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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12.17 18:34 수정 : 2017.12.18 15:59

【짬】 인권재단 사람 박래군 소장

지난 15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난 박래군 인권재단 소장은 “‘지속 가능한 인권운동’의 조건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인권재단 사람이 2013년 세운 인권센터 ‘인권중심 사람’은 1년에 300회 이상의 회의, 토론회, 행사가 열리는 공간이 됐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명민해진 시민이 주인이 돼서 인권운동에 참여하는 걸 어떻게 만드느냐.’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소장이 촛불을 경험하면서 절실하게 느끼고 있는 점이다. “‘한판’이 달라져야 하는 상황이거든요. 1980년대에 시작된 인권운동의 틀은 낡았고 끝물인데 새 방식은 만들어지지 않고….” 지난 15일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난 박 소장에게 얘기를 듣다 물었다. “방법이 뭔가요?” 솔직한 대답, “아직은 잘 몰라요.”

올해 5·18 기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도 불렀던 이름, 박래전. ‘광주는 살아있다’고 외치며 분신한 동생 박래전의 희생 이후 시작한 인권운동이 내년이면 30년이다. 박래군 소장은 2010년 용산참사 사건으로 들어갔던 감옥에서 ‘지속 가능한 인권운동’을 화두로 삼았다. 인권재단 사람이 2010년 모금을 시작해 2013년 개관한 ‘인권중심 사람’은 이런 고민의 결실이자 숙제의 시작이다.

“해마다 단체를 하나씩 만들었어요. 세월호참사국민대책위원회를 만들었고 그 다음해 4·16 연대로 전환했고, 올해는 안전사회운동을 전담하는 생명안전 시민넷이 출범했어요. 솔직히 재단에 충분히 신경을 못 썼죠.” 이명박근혜 정부는 그가 ‘지속 가능한 인권운동’의 토대를 만드는 작업을 후방에서 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용산참사, 세월호로 이어지는 저항의 현장에 여전히 앞에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명박근혜 정부는 끝났지만, 이명박근혜 정부의 소송은 끝나지 않고 여전히 괴롭힌다. 그는 오늘도 과거와 싸우며 미래를 만들기 위해 ‘시간을 달리는’ 중이다. 그가 불가피하게 ‘외출’ 중일 때, 인권재단 사람의 살림을 꾸리며 분투해온 후배가 썼을 후원행사 배경설명엔 ‘박래군을 위한 변명’ 혹은 ‘박래군을 향한 원망’이 슬쩍 깃들어 있다. ‘그간 세월호 참사 해결을 위한 4·16 운동에 집중하다 보니 박래군으로서는 인권재단 사람의 일에 소홀하게 되고 현재의 상황을 낳았음.’

재단 부지 마련에 2억7천만원 빚
‘남은 채무 7천만원 갚아주자’
대학 동기들 중심 21일 후원행사
박원순 우상호 공지영 등 출연

“지난 30년 앵벌이 인생이지만
돈 없어 일 못하지는 않았다”

현재의 상황이란? 연말까지 갚아야 할 빚이 7천만원이다. 서울 마포구에 세운 인권중심 사람의 부지를 마련하기 위해 후원인들에게 빌린 2억7천만원을 열심히 갚고 감사히 면제받았으나 여전히 남은 채무다. 무이자로 빌려준 후원인들에게 연말까지 성의는 보여야 하는데, ‘어쩌나 어쩌나’ 하고 있었다. 재물 복 몰라도 인복은 있는 박래군을 돕겠다고 연세대 81학번 동기들이 나섰다. 김홍열 성공회대 겸임교수가 기획하고, 이소일 ‘D3-Lab’ 대표가 연출을 맡아 ‘인권활동가 박래군 후원의 밤―인권 산타에게 선물을’ 행사를 준비했다. 오는 21일 저녁 7시 서울 성북구 국민대 맞은편 카페 컬쳐몽땅에서 열리는 후원행사에 문학회 동기인 우상호 의원, 공지영 작가가 이야기 손님으로 ‘비사’를 들려주고, 가수 한동준씨가 노래를 부르며, 연극인 이양구 작가가 짧은 연극을 만들어 올린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직접 격려사를 하고, 박래군 소장은 즉석 철판요리를 준비한다. “이런 37년의 인연, 아니 37년의 민폐가 있느냐”고 하자 그는 “30년을 돌아보면 앵벌이 인생인데, 돈이 없어서 일을 못하지는 않았다. 일을 하다 보면 돈도 생긴다”며 웃었다.

정부 지원 받고 기업 후원 ‘땡기면’ 나았겠지만, ‘정부 돈, 재벌 돈’ 받지 않는다고 명시된 인권재단 사람의 정관이 원천봉쇄한다. 1200명의 후원금은 인권사업과 인권활동가 지원을 하기에도 모자란다. “후원인이 2천명, 3천명, 5천명으로 늘면 딱 ‘저거’ 할 텐데.” 이날 1시간여 그가 말한 ‘저거’의 열쇳말만 추리면 ‘인권이론 체계화’, ‘인권활동가 교육’, ‘인권이론지 창간’ 등이다. ‘저거’가 있어야 인권운동이 지속 가능하고, ‘그걸’ 지원할 토대를 만들고 싶다는 것이다. 그것은 현장밀착형 재단 인권재단 사람의 꿈이기도 하다. 처음엔 “몰라요” 했지만, 서서히 풀어놓은 인권운동의 방향은 이랬다. “신자유주의 이후 사실상 귀족과 노예로 나뉜 사회가 됐어요. 평등을 가장 앞세워야죠.” 형식에선 ‘네트워크 운동’을 생각한다. 지역모임이 살아있고 수평적인 연대가 꿈틀대는 4·16 연대는 그래서 중요하다.

2013년 십시일반의 정성이 모여 기적같이 세운 인권중심 사람이 요즘 “성소수자들의 아지트”라고 한다. 그렇게 인권재단 사람은 공공기관이 대관을 거부하는 이들의 피난처가 됐다. 세월이 흐른 뒤에 오는 이들의 면면이 또 바뀔지 몰라도 인권을 침해당한 ‘최후의 사람들’의 공간이란 사용법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인권재단 사람은 연말 산타 같은 후원자를 기다린다. (02)363-5855, 후원계좌 신한은행 100-029-833027 인권재단 사람.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박래군 후원의 밤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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