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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2.01 23:21 수정 : 2019.12.01 23:41

지난 10월 회고록 <인권, 온몸으로>을 출간한 이명남 목사가 지난달 29일 별세했다.

1980년부터 충남 당진교회 목회…향년 79
기독교계·지역사회 지도자로 40년 헌신

지난 10월 회고록 <인권, 온몸으로>을 출간한 이명남 목사가 지난달 29일 별세했다.

1980년대부터 한국 기독교 민주화운동을 이끌어온 이명남 목사가 지난달 29일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79.

1941년 대전에서 태어난 고인은 장로회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80년 충남 당진시 당진교회로 부임해 36년 동안 목회활동을 한 뒤 은퇴했다.

그는 교단에서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총회 충남노회 노회장과 총회 부회록서기, 인권위원장 등을 지냈다. 대외적으로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위원장, 일치위원회 위원장, 한국교회 인권센터 이사장, 기독교사회운동연합 의장, 한국사형폐지운동연합회 공동위원장 등으로 활동했다. 전국목회자정의평화운동실천협의회 상임의장과 재일동포인권선교위원회 위원장, 민주화운동관련 명예회복분과위원회 위원장,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운영위원,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자문위원 등으로 우리 사회의 민주화와 인권, 통일 운동에도 힘썼다. 또 당진시 승격 추진위원회 위원장, 충남환경운동 상임의장, 지방분권운동 충남지부 공동대표, 당진문화재단 이사장, 충남문화재단 이사장, 당진YMCA 고문 등을 맡아 지역 사회 발전에도 기여했다.

그는 지난달 4일 출간한 회고록 <인권, 온몸으로>(대한기독교서회)에서 “나는 누구보다 하나님께 한없는 은혜를 받았다. 주변 사람들은 내게 말했다. 목회 하나도 힘든 일인데 민주화운동까지 어찌 했느냐고. 1980년대 군사독재정권과 싸우는 일은 정말 고통스러운 길이었다. 내 곁에는 늘 경찰이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했다. 그 감시의 덕분이었을까. 나는 매사에 신중하고 조심했다.(중략) 불법을 저지를 수 없었고, 부끄러움을 안고 살 수 없었다. 민주화운동을 한답시고 뛰어다니려면 그래야 했다”며 자신의 삶을 스스로 증언했다. 기독교민주화운동 이사장 권호경 목사는 “이명남 목사는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이후 전국목회자정의평화협의회의 태동기와 6·10민주항쟁을 거쳐 이 땅에 민주주의가 정착하기까지 현장을 지켜온 증언자였다”고 평가했다.

한국기독교민주화운동을 비롯한 교계 인권단체 주관으로 1일 오후 7시 빈소에서 고별 예식이 열렸다.

유족으로는 부인 박동림씨와 2남 1녀가 있다. 빈소는 당진장례식장이며, 장례는 예장통합 충남노회장으로 치러진다. 발인예배는 2일 오전 9시에 한다. (041)354-4444.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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