 아파트 8개 단지를 조성했다. 검찰청·법원·교육지원청 등 관청도 들어섰다. 2007년 초께 입주를 시작한 새 도시엔 상가·건물 등이 잇따라 들어섰고, 새 아파트엔 새 주민이 몰렸다. 새로운 마을엔 사람이 넘쳐났지만 서먹서먹했다.

“그때 아파트 협의회장을 맡았는데 다들 데면데면했죠. 새 아파트여서 그런지 젊은 층이 많았고 얘기가 잘 통했어요. 주민 회의를 하는데 마을신문 얘기가 나왔고, 바로 준비를 시작했죠.”

조 편집장이 발행인을 맡고, 청주 분평동에서 마을신문 <우리 신문>을 만들었던 이광희(55)씨가 편집인으로 참여했다. 주부 기자 3명을 뽑고, 주민 기고 등으로 신문을 만들었다. 12면 타블로이드판 신문 5000부를 발행해 4925세대 모든 아파트 우편함과 주변 상가에 배달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여기저기 신문 이야기가 넘쳐났고, 행정기관은 조 편집장 등을 주민자치 위원으로 추대하기도 했다. 광주 우산동, 충주 연수동, 경기 수원 행궁동 등에서 마을신문 견학이 줄을 이었다.

<두꺼비 마을신문> 창간준비호.

갈수록 위축되는 종이신문과 달리 <두꺼비 마을신문>은 성장을 거듭한다. 지난해 24면으로 증면했으며, 발행 부수도 6500~7000부로 늘렸다. 산남동뿐 아니라 이웃 분평동, 남이면으로 지역을 확대했고, 혜원장애인복지관·서원노인복지관 등 독자도 늘었다. 성공 비결을 묻자 조 편집장은 ‘가까움’과 ‘재미’를 들었다.

“우리 마을은 ‘조·중·동’ 다 합해도 우리 신문과 게임이 안 될걸요. 먼 곳이 아닌 자신, 이웃, 가족 등 가까운 이야기가 바로 나오니까 모두 좋아해요. 신문에 딸·아들이 나왔다며 몇 부 더 구할 수 있냐는 문의가 자주 와요. 딱딱한 여느 신문 기사의 형식을 굳이 따르지 않고 수다 떨듯 재미있게 풀어나가니까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신문을 대합니다.”

청주 새 아파트단지 산남마을
2009년 창간해 179호까지 내
주민 대변 기사로 영향력 쑥쑥
5년 전 출범 협동조합이 발행 주도
“신문이 마을 살찌우는 매개 되길”

충북대서 중문학 가르치는 학자

신문엔 마을 이야기가 중심이지만 늘 말랑말랑한 기사만 실리는 게 아니다. 2011년 교육청이 마을 안 샛별초에 인조잔디를 깔려 할 때 신문이 주도해 막았다. 개발에 맞서 마을 구룡산을 지키고, 생태 마을 터를 다진 것도 신문이었다. 주민과 신문이 함께 지킨 원흥이 방죽과 생태공원은 마을의 상징이 됐다. 지금은 도시 생태 연구·교육을 위해 전국에서 탐방객이 몰린다.

“아파트 단지 안에 이런 방죽과 생태공원을 온전하게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주민 참여였죠. 그 참여를 신문이 이끌어 냈고요.”

신문은 지역 일꾼의 등용문이기도 하다. 창간호부터 ‘교육 이야기’를 연재했던 김병우 충북교육발전연구소 대표는 충북교육감, 이광희 초대 편집인은 충북도의원, 신문발행을 주도한 박완희 이사는 청주시의원이 됐다.

“이제 마을이 곧 신문이요, 신문이 곧 마을이라고 여기는 이가 많아요. 신문을 통해 마을을 소개하고, 또 신문을 통해 마을 공동체가 형성되고 있어요.”

그의 말처럼 산남동엔 유독 공동체가 많다. 농산물을 유통하는 두꺼비 살림, 구룡산을 지키는 클린 마운틴, 두꺼비 생태공원을 지키는 두꺼비 친구들…. 모두 신문과 유기적으로 교류한다. 2014년 5월엔 만든 두꺼비 협동조합은 신문 발행을 주도한다. 다달이 400만~500만원 정도의 신문 제작 비용은 조합의 지원과 220여명의 자발적 후원자, 상가 광고 등으로 메운다.

조 편집장은 발행인, 편집장에 이어 다시 편집장으로 돌아왔다. 2017년부터 3년째 편집장을 맡고 있다.

조현국 편집장이 <두꺼비 마을신문>을 들어보이고 있다. 오윤주 기자.

왜 신문을 떠나지 못할까? 사실 그는 충북대에서 중문학·한문 등을 가르치는 학자다. 지난해엔 중국 공산당 총서기를 지낸 혁명가 취추바이의 글을 번역해 <부질없는 이야기-다여적화>(썰물과밀물)를 펴내기도 했다. 그는 연세대에서 취추바이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취추바이 전문가다.

“공부하고 가르치는 일도 재밌고 중요하지만 신문 만드는 것은 또 다른 의미가 있어요. 신문으로 삭막한 아파트 숲이 마을이 되고, 사람 사는 맛이 나는 공동체를 일궈가는 게 보람 있어요.”

신문은 또 다른 10년을 위해 변화를 준비하고 있다. 지난달 26일 창간 10돌 기념식에서 ‘소통의 힘으로 희망의 숲을’이라는 비전을 내놨다.

“지난 10년 신문이 남녀노소 주민들의 마음을 움직여 소통하게 했다면, 다가올 10년엔 신문이 마을을 풍요롭게 살찌우는 매개가 됐으면 좋겠어요.”

오윤주 기자 st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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