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8.15 19:49
수정 : 2016.08.15 22:11
재원도 바깥 청년재단서 끌어와
당장 올해 넉달치 25억원
전용하는데도 이사회 의결 없어
기존사업에 현금지급 연계 논의
불과 1주일 전에야 본격 시작
사업 결정 이틀 만에 언론 발표
수당지급 시스템조차 마련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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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청년활동지원사업(청년수당)에 대한 정부의 직권취소 조치를 비판하는 대형 펼침막이 서울 중구 태평로 서울도서관 외벽에 걸려 있는 모습.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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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노동부가 9월부터 청년 구직자에게 최대 60만원씩 구직수당을 주기로 한 정책이 ‘서울시 청년수당 따라 하기’라는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본격적인 정책 준비 기간도 검토부터 발표까지 1주일 남짓밖에 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시 청년수당을 견제하기 위해 구체적인 사업 준비도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에서 정책을 급조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용부와 청년희망재단(재단)은 지난 12일 정부의 청년일자리 정책인 ‘취업성공패키지’(취성패) 3단계 참여자에게 사진촬영비, 정장대여료 등 면접비용을 월 20만원 한도로 최대 석달간 현금지원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이를 집행하기 위한 재원은 재단의 ‘청년희망채움’ 사업 예산이라고 밝혔다.
15일 고용부와 재단 쪽 관계자들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취성패와 청년희망채움사업을 연계하는 이번 방안이 본격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 8일께다. 고용부 관계자는 “재단에서 청년제안 사업으로 구직자 정장대여료 지급 사업 검토가 있었고, 7월부터 재단과 협의를 진행했는데, 구체적인 추진 방향에 대해서 정리한 것은 지난주(8일)부터”라고 말했다. 양쪽은 10일 사업 추진을 결정했고, 12일 사업 계획을 공표했다. 실무선에서부터 단계적으로 검토가 이루어졌다기보다 ‘윗선’에서 의사결정을 서둘렀을 가능성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이기권 고용부 장관은 재단의 비상임이사이고, 재단 사무국장을 겸하면서 실무를 총괄하는 장의성 상임이사는 고용부 관료 출신이다. 대상자 선정이나 전달체계 마련 등 사업 준비도 급조된 정황이 보인다. 서울시가 청년 구직자들에게 청년수당을 사용할 계획서를 일일이 제출받고 면밀한 심사를 거친 것과 달리, 고용부의 구직수당은 상담원이 상담 과정에서 ‘추천’하도록 돼 있을 뿐이다. 당장 다음달부터 수당을 지급한다고 발표했지만, 지급 업무를 맡은 재단은 수당을 전달하는 체계도 마련하지 못한 상황이다. 재단 쪽은 정장대여료와 사진촬영비 등은 업체와 계약을 맺어 구직자가 이용하면 사후 정산을 하고, 구직활동에 들어가는 교통비와 숙박비는 구직자가 영수증을 제출하면 실비지원할 계획이지만, 아직 이런 과정을 처리할 수 있는 전산시스템은 마련돼 있지 않다고 밝혔다.
또 재단은 재단의 핵심 사업에 속하는 이번 사업을 결정하기 전에 이사회 의결은 물론 이사진 보고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청년희망채움사업의 올해 예산은 59억원으로 책정돼 있다. 이번 연계 사업은 연간 74억원 규모로, 올해 9~12월 소요예산은 25억원가량이 될 것으로 보인다. 청년희망채움사업 올해 예산의 절반을 차지하는 셈이다. 장의성 상임이사는 “이미 청년희망채움사업 59억원 예산이 이사회 의결을 거쳐 배정된 바 있고 그에 따른 집행은 집행부에 일임돼 있다. 다만 이사들에게는 발표 전에 전자우편 등을 통해 사전 보고를 마쳤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사 중 한명인 한국노총 김동만 위원장 쪽은 “이런 내용을 고지받은 적이 없다”고 밝혔다.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청년 구직자에게 꼭 필요한 사업”이라고 사업 취지를 설명하면서도 굳이 정부 예산을 쓰지 않고 청년희망재단의 사업 예산을 끌어 쓰는 것도 석연치 않은 대목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정부 예산은 표준화된 방식에 의해서 집행을 해야 하기 때문에 청년 개개인에 맞는 지원을 할 수 없어 민간비용으로 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속내는 정부 예산으로 지원할 경우 평소 정부가 “청년에게 현금지원을 하면 도덕적 해이가 커질 수 있다”며 서울시 청년수당을 비판했던 입장과 모순된 것 아니냐는 논란이 커질 것을 우려한 탓으로 보인다.
실제 고용부는 이번 사업 재원을 재단 예산으로 충당하면서, 보건복지부와의 협의 의무도 피해갈 수 있었다. 사회보장기본법에 따라, 중앙정부나 지자체가 새로운 복지제도를 신설 혹은 변경하려면 복지부와 협의를 해야 한다. 복지부가 서울시 청년수당을 직권취소한 것도 이 조항을 근거로 한 것이다. 하지만 복지부 쪽은 이날 “지자체(서울시) 예산이 투입되는 청년수당과 달리, 민간 재단의 예산을 쓰는 고용부 사업은 협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서울시 관계자는 “민간 재단의 돈을 끌어다 정부 정책으로 포장해서 내놓는 의도가 뭔지 궁금하다. 서울시 청년수당 사업이 집행되면 기존 취성패 사업이 흔들릴 수 있다는 위기의식에서 이런 사업을 급조해낸 것 같다”고 비판했다.
황보연 박태우 기자
whyn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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