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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12.26 14:12 수정 : 2017.12.26 15:19

서울 변두리 반지하 허름한 셋방에서 어린 아이들이 자라고 있다. 예슬·현빈의 엄마는 집을 나가 소식이 끊긴 지 오래고, 아이들의 아빠는 빚을 갚느라 바빠 집에 잘 오지 않는다. 아이들은 조부모가 보살피고 있다. 지난 6일 방에서 손주들을 돌보고 있는 할머니 한아무개씨의 모습. 월드비전 제공

2017 나눔꽃 캠페인
‘소아우울증’ 앓는 예슬이 남매

서울 변두리 반지하 허름한 셋방에서 어린 아이들이 자라고 있다. 예슬·현빈의 엄마는 집을 나가 소식이 끊긴 지 오래고, 아이들의 아빠는 빚을 갚느라 바빠 집에 잘 오지 않는다. 아이들은 조부모가 보살피고 있다. 지난 6일 방에서 손주들을 돌보고 있는 할머니 한아무개씨의 모습. 월드비전 제공

‘내가 가장 행복한 때는 (없어요)/ 우리 엄마는 (없어요)/ 나에게 가장 좋았던 일은 (없어요)/ 우리 아빠는 (많이 보고 싶어요)/ 내가 가지고 있는 것 중에서 가장 아끼는 것은 (없어요)/ 나를 가장 슬프게 하는 것은 (엄마·아빠랑 같이 안 사는 것)/ 내 소원이 마음대로 이루어진다면 (엄마·아빠랑 함께 살고 놀러가는 것)’.

일곱살 예슬이(가명·여)는 얼마 전 심리검사를 받았다. 심리검사에 예슬이가 직접 적은 답을 통해 본 아이의 마음은 엄마·아빠에 대한 그리움이 전부였다. 엄마·아빠가 떠나버린 예슬이에게 남겨진 것은 비좁은 반지하 방과 바퀴벌레 같은 해충들이었다. 엄마·아빠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 찬 예슬이는 결국 ‘소아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예슬이는 언제쯤 다른 아이들처럼 따뜻하고 깨끗한 방에서 엄마·아빠의 사랑을 받으며 커갈 수 있을까.

3년 전 돈 벌러 떠난 부모 소식 뚝
병든 할머니가 5살·7살 남매 돌봐
할아버지 막노동으로 근근이 생활

예슬이는 가려움·동생은 기침 증세
전기·가스마저 끊겨 냉골방서 쪽잠
두 아이 마음엔 엄마 아빠 그리움뿐

지난 6일 서울 한 변두리 주택가의 허름한 반지하 방에서 예슬이 남매와 할머니를 만났다. 예슬이와 남동생 현빈이(5·가명)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맡아 키우고 있다. 아이들의 엄마는 3년 전 ‘돈 많이 벌어 돌아오겠다’는 편지를 남긴 뒤 집을 떠나 아직까지 소식이 없다. 아빠는 명절 때 한번씩 집에 들어오지만 아직 변변한 수입이 없어, 아이들을 품지 못하고 금방 나가버린다고 한다.

여섯평(19㎡) 남짓한 지하 단칸방에서 예슬이 남매는 할머니 한아무개(51)씨와 할아버지(52)의 품에 안겨 잔다. “넓은 집에서 살고 싶어요. 침대 있는 집. 독벌레 없는 집. 푹신한 베개도 갖고 싶어요.” ‘지금 예슬이에게 엄마 말고 가장 필요한 게 뭐냐’고 묻는 질문에 튀어나온 예슬이의 대답에 할머니 한씨는 말을 잇지 못했다. 예슬이 남매를 잠시 집 밖 놀이터로 보낸 뒤 한씨가 깊은 속내를 털어놓았다.

“애들 아빠가 신차 딜러(판매상)를 했는데 되레 (광고비 등으로) 빚을 많이 졌나 봐요. 빚을 갚고 있어요. 애들 아빠가 가끔씩 10만원, 20만원씩 보내는 줘요. ‘형편 되면 꼭 애들 데리고 살겠다’고는 하는데….”

예슬이 할아버지는 막노동을 하며 한달 100만원쯤을 번다. 고혈압 약으로 버텨가며 버는 돈이다. 지난여름 출근길에는 차 사고를 당해 어깻죽지를 크게 다쳤다.

할머니 한씨는 허리와 목 디스크가 심하고 왼쪽 손이 점점 굳어 아무 일을 못 한다. 월세 28만원, 식비 40만원, 예슬이 교육비, 전기료, 보일러 비용 등 이것저것 쓰고 나면 남는 게 없다. 겨울이라 할아버지의 막노동 일감이 떨어져 이젠 생명줄 같은 100만원 수입도 위태롭다.

한씨의 베갯머리 옆에는 올해 9~11월 내지 못한 전기료 고지서가 뚱한 표정으로 ‘이달 8일까지 연체된 15만원을 내지 못하면 전기가 끊긴다’고 경고하고 있었다. 그 옆에는 더욱 화난 표정으로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보낸 ‘재산 압류 최고 통보서’가 한씨를 노려보고 있었다. 한씨는 2010년 11월~2017년 10월 건강보험료 187만원을 내지 못했다.

“도저히 생활 형편이 안 돼 4년 전 반지하 월세방으로 옮겨왔어요. 이제 예슬이가 초등학교도 들어가고 현빈이는 자꾸 뛰고 싶어 하는데 방이 너무 좁아요. 그나마 이젠 전기도 끊길 거 같아 전기장판도 아껴서 틀고 있어요.”

웃풍이 새어 드는 창문, 검은곰팡이가 제집인 양 크게 터를 잡은 벽지, 문의 아귀가 맞지 않는 싱크대 서랍장과 둘 곳이 없어 어지럽게 쌓여 있는 상자들, 불을 켜면 바퀴벌레들이 화들짝 놀라 구석으로 숨어드는 방이 어린 예슬이 남매가 보고 자라는 삶터의 풍경이다. 아이들을 이런 집에 살게 하고 싶지 않지만 딱히 여기를 벗어날 방법이 없어 한씨의 속은 곰팡이 색보다 더 새까맣다.

“주민센터에서 저희에게는 아들이 있어 생활보호 대상자가 될 수 없대요. 애들(손주) 엄마는 소식도 없고, 애들 아빠는 수입이 없다시피 하고, 아이들은 바퀴벌레 나오는 좁은 방에서 키가 자꾸 커가는데 제가 몸이 아파 일도 못 하고 똥강아지 같은 내 새끼들에게 너무 미안해 죽겠어요.”

정부의 생활보호 대상자 선정 기준이 꼭 틀렸다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다만 그걸 이해하기엔 너무 어린 아이들이 세상으로부터 받는 상처가 걱정될 뿐이다. 좁고 더러운 방에서 부대끼던 아이들은 이제 건강도 부대끼기 시작했다.

얼마 전부터 현빈이 기침이 심해 병원에 가봤더니 의사는 ‘폐가 안 좋다’고 진단했다. 소아 우울증을 앓는 예슬이는 얼마 전부터 몸 이곳저곳을 긁어댄다. 한씨는 피부병을 우려한다. 예슬이는 자신이 아끼던 장난감에서 죽은 바퀴벌레 무리를 발견한 뒤부터 장난감을 만지지 못한다. 한씨 자신도 이미 병든 몸이다. 하지만 어린 손주들을 앞에 두고 있기에 ‘나 하나 죽으면 그만’이라는 허튼 생각 따위에 빠질 겨를조차 없다. “예슬이는 꼭 할머니 옆에서만 자려고 해요. 그럼 제가 안아서 재워줘야 해요.”

놀이터에서 돌아온 예슬이 남매가 다시 할머니 옆으로 와서 앉았다. 아니, 앉았지만 몸은 계속 꼬물꼬물 움직인다. 한창 활동량이 많은 아이들이다. 그러던 아이들의 눈이 자물쇠로 굳게 잠긴 냉장고에 꽂혔다. 한씨는 아이들 먹성을 이겨낼 재간이 없어 냉장고 문에 자물쇠를 걸었다고 했다. 손주들을 풍족하게 먹이고 싶지만, 먹고 싶은 마음을 참는 법을 가르치지 않으면 어려운 생활 형편을 이겨낼 방법이 없다고 한씨는 생각했다고 한다.

“할아버지 오시면 냉장고를 열어 할아버지가 어제 사오신 블루베리빵을 먹고 싶어요.” 호수처럼 맑고 큰 눈동자를 가진 현빈이가 냉장고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말했다. 예슬이의 손가락은 이미 입속에 들어가 쪽쪽 빨리고 있었다. 아이들은 언제쯤 먹고 싶은 걸 실컷 먹으며 쇠약해진 몸과 마음의 건강을 되찾을 수 있을까. 노래를 좋아하는 예슬이는 커서 가수가 되고 싶고, 운동을 좋아하는 현빈이는 야구선수가 꿈이다.

현빈이는 얼마 전 꿈을 꾸었다. “어떤 곰이 나타나서 우릴 계속 놀라게 하고 괴롭히고 잡아먹으려고 했어요. ‘이이이이만한’ 고양이 꿈도 꿨어요. 그래서 아는 사람한테 ‘저 집에 데려다주세요’ 했어요.” 꿈속에서 아빠가 아닌 이웃의 아는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현빈이다. 예슬이는 가족 그림을 그리면 엄마를 그리지 못한다. 엄마를 안 그리는 걸까, 못 그리는 걸까. 예슬이가 엄마를 그리워하는 것만큼은 틀림없다. “엄마 왜 안 와요?”라고 예슬이는 할머니에게 계속 묻기 때문이다.

이날 밤 결국 예슬이네 집은 전기와 가스가 끊겼다. 밤에 갑자기 끊긴 탓에 어떻게 손을 쓸 방법이 없었다. 밤 9시께 한씨는 예슬이 남매를 두꺼운 이불 속에 들여보낸 뒤 강제로 재워야 했다. 전기장판 없이 아이들이 잠을 자려면 더 추워지기 전에 잠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얇은 비닐을 씌운 창문은 삭풍을 채 막지 못했고 전기장판은 이내 차갑게 식어버렸다. 다행히 할아버지가 이날 퇴근길에 사온 치킨 한마리 덕분에 아이들의 배는 ‘꼬르륵’ 소리를 내지 않았다.

우리 사회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불우한 어린아이들을 돕는 사회복지재단 월드비전의 김유진 간사는 “일단 후원금을 모아 예슬이 남매가 벌레가 나오지 않는 쾌적한 방에서 살도록 이사를 돕고 더 이상 건강이 악화되는 것부터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의 기초생활보장제도가 품지 못하는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빈곤아동 수는 현재 38만~67만여명으로 추산되고 있다.(‘2014 복지사각지대 빈곤아동가구 현황분석 연구’, 허선 순천향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허재현 기자 cataluni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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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슬이 가족에게 따뜻한 도움의 손길을 주길 원하시는 분은 계좌로 후원금을 보내주시면 됩니다.(우리은행 269-800743-18-309, 예금주: 나눔꽃 사회복지법인 월드비전) 월드비전 누리집(www.worldvision.or.kr)과 네이버 해피빈(happybean.naver.com)에서도 후원이 가능합니다. 모금에 참여한 뒤 월드비전(02-2078-7000)으로 연락 주시면 기부금 영수증을 발행해 드립니다.

모금 목표액은 모두 2천만원입니다. 후원금은 예슬이네가 따뜻하고 안전한 집으로 이사하는 데 사용되며, 그동안 밀린 월세, 건강보험료, 전기요금 상환, 남매의 교육비로도 쓸 예정입니다. 2천만원을 넘는 모금액은 예슬이네처럼 위기 상황에 처한 아동 가정에 쓸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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