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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11.08 15:52 수정 : 2017.11.08 21:43

[더 나은 사회] 덴마크 사회주택 찾아가보니…

입주자격 없이 ‘누구나' 사는 공간으로
입주기간 없이 원하는 만큼 ‘내 집'으로
‘입주자 민주주의법’ 도입해 정주의식 높여

임대료는 일반주택의 70% 수준
구입해도 임대료 내 ‘사회적 책임’ 다해

보편복지의 ‘자유·평등·정의' 실현 수단으로 자리매김

덴마크 코펜하겐시 외곽 사회주택의 모습.

최근 국내에서 사회적 약자의 주거복지 모델로 높은 관심을 받고 있는 사회주택은 서구에서 보편적 주거복지 모델로 자리 잡은 지 이미 오래다. 주거복지가 발달한 북유럽 국가 가운데서도 양과 질에서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덴마크 사회주택 역사는 150년이 넘는다. 1853년 덴마크 노동자들 사이에 콜레라가 창궐해 수많은 이가 목숨을 잃자, 의사였던 클라우스 에밀 호르네만(1810~1890)이 주거 여건 개선 운동을 벌인 게 덴마크 사회주택의 첫걸음이었다. 쾌적한 주거 환경을 만들지 않으면 같은 문제가 반복될 것이라는 사회적 공감대 위에 ‘누구나 사는 집’으로 인정받는 덴마크의 사회주택을 둘러봤다.

덴마크 수도 코펜하겐에서 자동차로 20여분을 달리자 짙은 녹음에 둘러싸인 4~5층 높이의 아파트 수십동이 한눈에 들어온다. 미혼 청년들을 위한 10평 남짓 복층 아파트부터 일가족이 함께 거주할 수 있는 방 4개짜리 99㎡(30평) 아파트까지 수백채에 이르는 다양한 사회주택이 빽빽한 침엽수림 사이를 메우고 있다. 이곳의 운영과 관리를 맡고 있는 ‘전국건설기금’ 이사장 크리스티안 호이스브로는 “덴마크에는 모든 주거 형태의 사회주택이 있다”며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필요한 모든 주거 형태를 제공하는 것이 덴마크 사회주택 정책의 핵심 목표”라고 말한다.

2015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실시한 전체 가구 대비 사회주택 가구 비중 조사에서 덴마크는 22.2%를 기록했다. 네덜란드(34.1%), 오스트리아(26.2%) 다음으로 높은 수치다. 사회주택 정책을 구체화할 기금은 정부기금, 지역기금 등으로 혼재돼 있지만, 기금 운영은 비영리 민간기관인 베엘(BL·Boligselskabernes Landsforening, 주택조합협회)이 도맡고 있다. 베엘은 덴마크 전 지역의 모든 사회주택을 운영·관리하는 기관이다. 베엘에 소속된 주택협회만 해도 550여개에 이른다.

덴마크 코펜하겐시 외곽 사회주택의 모습.
덴마크에선 사회주택을 일컫는 용어로 ‘소셜 하우징’(Social housing, 사회주택)보다 ‘코먼 하우징’(Common housing, 보통주택)을 흔하게 사용한다. 사회주택이 사회 소외계층을 포함한 일부 계층의 전유물이 아니라, 덴마크 시민이라면 누구나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일반 주거라는 인식과 의미가 깔려 있는 용어다. 베엘의 대외홍보 담당인 나탈리아 로가체프스카 매니저는 “덴마크 사회주택 정책은 누구나 싼 가격에 양질의 주거복지를 누릴 권리가 있다는 덴마크 보편적 복지 정신과 맞닿아 있다. 덴마크에서 사회주택은 통제와 폐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덴마크 복지 모델의 핵심가치인 자유, 평등, 정의를 상징한다”고 말한다.

덴마크 사회주택이 이렇게 보편적 주거 형태로 빠르게 확산된 이유는, 다른 나라에선 흔히 볼 수 있는 세가지를 과감하게 제거했기 때문이다. 우선 덴마크에선 사회주택의 입주 자격을 없애 시민들의 접근성을 높였다. 가족 단위 입주로 제한되는 일부 큰 규모의 사회주택을 제외하면 규모나 유형을 가리지 않고 누구나 입주할 수 있다. 입주 자격에 소득 기준이 없는 곳은 유럽연합 국가 가운데서도 덴마크가 유일하다.

둘째, 정해진 입주 기간을 없애 주거 안정성을 높였다. 입주자가 원한다면 한번 들어간 사회주택에서 평생 살 수 있다. 이것은 사적 임대주택과 공공 임대주택을 가리지 않고 적용된다. 심지어 숨진 뒤에도 함께 산 자식들에게 우선거주권이 부여될 정도다.

셋째, 비용 부담을 없애 가처분 소득을 높였고, 이는 삶의 만족도에 영향을 끼쳤다. 덴마크 사회주택은 입주자가 베엘에서 장기주택담보대출(모기지론)을 받아 매매계약을 한 뒤 입주한다. 그런데 원금 상환 여부는 전적으로 입주자가 결정한다. 만일 입주자가 사회주택의 소유를 원하지 않을 경우엔 이자와 관리비 등으로 이뤄진 임대료만 내면 되고, 소유를 원한다면 여기에 원금을 더 상환한다. 호이스브로 이사장은 “임대료는 주택 유형과 지역 여건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코펜하겐시 외곽 지역을 기준으로 대략 2명이 살 수 있는 복층 구조 33㎡(10평) 아파트의 임대료는 매달 3000크로네(약 54만원), 4인 기준 99㎡(30평) 아파트의 임대료는 9000크로네(약 162만원) 정도”라고 말했다. 그는 인근 지역 일반 주거지의 임대료와 견줬을 때 대략 30% 정도 저렴하다고 덧붙였다.

덴마크 코펜하겐시 외곽 사회주택 외벽에 그려진 벽화.
덴마크 사회주택 정책이 강조하는 ‘입주자 민주주의’도 덴마크 사회주택의 신뢰를 높이고, 임대주택도 내 집처럼 여길 수 있도록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덴마크는 1984년 ‘입주자 민주주의법’을 제정했다. 사회주택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은 입주자협의회의 논의를 거쳐 결정하게 하는 것이 핵심으로, 입주자들의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내 지속가능한 사회주택으로 운영하겠다는 취지다. 이를 통해 정부를 비롯한 공급자 중심의 사회주택 정책이 야기하는 사회·지리적 고립(게토화)을 막고, 정부의 지원 축소로 인한 주택의 질과 주거 여건 악화도 방지할 수 있다.

덴마크 정부는 사회주택 정책에서 강조하는 개인의 자유가, 보편적 복지 모델의 또 다른 핵심 가치인 평등과 정의를 훼손하지 않도록 다양한 장치도 마련하고 있다. 예컨대 덴마크 지방정부는 사회·경제 여건을 고려해 지역 사회주택의 25%에서 최대 100%까지를 집이 없는 노숙인(개인과 가정 모두 포함), 저소득층, 청년 등 취약계층에게 우선배분할 수 있다. 지방정부는 이런 계획이 정책적 성과, 즉 실효성을 갖도록 총선이 열리는 4년 단위로 세부계획을 마련한다.

그 밖에도 사회주택을 소유하는 입주자는 대출금 상환이 끝나더라도 관리비 등 일정 수준의 임대료를 계속해서 내야 한다. 입주민에게 부여한 권리만큼 사회적 책임도 다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이 임대료의 3분의 2는 전국건설기금에, 나머지 3분의 1은 주택협회가 가입된 지역기금에 할당된다. 이 돈은 자신이 거주하는 아파트의 수리·보수 말고도 사회주택 관련 기관 가운데 재정적 어려움을 겪는 곳이나 신규 사회주택 건설에 쓰여 사회주택 정책의 지속가능성을 높인다.

요컨대 덴마크 사회주택은 덴마크 사회가 지향하는 보편적 복지 모델의 비전과 가치를 달성하는, 대체불가능한 제도다. 개인의 자유와 시장 원리를 사회주택 운영의 기초로 삼는 한편, 평등과 정의를 지켜갈 이해관계자들의 참여와 소통을 강조해 정책적 균형과 조화를 추구한다. 사회주택을 ‘어려운 사람을 돕는 정책’이 아니라, 정부와 시민, 사회적 경제 주체 등 보다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공유하는 국가 차원의 복지 비전과 핵심 가치 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필요성을 보여주는 사례다.

코펜하겐/글·사진 서재교 미래세대정책연구소장,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정책위원 tjwory052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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