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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6.17 14:50 수정 : 2018.06.21 11:51

‘난민 수용 거부 촉구’ 국민청원 나흘 만에 18만명 동의
청와대 ‘허위 사실·명예 훼손’ 등 삭제 규정 따라 16일 삭제
반군 징집 피해 온 알하라지 “한국서 쫓겨나면 갈 곳 없어”

예멘에서 온 난민 신청자 알하라지(27)가 16일 제주도 숙소에서 취재진에게 휴대폰으로 마을이 폭격당했던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 제주/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16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청원 하나가 삭제돼 논란이 일었다. 지난 12일 ‘제주도 난민 수용 거부’를 촉구하는 청원이 올라와 나흘 만에 18만명이나 동의했는데, 16일 관리자가 이를 삭제한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17일 <한겨레21>에 “허위 사실이나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이 포함된 청원 등을 삭제할 수 있다는 운영 규정에 따라 청원을 삭제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삭제글에서 구체적으로 문제가 된 표현을 언급하지는 않았으나, 난민을 잠재적인 범죄자로 기술한 내용 등을 허위 사실이나 명예 훼손으로 판단했을 가능성이 있다.

온라인 국민청원을 놓고 벌어진 이 소동은 유엔이 ‘세계 최대 인도주의 위기 국가’로 규정한 예멘에서 온 손님을 맞이하는 한국 사회의 현주소를 그대로 반영한다. 올 봄 예멘을 떠난 난민들이 갑자기 제주도로 대거 입국했다. 무사증으로 입국이 가능했던 말레이시아에서 체류기간 연장이 가로막히자, 다시 무사증 입국이 가능한 제주도로 떠밀려온 것이다. 올들어 561명이 제주도 입국했고, 이 가운데 519명이 난민 신청을 했다.

제주도민과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오갈 데 없는 난민들에게 잠자리를 내어주고 먹거리를 나눠주기도 했다. 하지만 행여 범죄가 늘까 일자리를 빼앗길까 낯선 이방인을 경계하는 불편한 시각도 분명 존재했다. ‘난민 수용 거부 청원’에 앞서 이달 초 정부는 예멘을 제주도 무사증 입국 금지 국가로 지정해 예멘인들의 추가 입국을 막고, 이미 들어온 예멘인의 거주지를 제주도로 제한했다. 정부는 국가인권위원회까지 나서 국가 차원의 난민 보호 대책을 주문한 뒤에야 난민 신청자들의 취업을 허용했다. 제주도 출입국·외국인청은 14일과 18일 취업설명회를 통해 예멘 난민 신청자들에게 일자리를 알아봐주고 있다.

이 모든 논란의 와중에 돌아갈 곳이 없는 예멘인들의 심정은 불안하고 착잡하기만 하다. <한겨레21>이 16일 제주도에서 인터뷰한 알하라지(27)는 2년 전 반군의 징집을 피해 예멘을 떠나 말레이시아를 거쳐 제주로 왔다고 했다. 알하라지는 눈두덩이가 시뻘개진 채로 예멘의 상황을 설명했다.

2015년 5월11일 오후 예멘의 수도 사나, 비행기가 굉음을 내고 머리위를 날아갔다. 알하라지의 눈 앞에 뜨거운 불빛이 번쩍였다. 고막을 찢을 듯한 소음이 온 도시를 흔들었다. 먼지가 가득 피어올라 시야가 흐려졌다. 아이들의 울음소리와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골목을 채웠다. 마을 곳곳에는 시신과 부상자들이 넘쳐났다. 이웃집에 살던 레미 아저씨는 자신의 왼다리와 왼손을 잡고 있던 어린 아들을 잃었다. 달려오는 경찰, 소방관은 없었다. 주민들은 자신의 손으로 다친 이들을 차에 태워 병원으로 갔다.

이날 사우디아라비아 연합군이 후티 반군이 점거하고 있던 니콤산에 전투기로 폭탄을 떨어뜨렸다고 했다. 폭탄은 반군기지 뿐만 아니라 알하라지와 같은 시민들의 일상까지 파괴했다. 사나대학교에서 프랑스어를 공부하는 평범한 대학생이었던 알하라지는 부모님과 세명의 동생과 함께 살고 있었다. ‘괜찮아질거야. 내일은 괜찮을거야.’ 서로를 위로하며 기도했지만 상황은 점점 더 나빠졌다.

후티 반군은 사나 시내의 청년들을 강제로 끌고 가 전쟁으로 내몰았다. 총을 들기를 거부하면 연합군으로 간주하고 죽이거나 감옥에 가뒀다. 전쟁에 끌려간 친구들은 모두 죽었다. 사람들은 전쟁에서 죽은 청년들의 사진을 거리에 내걸었다. 초상화의 숫자가 점점 늘어났다.

알하라지도 후티 반군에 끌려갔다. 그는 “평범한 학생이다. 연합군이 아니다. 돌봐야 할 가족이 있으니 제발 집으로 보내달라”고 애원했다. 마을 사람들 여러명이 찾아와 풀어줄 것으로 호소한 끝에 겨우 풀려날 수 있었다. 2016년 공부를 하면서 돈을 벌기 위해 다녔던 은행이 문을 닫았다. 알하라지의 부모님은 “이 곳은 미래가 없다. 떠나서 새로운 삶을 살라”고 말했다. 하지만 예멘 국민이 갈 수 있는 곳은 많지 않았다.

알하라지 같은 예멘인들에게 단 하나의 선택지가 말레이시아였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예멘 사람들을 난민으로 인정해주지는 않지만 쫓아내지도 않았다. 이미 1만명이 넘는 예멘 사람들이 전쟁을 피해 말레이시아 행을 택했다. 2017년 11월, 예멘을 떠나는 비행기를 알아봤지만 표를 구하는데 두달이 꼬박 걸렸다. 2018년 1월 알하라지는 가족과 작별인사를 하고 아덴행 버스에 몸을 맡겼다. 그는 아덴을 통해 수단으로 갔다. 수단에서 이틀을 머무른 뒤에야 말레이시아로 가는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말레이시아에서의 삶은 비참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어도 적대감이 가득한 욕설을 들었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2018년 이후에 입국한 예멘인은 “3개월 이상 체류할 없다”며 방침을 바꿨다.

말레이시아에서 예멘인이 비자 없이 갈 수 있는 곳은 제주도 뿐이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제주행 비행기에 탔다. 예멘에서 가져 온 짐의 대부분은 버려야 했다. 수하물을 부칠 돈이 없었다. 알하라지가 탄 비행기에는 그와 같은 상황이었던 예멘인 31명이 더 있었다. 4월30일 제주공항에 도착한 알하라지에겐 100달러가 가진 돈의 전부였다. 말레이시아에서 ‘물담배’를 만들어 번 돈이었다. 하지만 관광지인 제주도의 물가는 감당하기에 벅찼다. 1주일 만에 빈털터리가 됐다.

5월4일 난민신청서를 제출한 알하라지는 11월4일까지 6개월의 시간을 벌고 한숨을 돌렸다. 하지만 제주도에서 알하라지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먹고, 자고, 이따금 유튜브로 한국어 강의 동영상을 봤다. 돈이 없었지만 시민단체와 제주도 주민들이 십시일반 도움을 줬다. 숙소비를 내주고, 음식을 만들어서 찾아오는 도움의 손길 덕에 버틸 수 있었다. 알하라지는 “(묵고 있는) 숙소 주인이 우리가 돈이 부족한데도 개의치 않고 받아줬고 쫓아내지 않았다. 우리를 받아준 것 만으로도 너무 감사한데, 제주 주민들이 음식도 가져다 주고 도와주셨다. 누구 하나 손가락질 한 적도 없었다. 감사하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는 제주도로 들어오는 예멘인의 난민신청이 급증하자 ‘무사증 입국 금지 국가’ 목록에 예멘을 추가했다. 알하라지가 그때 제주행을 택하지 않았더라면 그는 지금쯤 말레이시아에서 쫓겨나 국경 사이를 헤매야 했을 것이다. 한국 정부가 알하라지 같은 처지의 예멘인들이 돈을 벌 수 있게 일시적으로 허용한 것도 알하라지로선 그나마 다행이다. 그는 18일 제주도 출입국·외국인청이 진행하는 예멘인 직업소개 행사에 참석할 예정이다. 그는 어떻게든 일자리를 구해 돈을 벌 계획이지만, 제주도를 벗어날 수는 없다.

아직 난민 심사 중이고, 한국의 난민 인정률이 너무 낮다는 건 알하라지에게 또 하나의 큰 불안 요인이다. 한국이 그를 난민으로 인정해주지 않으면 다시 이 나라 저 나라를 떠돌거나 예멘으로 돌아가야 한다. 알하라지가 체념하듯 말했다. “한국에서 쫓겨나면 갈 곳이 없다. 예멘으로 돌아가면 전쟁에 내몰려 죽을 것이고, 최근에는 내전 상황이 악화돼 돌아갈 방법도 없다.”

제주/ <한겨레21> 이재호 기자, 전정윤 기자 p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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