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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3.17 21:11 수정 : 2019.03.17 21:26

[짬] 한국아나키스트독립운동가 기념사업회 이문창 회장

1927년생으로 10대 때부터 아나키즘에 투신한 이문창 회장은 92살 고령에도 신념을 지키며 대중 강연을 하고 있다. 사진 조동범 시인
일제 시대 아나키스트들은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정부 자체를 부정하는 무정부주의자들이라 별 의미를 두지 않았을 거라고 짐작하는 이들이 많을 듯하다. 한국 아나키즘 역사의 산증인인 이문창(92) 한국아나키스트독립운동가기념사업회장의 얘기는 지레짐작과는 거리가 있다.

3·1운동은 민중 스스로 주권을 되찾기 위한 운동이었으므로 아나키즘의 출발점이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아나키스트들은 ‘탈환’을 강조한다. 자유·평등·상호부조의 정신으로 직접행동을 통해 빼앗긴 것을 되찾는 것, 이것이 아나키즘의 기본 강령이다. 이 지점에서 3·1운동의 성격과 아나키즘 사상이 만난다. 그들이 임시정부를 절대 지지한 것도 3·1운동 이후 조선혁명운동의 옳은 길을 계승하고 있다고 봤기 때문이었다.

그는 3·1운동과 임시정부 100주년을 맞아 한겨레교육에서 4월 여는 특강 ‘아나키스트’에서 직접 강의할 예정이다. 한국 최초 아나키스트 우당 이회영의 제자인 고 이정규 선생의 자택이었던 서울 종로 국민문화연구소에서 지난 7일 이 회장을 만났다.

‘박열’ 열사 생전 기억하는 ‘산증인’
“무정부주의가 아니라 탈권위주의”
“완전한 독립이뤄야 남북통일 가능”

새달 한겨레교육 ‘아나키스트’ 특강
청년층에게 삶의 방향성 제시 ‘희망’
92살 “사는 날까지 사회 기여하고파”

“아나키즘 사상의 기반은 ‘인간’이예요. 개인으로서의 인간과 집단 안에서의 인간, 두 정체성의 조화를 추구합니다.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으로 존중하지만, 그 자유는 상대방을 전제하지 않고서는 존재하지 않아요. 상호존중 아래 개인의 자유를 추구하죠. 빼앗긴 민중의 자유와 권리를 되찾는 데 아나키스트들이 앞장선 이유입니다.”

이번 특강은 아나키즘의 정의와 역사, 현재적 의미, 문학과 예술에 반영된 아나키즘 등의 주제로 모두 5차례 진행한다. 이 가운데 그는 첫 번째 ‘아나키즘과 나의 삶’(4월2일)와 세 번째 ‘한국 아나키즘의 전개 과정’(4월16일)를 맡는다.

“살아있는 한 사회에 무언가 기여를 하고 싶다는 게 내 소신입니다. 선배 아나키스트들이 실천해오던 것과 내가 직접 겪은 일들을 후대에 전달해서 그들이 앞으로 삶의 방향성을 정하는 데 도움을 주고 싶어요. 그래서 욕심을 부렸죠(웃음).”

그는 청년층이 강의를 많이 들어주었으면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100년 후의 한국 역사가 올바른 방향으로 갔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역사 발전의 방향을 좀 더 분명하게 얘기해주고 싶어요.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고 해방된 지 70년이 넘었는데 당시 선대가 생각하던 방향에 우리가 얼마나 근접하게 가고 있는가. 이런 문제를 같이 토론하고 반성하면서 그 토대위에 미래를 설계해 나가는 게 중요합니다.”

아나키즘이 강조하는 ‘탈환’은 지금도 유효하다. 일제로부터 독립했지만 남북은 분단됐다. 해방을 맞이했지만, 반쪽짜리였다. 그는 통일 과정과 독립운동 과정은 같은 거라고 역설한다. “우리나라는 아직 완전한 독립을 했다고 볼 수 없어요. 남북이 분단돼 있는 이상 지금도 독립을 쟁취하는 과정에 있습니다. 완전한 독립을 쟁취할 때 비로소 통일에 가까워집니다.”

아나키스트들은 늘 민중과 함께했지만 보통 사람들에게 아나키즘은 생소하다. 아나키스트들이 좀처럼 자신을 드러내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아나키스트였던 박열 선생은 2017년 영화 <박열>이 나온 뒤에야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런 만큼 아나키스트에 대한 오해도 깊다. 아나키스트는 ‘무정부주의자’로 알려져 있지만 실은 ‘탈권위주의자’에 가깝다. 대표적인 아나키스트 유림은 “아나키스트는 타율 정부를 배격하지, 자율 정부를 배격하는 자가 아니다”라며 아나키스트가 무조건 정부와 정치를 부인하는 건 아니라고 강조했다.

“아나키스트들은 비교적 나타나지 않는 사람들이예요. 자신의 공적을 드러내려 하지 않죠. 훈장을 받기 위해 또는 명예를 위해 움직이지 않습니다. 자신이 일본 관리에게 폭탄을 던졌더라도 그걸 애써 드러내지 않고 무명의 전사로 사라져버려요. 최대한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민중 속에서 그들과 같이 움직이려고 합니다.”

해방을 맞이했지만 민중은 여전히 위대한 지도자가 나와 자신을 이끌어주길 바랐다. 정치나 계급의 큰 흐름에 개인의 삶을 내맡겼다. ‘주체적 자주’ 즉, 자유 사상이 부족했다. 아나키스트들이 민중 계몽을 위해 교육에 뛰어든 이유다. 국민문화연구소도 그런 뜻에서 만들었다.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민중은 드디어 주체적으로 사고하기 시작했다.

“의식이 깨이고 민주화를 이룬 것은 분명 성공한 겁니다. 한 단계 올라간 거죠. 예전처럼 권위자가 자신의 모든 걸 해결해주리라 생각하지 않아요. 그러나 현재의 문제는 ‘윤리의식의 부재’입니다. 상대를 경쟁과 싸움의 대상으로만 여기는 것에서 벗어나 누가 더 상호부조적이며 협력을 잘할 줄 아는가의 논의로 넘어가야 해요.”

구체적 실천 방법으로 아나키스트들은 ‘자유공동체’를 꼽는다. 현재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양극화, 청년실업, 갑질 등의 병폐에서부터 국제사회 갈등 해결 방안과 통일까지 모든 문제 해결의 근원은 자유공동체에 있다고 설파한다. 그렇다면 아나키스트들이 100년 전부터 하나같이 강조해왔던 자유공동체는 어떻게 이룩할 수 있을까. “이런 얘기를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내 남은 유일한 희망입니다.” 힘차게 악수를 하는 이 회장의 눈빛은 온화한 결기로 반짝였다.

특강 신청은 한겨레교육 누리집(academy.hanter21.co.kr/servlet/controller.homepage.MainServlet)
또는 (02)3279-0900.

글 김서이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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