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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4.17 19:26 수정 : 2019.04.17 22:30

북·중·러 접경지대와 북방교류 상설 협의체 크라스키노 포럼 상임대표 김창진 교수.

북·중·러 ‘크라스키노 포럼’ 발족
19일 국회 창립기념 학술·문화행사
대표 김창진 교수 “학생·교사 교류”

북·중·러 접경지대와 북방교류 상설 협의체 크라스키노 포럼 상임대표 김창진 교수.
이효석의 소설 <노령 근해>는 1930년대 일제강점기 식민지 조선을 벗어나 북국의 이상향을 찾아나서는 군상들을 그린다. “동해안의 마지막 항구를 떠나 북으로 북으로!…배는 비장한 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두만강 넓은 하구를 건너 국경선을 넘어서니 노령 연해의 연봉이 바라보인다, 하얗게 눈을 쓰고 북국 석양에 우뚝우뚝 빛나는 금자색 연봉이.”

<노령 근해>에서 묘사된 국경선 너머의 ‘노령 연해의 연봉’, ‘하얗게 눈을 쓰고…금자색 연봉’은 아마 현재 북한~중국~러시아의 접경 마을 크라스키노 주변일 것이다. 크라스키노는 이효석이 살았던 식민지 시대 때부터 국제사회에서 금단의 땅이 되어온 한반도 북단의 접경 지대를 상징한다.

한국과 러시아의 민간인들이 결성한 ‘크라스키노 포럼’은 냉전 이후 정부 차원의 수교와 교류가 30년 이상이 흘렀는데도, 여전히 미지의 땅으로 남아있는 북-중-러 접경 지대와 북방 교류 활성화를 위한 첫 상설 다자간 민간단체이다.

오는 19일 국회에서 창립기념 학술회의 겸 문화행사를 여는 크라스키노포럼의 상임대표 김창진 성공회대 교수는 크라스키노 마을은 식민과 전쟁, 냉전이 끝나도 북·중·러 접경 지대와 북방으로 가는 길이 여전히 좁은 현실을 상징한다고 말했다.

북한의 두만강 국경선에서 약 40㎞ 떨어진 러시아의 접경 마을 크라스키노는 1936년 소련군과 일본 관동군의 훈춘 전투에서 전사한 소련군 장교의 이름에서 딴 것이다. 앞서 크라스키노에는 우리의 고대사와 근대사가 녹아 있다. 발해의 염주성이 발굴된 곳이고, 1860년 베이징 조약으로 러시아에 편입되면서 조선과 러시아 양쪽으로부터 이주가 시작됐다. 19세기말과 20세기초에는 러시아와 한인이 어울리는 다민족 평화공존의 무대였고, 일제에 맞서는 반제국제연대의 거점이었다. 하지만, 훈춘 전투 뒤 소련의 스탈린 체제는 접경 지역의 소수민족 고려인을 중앙아시아로 이주시킨 우리 민족의 비원이 서린 곳이다.

지난 3월1일 크리스키노에서는 한-러 인사들이 참여해 ‘크라스키노 포럼’이 창립됐다. 김창진 대표는 “개별 민족과 국가의 이익 추구에 익숙했던 지역의 경계, 하지만 절경을 품고 있는 크라노스키에서 상호 이해와 협력에 기초한 상생의 시대를 도모할 지혜를 모으자”며 사업 계획을 세우고 있다. 유라시아의 국제교류협력 연대조직으로서 접경지대의 다자 협력 모델을 창출하는 것을 첫 계획으로 삼고 있다.

당장 올해부터 크라스키노 학생과 교사들의 한국 방문 및 교류 프로그램을 시작할 계획이다. 오는 10월에는 블라디보스톡과 크라스키노에서 평화문화축전 개최도 준비한다고 김 대표는 밝혔다. 특히, 접경지대 소다자협력의 모델로서 ‘크라스키노 국제연대 역사문화마을 조성’을 통해 고려인들의 삶의 터전을 기념하고, 한국의 마을공동체와 도시재생 사업의 경험을 전수하려고 한다.

인구 3500명의 잊혀진 마을 크라스키노의 부활은 북-중-러 접경이 한반도 평화정착과 3국을 관통하는 북방교류의 활성화를 의미한다고 김 대표는 강조했다.

한국쪽 인사로는 이만열 상지대 이사장·곽노현 전 서울 교육감·하용출 워싱턴대 교수 등이 고문으로, 러시아 쪽에서는 마리나 쿠클라, 알렉산드르 스타로부보프, 표트르 루잔킨 등이 대표 발의해 참가하고 있다.

오는 19일 국회에서 열리는 창립기념 학술회의에서는 러시아 주재 공사를 지낸 박종수 서강대 교수의 ‘남북협력시, 러시아의 역할’과 김 대표의 ‘크라스키노와 한반도, 그리고 유라시아 평화지대의 건설’이 발표된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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