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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5.28 02:05 수정 : 2019.05.28 02:05

서울의대 본과 2년 때까지 수석 의학도
‘바르게 사는 길’ 고민…민주화운동 투신
민청학련·의대 간첩단사건 엮여 ‘제적’
자수하며 단지 끊어 ‘굴복 거부’ 혈서도

요양중 신학 공부…목회자로 8년간 활동
마흔네살 복학해 27년만에 늦깎이 졸업
말기암환자 ‘몸과 정신’ 보살핌에 헌신

[가신이의 발자취] 새오름 호스피스 완화의료센터 황승주 선배님을 그리며

지난 21일 별세한 황승주 새오름 호스피스 완화의료센터 원장.
황승주 선배님, 지난 21일 돌아가셨다는 소식에 귀를 의심했습니다. 루게릭병이라는 희귀질환을 앓고 계셨지만 그처럼 갑자기 떠나실 줄 몰랐습니다. 선배님은 저희 의료인 후배들에게 유신독재 투쟁의 전설이자 온유함과 겸손한 모습으로 삶의 귀감이셨습니다.

황 선배님은 한국전쟁 와중인 1950년 12월3일 황해도 연백에서 태어나 강보에 싸인 채 피난내려와 인천 앞바다 무의도에서 자랐습니다. 1969년 서울대 의대에 입학해서는 본과 1, 2학년 계속 수석을 했지요. 그처럼 공부만 하던 의학도는 1971년도 10월 위수령 때 총을 든 군인들에 의해 도서관에서 쫓겨납니다. “사회와 역사가 엉망이 되어가고 있는데, 내가 의학자가 된다해서 그것이 바르게 사는 것일까?” 고민하던 황 선배님은 사회를 바로잡는 일에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그즈음 결성한 서울의대 사회의학연구회는 민주화운동과 보건의료운동의 출발점이 됐습니다. 1977년 입학한 제가 선배님을 처음 알게 된 것도 연구회 덕분이었지요.

박정희 정권이 1974년 1월 초헌법적인 ‘긴급조치’를 발동하자, 황 선배님은 긴급조치 해제를 외치며 ‘서울의대 시험거부 사건’을 주동해 수배를 당합니다. 그해 4월3일 민청학련 주도로 전국적인 시위가 계획되었을 때, 중랑천변 판잣집에 숨어 있던 황 선배는 안대를 대고 환자로 위장해 서울 의대로 진입해서 또 한번 시위를 이뤄냈습니다. 다시 도피에 나선 선배님은 가족과 지인들이 자신 때문에 고통을 당하는 것을 보고 자수를 결심했습니다. 하지만 끝내 굴복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후배들에게 알리고자 네째 손가락 한마디를 잘라 혈서를 썼다고 했습니다. 그때 역시 같은 이유로 도피 중이던 ‘동지’ 양길승 선배님에게 혈서를 건네며 부둥켜안고 울었답니다. 또 이 날을 기억하고자 도피중 금기사항인 사진도 찍었다는데 아쉽게도 지금 남아있지 않습니다.

민청학련 사건 때는 기소유예로 풀려났으나 의대에서 제적당한 황 선배님은 1975년 11월 이른바 ‘서울의대 간첩단 사건’으로 또 다시 고초를 겪습니다. 중앙정보부가 재일동포 유학생 강종헌을 간첩으로 조작해 서울의대 학생운동권을 모조리 끌어들인 사건입니다. “저들은 이미 나를 간첩의 하수인으로 시나리오를 짜놓고 자백을 강요하고, 나는 이렇게 고문받다가 형식적인 재판을 받고 사형당하는구나, 생각에 자살을 결심했다”고 했습니다. 결국 1976년 1심 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받고 집행유예로 출소했으나 선배님의 육신과 정신은 만신창이가 된 상태였습니다. ‘과연 하느님이 계실까?’ 기막힌 현실을 이해하고자 요양중에 신학을 공부한 황 선배님은 1981년부터 용인군 남사면의 시골교회에서 ‘가장 작은 자들을 위해’ 8년간 목회 활동을 했습니다.

1994년 서울의대에 복학한 황 선배님은 27년만에 졸업하는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제가 의국을 맡고 있던 가정의학과 전문의가 되신 덕분에 새삼 가까이 지낼 기회가 됐습니다. 황 선배님은 말기 위암 환자가 절망하는 모습을 보고, 육신도 중요하지만 영적인 치유가 중요하다는 점을 깨닫고, 말기암 환자들을 위한 호스피스 완화의료 전문 병원을 열었습니다. 그렇게 20여년 그분들의 영육을 돌보는 헌신의 모습을 어찌 제가 다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까?

황승주 선배님, 좋은 나라 좋은 시국이었다면 의대 교수가 되어서 평생 좋아하는 연구를 하며 온화한 음성으로 후학들을 가르치셨을 분입니다. 너무나 혹독한 독재세력 탓에 겪으신 파란의 일생이 떠올라 하루 종일 분노의 눈물을 그칠 수 없었습니다. 이제 모두 벗어나셨으니 편안히 영면하소서.

서홍관/국립암센터 의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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