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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4.07 21:13 수정 : 2006.04.07 21:13

1999년 10월20일 은관문화훈장을 받고서

[가신이의 발자취] ‘나뭇잎 배’ 동시 작가 박홍근씨

여보 김미사 교수, 잘 지내오? 당신과 헤어진지도 열흘이 됐구려. 나도 벌써 당신이 그립구려.

한국동란 한해 전 함북 성진땅에서 결혼한 이후, 당신 프랑스 유학때 4년을 빼곤 만 53년을 살 맞대고 살아온 세월이 채곡채곡 정으로 쌓였으니 아니 그러하겠소, 여보?

참 여보, 처음엔 나도 나의 죽음이 믿기지는 않았다오. 아마도 평생을 어린이들 키높이에 맞춰 생각이며 행동거지며 그들과 닮다보니 나이 드는 잊고 살아서 그런 것 아닐까 하오, 허허. 그런데 3월 마지막날 낮 포천 평화묘원에서 있던 하관때, 당신과 내가 이승(아니 여기서 보니 당신 계신 곳이 저승이라야 맞을 듯 합니다)에서 영영 이별한다는 생각이 들고 슬픔을 주체 못하겠더이다. 평생을 하루같이 사랑을 나눈 당신 얼굴에 쏟아지는 눈물하며, 콧물하며…. 바로 그 순간 귓가에 들려오는 노랫소리는 나를 어느새 유년으로 되돌려 놓고 있었답니다.

“낮에 놀다 두고온 나뭇잎배는/ 엄마 곁에 누워도 생각이나요/ 푸른달과 흰구름 둥실 떠가는/ 연못에서 살살 떠다니겠지.” 여보 ‘나뭇잎배’ 노래는 우리가 흥남철수때 엘에스티 타고 월남한 후 얼마 동안 KBS에 근무할 때 알게된 윤용하 선생이 곡을 붙여주셨다오.

1961년 1월16일 서울 서린동 태화관 <날아간 빨간 풍선> 출판기념회에서

‘돌아온 깃발’로 등단한게 엊그제…
원고·사진첩 기증은 잘한 일 같소
여보, 사보 등 운동하며 늘 건강하길

여보, 그리고 얼마 후 이곳에 도착하니 글쎄, 당신도 기억나지요? 몇년전 먼저 세상 뜬 홍종칠군 말이요. 해방전 일본서 음악공부 같이 한 내 70년지기 홍군 말예요. 그가 나를 맞는 게 아니겠습니까? 나와 만주에서 비슷한 시기 공부했던 문익환 목사님, 방정환 선생님, 강소천 선생님 등등, 이루 다 말할 수 없이 많은 분들이 나를 반겨주시는구려. 내가 등단 한 게 해방되던 해니 참 세월유수지요. <문화>지에 ‘돌아온 깃발’을 쓴 게 처음이었는데, 부끄러운 것도 없지 않지만, 시 한구절 한구절 내 혼과 사랑이 담긴 것은 당신도 인정해줄 것으로 믿소. 맘에 들 때까지 고치고 또 고치느라 재떨이엔 꽁초가 수북이 쌓이면 어느새 동이 훤히 터오르는 ‘거꾸로 인생’은 당신의 넓은 이해로 몇권의 동화집, 장편소년소설, 그리고 시집, 동시집으로 흔적을 남길 수 있었다오.

여보, 정말 고맙소, 정말 고맙소. 참 91년에 일본어로 번역되어 나온 <해란강이 흐르는 땅>을 읽었다는 일본사람을 여기서 만났는데,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더이다.


여보, 당신 계신 그곳 소식도 궁금하구려. 거실에 걸려있는 이주홍 선생이 61년 내게 선물하신 ‘童心守眞’ 액자가 이따금 생각난다오. 우리가 신대방동 좁은 아파트에 있던 책이며 내가 쓴 원고지 뭉치며 사진첩들을 작년 국립중앙도서관에 모두 기증하길 참 잘 한 것 같아요. 우리에게 후사가 없는 것도 그렇지만, 그것보다 많은이들이 같이 보고 누릴 수 있게 됐기 때문이라오.

사랑하는 미사 여보, 내 걱정은 절대 안해도 된답니다. 난 당신이 되레 걱정 돼요. 앞산 약수터에 자주 나가 산보도 하고 체조도 하세요. 나처럼 몇년씩 병상에 눕다 오면 안돼요, 당신은.

여보, 우리 누님 손주들 건준이, 영수 잘들 있지요. 사십대이니 한창 일할 나이인데, 당신이 이따금 살펴주구려. 당신도 잘 아는 해방전 교편 잡을 때 제자 김국순이는 장례식때 보니 칠순 할머니가 됐더이다. 약현성당에서 내게 영세주신 이문주 신부님, 안경렬 몬시뇰 신부님께 당신이 안부 대신 전해주세요. 안 신부님이 보낸 조화에 이런 글귀가 있었지요, 아마. “한평생 해맑은 소년으로 사신 분, 주님 동산에 영원히 피어나소서.”

이상기 기자 amig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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